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서해 백령도는 낙조가 아름다워

느림보 이방주 2012. 12. 6. 06:04

백령도는 낙조가 아름다워

 

▣ 좋은 날 : 2012년 11월 24일부터 25일까지 1박 2일

▣ 일정 : 24일 체육관 앞에서 05:30에 출발하여 인천여객터미널에서 하모니플라워호 08:50 출발 12:30에 백령도 용기포 항 도착- 심청각 관광-천안함 위령탑- 두무진 유람선 관광- 두무진 통일기원비 낙조 관광- 숙박

            25일 사곶 천연비행장-콩돌해안- 교회 방문- 13:50 백령도 용기포항 출발-17:30 인천항 도착-20:30 청주 도착

▣ 함께 간 사람들 : 메아리산악회 안내로 백만사 회원 12명(이용원회원 부부, 박호준회원 부부, 정우종회원 부부, 이완호회원부부, 이효정회원 부부, 우리 내외)  

 

메아리산악회에서 백령도 여행을 안내한다고 한다. 꼭 가고 싶었다. 그런데 24일 한국수필작가회 출판회, 25일 종중 시향이 있어 망설였다. 그러나 이번에 가지 못하면 어려울 것 같아 다른 모임에 용서를 구하고 참여하기로 했다. 단체 여행이라 경비도 거의 반액인데다가 이만큼 치밀하게 안내를 해 주는 모임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더 용기를 내게 되었다.

 

전날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아침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바로 체육관으로 출발했다. 프라이드를 몰고 두진백로 앞에서 정우종 선생님 부부를 태웠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버스가 이미 대기해 있고,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여 일찍 서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인천항에 도착하여 하모니플라워호에 승선했다. 배삯이 편도 65,000원인데 1박2일에 1박에 4식을 제공하고 버스 왕복까지 제공하면서 1인당 160,000원에 어떻게 계산이 되는지 의문이 생겼다. 비수기인데다가 단체라 배삯이 할인될 거라고 누가 말했다.

 

배는 한산한 편도 아니고 만원도 아니어서 좋았다. 우리는 뱃머리에 앉아서 족발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배는 바다를 가르며 북으로 달린다.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서북으로 173km나 떨어져 있다고 한다. 휴전선을 넘어 그만큼 북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멀미는 나지 않았으나 지루했다. 잠깐씩 갑판을 개방하는데 바람이 몹씨 불고 추워서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아마도 흡연시간으로 배려하는 것 같았다. 담배 연기가 역겹다. 

1. 심청각에서

 

백령도에 도착하여 바로 여관으로 갔다. 짐을 풀고 점심을 먹은 다음  심청각에 갔다. 버스 기사겸 관광 안내원은 걸쭉한 입담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는 백령도에 큰 배가 다니고 관광의 길이 열리게 되어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심청각은 심청전의 지리적 배경이 황해도 옹진이라고 보고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를 인당수라고 생각하면서 이곳에 기념 시설을 마련한 것이다. 심청각을 여기 세우는데는 몇개 지역에서 심청전의 배경이 자기 고장이라고 주장해서 이곳에 심청각을 세우는데 곤란한 점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심청전 연구에 획기적인 바탕을 마련한 최운식박사께서 이곳을 답사하고 이곳이 배경 설화의 근거지라고 고증을 해 주어 여기에 세우게 된 것이다. 나는 은사님이신 최운식선생님께 이러한 이야기를 직접 듣거나 그 분의 저서를 통하여 알고 있었기에 이곳이 선생님을 뵌듯 감회가 깊었다.

 

심청각에는 햇살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세다. 여기서는 심청에 대한 생각보다 멀리, 아니 아주 가까이 보이는 장산곶에 대한 생각이 더 깊었다. 장산곶은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길게 바다로 나와 있었다.  심청각에서 바라보니 소리치면 바로 들릴 것도 같다. 여기서 고구마를 캐다가 '어이 막걸리 한 잔하러 건너오게.'하고 소리를 지르면 바로 저 건너에서 노를 저으며 건너올 것만 같다. 바다는 그렇게 가깝고 그렇게 잔잔하다. 백령도에 사는 사촌이 이른 저녁을 먹고 조기 한 손 들고 배를 저어 장산곶 큰집으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돌아 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처럼 바다는 평화롭다. 그러나 저 바다 밑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념의 허상은 이렇게 이 땅에 살고 있는 사촌들의 가슴에 굵은 선을 긋고 있다.

 

아내와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북을 바라보았다. 함께 간 사람들은 모두 심청전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심청은 효녀라고 한다. 예전에도 많이 말했지만 심청은 죽어서 효녀이다.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를 어긴 불효인데도 죽어서 효녀이다. 그 아비가 눈을 떴기 때문이다. 심청전을 읽으면 심청은 그렇게 효녀고 마음이 곱지만 그 아비인 심학규는 천하 잡놈이다. 물론 판소리게 소설이라 그렇겠지만 말 씀씀이가 잡놈으로 태어 났다. 심청이가 태어났을 때 봉사라 아기의 성별을 묻는 부인에게 아랫도리를 만져 보고 " 걸치는 것 없이 미끈덕하고 지나가니 큰 조개가 작은 조개를 낳은 것이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그외에 뺑파와의 대화 등등 제 앞에 급급한 잡놈이다. 심학규의 부인이 죽은 후에 아비에게 심청은 딸이고 어머니고 아내였다. 마지막으로는 죽어서 눈을 뜨게 했다. 

 

심청전은 인신공희 설화가 소설로 발전한 최종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효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 삶과 죽음에 대한 관점, 재생과 환생에 대한 생각이 담긴 이야기의 종합편이다. 여러가지 설화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판소리로 공연된 공연예술의 하나이다. 심청전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줄인다.

 

심청각 주변에는 탱크와 대포를 대기시켜 놓았다. 전시용인지 실전용인지 알 수 없지만 포신이 북을 향하고 있어 긴장감이 감돈다. 우리는 왜 심청과 같은 인간적인 이념을 본받을 시설물 옆에 비인간적인 죽음의 이념을 나란히 놓아야 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다. 저 장산곶 긴 반도에도 역시 수많은 죽음의 이념의 쇠붙이들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여기서 40리밖에 안되는 잔잔한 바다 속에도 남북이 그러한 무기들을 숨겨 놓고 있다. 현상으로 잔잔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옹진 반도도 평화로워 보이고 바다도 잔단하다. 북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심청각을 돌아보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장산곶에서부터 옹진 반도의 긴 산줄기 등마루를 한 번 걸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졌다.  

 

멀리 보이는 옹진 반도 -그 끄트머리가 장산곶

 

2. 두무진 낙조

 

  천안함 유람선을 타고 두무진 관광지를 돌았다. 바다 바람이 차갑고 선실에서도 밖이 다 보여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들 밖에 나가 사진을 찍는다. 나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앉아 있었다. 두무진에 여러가지 형상의 바위들을 보았다. 기기묘묘하다고 할 수 있지만 홍도나 다도해에 비해서 그다지 놀랄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위벽 색깔도 보기에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선장은 장군바위 촛대바위 신선대, 병풍바위, 형제바위 코끼리 바위 등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세계에서 인정하는 절경이라고 설명했다. 일렁이는 파도와 바위 그리고 맑은 물이 모두 아름다운 세상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그렇게 흐뭇해 보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간에 바로 저기 저 부분이 천안함이 피격 당한 곳이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당시 사망한 병사 중에서 열 아홉살 짜리가 있었던 일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 어린 영혼이 이렇게 퍼런 물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나가서 사진을 찍고 절경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배는 두무진 주변의 바다를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두무진 해변을 걸어 두무진에 올라갔다. 우리가 배를 타고 돌았던 그 바다에서 바라보이는 바위벽이다. 시간이 늦어 사방은 어둑해지고 바다에는 해넘이를 시작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로 일출을 보려 하지만 낙조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도 지는 태양의 아름다움이란 의미 때문에 선망이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형제 바위 사이로 보이는 낙조는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한 가지 색으로 붉게 물들었다. 붉은 하늘 붉은 바다를 보면 영혼까지도 붉게 타오르는 기분이다. 계단길을 통하여 바닷가까지 내려가면서 떨어지는 해를 찍었다. 그러나 아무리 찍어도 기계가 자연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되돌아 올라오면서 자꾸 떨어지는 해를 뒤돌아 보았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아 해변을 걸었다. 그래도 하늘에 의미 부여를 하지 말자. 그냥 낙조일 뿐이다.

 

형제 바위 낙조

 

 3. 사곶 천연 비행장의 일출

 

 

 말로만 듣던 천연비행장에 갔다. 나는 백령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모래사장에서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천연비행장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 2곳밖에 없다고 한다. 폭 300m 길이 약 3km 나 되는 해변에 있는 자연적인 활주로이다. 영원한 항공모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은 철조망으로 되어 있고 밤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수심이 깊지 않아 여름에는 이곳이 해수욕장이 된다고 하는데 섬의 해변이 이렇게 수심이 얕은 것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래장을 걸어도 시멘트콘크리트처럼 딱딱하여 충분히 비행기가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2km이상이 거의 직선으로 같은 넓이이다. 높낮이도 일부러 만든 것처럼 평평하다. 대개 바닷가 모래사장이 바다를 향해서 경사가 있는데 여기는 운동장처럼 평평하다. 물때가 되어 물에 잠기는 부분은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처럼 물결무늬가 생겼다. 넓고 곧은 모래장이 일정한 물결 무늬가 이루어낸 자연미술품이 장관이다. 

 

마침 해가 떠올라 구름 뒤에 숨어 있는 햇살이 장엄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구름 속에서 내려오는 빛이 마치 금빛 빗살을 늘이는 것 같기도 하고 신의 계시가 현신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검은 구름은 더욱 검게 보이고 흰구름은 투명하게 속을 드러낸다. 바다에는 아직도 붉은 기운이 남아 있다. 빛의 줄기는 수면에도 비치고 수분이 남아 있는 모래 위에도 비친다. 사람들은 물가를 거닐면서 즐거워했다. 나도 아내와 함께 물가를 거닐었다. 모래는 잔 물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물결무늬를 하고 있어서 빛은 더욱 아름답게 반사한다.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로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사곶 천연할주로의 일출

물결을 닮은 해변

멀리서 언덕 위에서 바라본 천연활주로의 모습-물이 들어오기 사직했다.

 

4. 콩돌해수욕장

 

등대 해안도 두무진 못지 않은 절경이다.  이곳도 모두 밤에는 금지구역인가 보다. 해안의 절경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라는 중화동 교회을 돌아 보았다. 그리고 콩돌해수욕장을 갔다. 이곳은 아주 깨끗한 돌이 해변을 이루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콩만한 돌이 모래사장처럼 2km정도 펼쳐져 있었다.바다 바닥에 있는 콩돌을 파도가 밀어올려 사구를 이루었다.  우리는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해변을 걸었다. 처음에는 발이 아팠지만 나중에는 아주 시원하다. 지압이 저절로 되는 기분이다. 한 500m를 걸었는데 발이 시원하고 온몸까지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매끄럽게 수마된 돌이 하나하나 예뻐서 하나씩 주워가고 싶다. 이렇게 예쁜 돌을 전원 주택을 짓고 마당에 깔아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욕심을 부려 본다. 그러나 여기 오는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해안도 남아 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아무도 돌을 줍는 사람은 없었다. 

 

해변에서 부침개와 막걸리를 파는 곳이 있어 막걸리를 한 잔씩 마셨다.

콩돌 해수욕장을 걷는 회원들

 

등대해안에서 우리 내외

해변에서

형제 바위 낙조와 함께

등대 해안에서 백만사의 여인들

동굴 앞에서 두 여인

사곶 천연 활주로에서 백만사의 여인들

두무진에서 백만사 여성 회원들

등대 해안에서 남성 회원들 (박호준 회원은 어디 가시고 다른 사람이 대신 왔네)

 

돌아 오는 뱃길이 지루하다. 잠을 청하다가 갑판에 나갔다가을 반복하면서 인천항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버스에 올라 돌아오는 길에 며느리와 아들에게서 계속 문자가 온다. 마치 적진에라도 다녀오는 것이는 되는 듯이 걱정을 한다. 자식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번 여행은 매우 뜻깊은 여행이다.  또한 우리 백만사 회원 모두 참석하여 우의를 다져서 더욱 뜻깊었다. 이효정 대장이 세심하게 준비해서 아주 편안하게 다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