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들렸는디?"
전화를 건 친정어머니가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을 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다. 그러자 네 전화가 맞는 거냐며 의아한 듯 물으셨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 휴대폰을 바꾸고 나서 미처 통화연결 음을 다시 설정해 놓지 않았는데 평소와 달리 단조로운 기계음만 들리자 낯설었던 모양이셨다.
통화연결음 대신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컬러링'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통신사의 가입자가 원하는 음악이나 다양한 소리로 바꾸어 들려주는 통신부가 서비스로 전화를 건 발신자가 듣게 된다.
칠십이 넘은 어머니가 "전화 노래 듣기 좋더라. 그것 좀 살려봐라" 하시기에 파안대소했다. 내 휴대폰 통화연결음은 주로 취향대로 차분하고 오래된 팝이다. 아무래도 팝송은 일단 가사 내용이 우리 가요처럼 명료하게 들리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듯해 부담이 덜하다. 상대방이 잠시 듣는 짧은 시간의 음악이다 보니 어쩐지 클래식은 좀 밋밋한 맛이고 가곡은 거해 보인다는 게 나만의 지론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어떤 옷을 차려입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나는 휴대폰의 음악을 바꿀 때마다 다소 신경을 쓰는 편이다. 경험상,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이런저런 편견이 앞서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때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스스로 상처가 되는 부분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안 마음이 울적하던 시기에, 외국에서의 오랜 생활로 영어가 유창한 한 지인에게서 국제 전화가 왔다. 내 반가움에는 아랑곳없이 무슨 전화를 금세 받느냐고 대뜸 핀잔부터 날아왔다. 다시 전화할 테니 받지 말고 기다려 보라 한다. 다짜고짜 그의 엉뚱함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휴대폰의 팝송이 제법 가슴을 울린다며 한 번 더 들어야겠다고 해서 이해가 되었다.
그러더니 결국, 선율은 참 아름다운데 가사는 쓸쓸하고 우울하니 밝은 곡으로 바꾸라는 조언이 떨어졌다. 항상 환하고 유쾌한 환경을 만들며 그 기를 받고 사는 게 왜 중요한지 장황한 설명과 함께 네가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위안도 잊지 않았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나도 훌훌 털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당장 표정관리는 안되지만 억지로 웃어야 하는 부자연스런 얼굴처럼 힘 있고 경쾌한 전진의 태세로 음악을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빠르고 신나는 음악이 거슬렸던지 절친한 문우가 한바탕 웃음을 쏟아냈다. 너의 색깔이 아닌 듯하다, 어색하다며 당장 예전처럼 분위기 있는 곡으로 돌려놓으라며 어깃장을 부린다. 이유를 말하니 우습다고 한다. 각자 사람만의 향기가 있는 법이니 쓸데없는 기우에 흔들리지 말고 너에게 느끼는 나의 사소한 행복 중의 하나를 빼앗지 말라는 으름장은 그럴싸했다.
최근에 공적인 일로 어떤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첫인상이 굉장히 쌀쌀맞아 내심 걱정스러웠다. 하긴 나도 상대방이 어떤 평가를 하는 지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서로 견제가 되는 처지이기도 해서 상당히 껄끄러운 자리였다. 그러기에 그저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자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런데 업무를 끝내고 인사하며 일어서려는 순간 그녀가 "저, '빈센트' 그 곡 참 좋죠?" 하고 씩, 웃는다. "아, 네 반 고흐의 일생을 노래한 거지요." 하자 자신의 컬러링도 '빈세트'였는데 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똑같은 음악에 가슴이 뛰었단다. 그런 팝을 휴대폰 음악으로 만나는 건 흔치 않아서 만나기 전 내 모습이 갑자기 더 궁금했었다며 반색을 한다. 좀 전의 긴장감은 어디 갔는지 우리는 뭔가 잘 통하는 무엇이 있을 것 같다며 금세 수다를 떨다가 저녁식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요즘 점점 문명의 발달 때문에 잃어가는 옛 정서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건 아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짐이지만 휴대폰은 내가 선택한 노래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긴 말하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의 온기를 나누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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