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오프너 반(임정숙)

느림보 이방주 2009. 3. 7. 01:29

오프너 반

 

중부매일 jb@jbnews.com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반씨 성을 가진 그녀를 나는 오프너 반이라 부른다. 오프너란 병따개를 말함이지만 막힌 마음을 여는 재주가 있어서이다.

자기관리에 철저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서너 살 위인 문우인데, 평소에는 잘 웃고 화통하다가도 불의를 보면 대쪽이다. 화약고처럼 언제 터질지 좀 불안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어느 땐 콜라처럼 톡 쏘는 맛이 개운한 청량제 같기도 한 사람이다.

굳이 자신의 일도 아닌 것에, 열 내고 발 벗고 나서는 그녀가 어찌 보면 한심하고 우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에서 경우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일이 발생하면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기어코 총대를 멘다.

   
▲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다. 현실에 주눅 들지 않는 그녀, 어느 자리에서든 비굴하지 않는 당당한 그녀. 다른 사람들의 닫혀진 마음을 스스럼없이 열어 주는 오프너 반 같은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번은, 어느 선생님을 비하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그녀는 상황이 어찌 되었든 제자가 스승을 존경치 않고 함부로 발언하고 다니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흥분하더니 어느새 곧 그 바람을 잠재워 버렸다.

그녀가 대단한 재력가인가. 그렇지 않다. 사회적인 위치가 폼나는 것도 뛰어난 미모를 겸비한 것도 더욱 아니다. 요즘 잣대로 보면 그저 평범한 여인이다.

몇몇 문우들과 함께 처음 그녀의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대문을 들어선 순간 의외의 형편에 내심 당혹스러웠다. 야산 밑의 허름한 농가, 가구다운 가구는 눈에 띄지도 않거니와 모든 살림이 단촐하기 그지없었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까지는 상상하지 않았어도 운치 있고 정갈한 시골 집 정도는 될 거라던 추측과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자청해서 사람들을 부를 만큼 어디 내세울 만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시골에서도 보기 드문 생활수준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엉거주춤 서성대는 손님들을 진두지휘했다. 맛깔스런 시골 반찬과 주특기라는 칼칼한 고등어조림, 된장국 등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 상 잘 차려내었다. 일행은 조금 전의 당혹감도 잊고 고향 집에 온 듯 포식을 했다.

그녀의 두둑한 배짱이 부러웠다. 내 집에 여러 손님을 부르는 일은 어찌 되었건 긴장되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요리에 자신 없는 나로선 손님이 온다면 덜컥 겁부터 난다. 그래서 으레 식사는 밖에서 하고 집에 와서는 과일과 차만 대접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오프너 반'의 방식대로라면 어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숨기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지나친 격식의 불편함보다는 정성을 다한 편안한 밥상이 더 후덕하고 정감이 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만 의식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자신만의 삶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그녀의 집은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이웃이든, 멀리 사는 친구든, 우리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든, 또는 아들의 친구든 스스럼없이 찾아와 소주와 삼겹살을 풀어놓고 좁지만 들꽃이 가득한 마당에서 별이 뜨도록 마음껏 가슴속 이야기를 떠들다 간다. 그녀만이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이다.

그녀는 또 로맨틱한 여자이기도 하다. 봄이 오니 집 근처 저수지 가는 길에 배꽃이 눈부시다며 지기 전에 아우님 빨리 함께 구경하자며 전화를 걸어 주기도 한다.

얼마 전, 그녀 집을 찾아갔을 때다. 여름 장마로 담장이 무너져 있었다. 무슨 구경거리라고 고추장, 된장독이 아수라장이 된 장독대 좀 보라며 그녀는 부엌 뒷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걱정보다는 그러는 그녀가 우스워 웃음부터 터졌다.

또 지붕까지 새어 마룻바닥에 물이 떨어져 친정어머니가 한 걱정을 해도 객지에 나가 있는 남정네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해 그 와중에 모녀가 마주 보고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어쩌다 그녀의 봉고차를 타기라도 하면 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친구의 권유로 그녀는 낚시 미끼로 쓰는 지렁이를 배양한다. 큰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주말이면 낚시터를 돌기 바쁘다. 이따금 동네 밭에 나가 일을 거들어 주고 품삯을 받기도 하고 어려운 이들이 있으면 가진 것 쪼개어 선뜻 내놓기도 한다. 건강이 좋지 않는데도 부지런한 그녀의 일상을 보면서 안일해지는 나를 돌아보게도 된다.

얼마 전 토요일이다. 그녀와 밥이나 한 끼 할까 싶어 연락을 했더니 친구 아들 결혼식이 있어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조문 갈 일이 생겨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친구의 결혼식장엔 본인이 안 가도 축하객이 차고 넘치겠지만, 내일이 발인인 고인의 빈소는, 평소에 친분이 없었어도 마지막 가는 길이니 찾아뵈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의 그녀다운 결정이다.

호화스런 저택의 창일수록 바깥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유리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무리 큰 창인들 뭐하겠는가, 열어 논 창만이, 또는 투명한 창만이 햇살과 바람 가득한 세상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다. 현실에 주눅 들지 않는 그녀, 어느 자리에서든 비굴하지 않는 당당한 그녀. 다른 사람들의 닫혀진 마음을 스스럼없이 열어 주는 오프너 반 같은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