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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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jb@jb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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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오늘 천지개벽을 보았다.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초롱초롱한 꿈나무들이 미래의 지식을 쌓기 위해 쉼 없이 드나들던 곳, 그리고 주민들의 여가활용과 마음의 양식을 얻기 위해 자주 이용하던 서점이 폐업되고 그 자리에 '천지개벽'이란 유흥업소가 들어섰다. 우리 동네에는 서점이 한군데 밖에 없었다. 가끔 시간이 있을 때면 들러 필요한 책을 고르기도 하고, 참고서적을 사들이기도 하던, 나에게는 행복한 공간이기도 하였다. S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자주 드나들어 독서도 즐기는 모습을 볼 때 마다 갸륵한 생각도 했었다. 어린 자식들과 서점을 운영하던 소탈하게 생긴 여인의 등에는 늘 어린 아기가 업혀있었고 그 아기 언니는 겨우 서너 살 정도 되었을까 한데 서점에서 온종일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며 놀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주인아주머니가 서점을 정리해야 한다는 서글픈 말을 했다. IMF 때부터 남편이 일자리를 잃고 근근이 서점을 차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오른 집세와 불경기로 문을 닫아야만 할 위기에 봉착했단다. 세상 사람들이 책보다는 텔레비전 영상 매체 문화에 관심이 쏠리면서 하루에 책을 사가거나 보러오는 손님은 국한 되었고 S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니 운영 란에 봉착되었다고 하였다. 그 무렵부터 그 서점을 갈 때면 한산한 분위기로 하여 늘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곤 하였었다. 서점이 아닌 다른 업종이 창업되는 관계로 그녀가 창업할 때 투자한 창업자금, 요즘 말로 권리금을 한 푼도 보상 받지 못한 채 폐업하고 나가게 된 그녀의 아픈 가슴을 내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뼈를 깎는 아픔인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결국 그녀는 다른 일을 찾아보든지 아니면 어찌 살아가야 할 것 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며 눈가에 물기가 서리는 모습을 보고는 도와주지 못하는 내 마음도 안타까웠다. 무어라 위로의 말도 못하고는 쓸쓸한 미소로 헤어졌다. 얼마가 지났다. 서점의 모습은 사라지고 화려한 장소로 바뀌었다. '천지개벽'이란 굵고 큰 글씨로 간판이 걸렸고 옆에 가게까지 털어서 아주 큰 사업장으로 꾸며졌다. '천지개벽'이란 네 글자에 관심이 갔다. 천지개벽이란 자연계나 사회에서 큰 변혁이 일어남을 비유하여 이르는 용어가 아니던가. 대체 무슨 사업장으로 변형되는 걸까. 며칠 후 그곳이 술집으로 탈바꿈 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천지개벽이 되었구나' 하고 허탈하였다. 서점에서 술집으로 탈바꿈을 하였으니 간판 그대로 천지개벽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그곳에서 불과 얼마 안 되는 거리에 S초등학교가 있다.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꼭 필요했던 서점은 사라지고 '천지개벽'이란 술집이 개업을 하였으니 그 어린이들이 천지개벽이란 간판을 바라보며 저 간판이 무슨 뜻 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을 것이다. 천지개벽의 유래의 일화로 알려진 반고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는 혼돈 상태의 커다란 달걀과 같았다고 한다. 반고는 그 알 속에서 1만 8000년 동안이나 태아처럼 있었고, 알이 깨져 천지가 열리면서 그 속에서 나온 가볍고 맑은 기체는 하늘이 되고, 무겁고 혼탁한 것은 땅이 되었다. 처음 생긴 하늘과 땅은 반고가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좁았으나, 반고가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머리로 이면서 서로 맞붙지 않도록 갈라지게 하였다. 그 뒤로 다시 1만 8000년이 지나자 하늘과 땅 사이는 9만 리나 떨어지게 되었고, 반고의 키도 그만큼 자랐다. 반고는 천지개벽의 임무를 완수하고 숨을 거두었는데, 그의 한숨은 비와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으며, 두 눈은 각각 해와 달이 되었다. 또 그의 신체는 산악이 되었고, 혈맥은 강하(江河)가 되었으며, 피부의 털은 초목이 되었고, 흘러내린 땀은 비와 이슬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천지개벽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나 위대한 사건, 난관을 극복한 창업 등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고 한다. 요즈음은 그 술집 앞을 지나면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습관이 생겼다. 대낮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가는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으로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불빛에 얼비친 모습들은 쌍쌍이 아니면 단체손님들이 흥에 겨워 밤새워 흥청망청 즐기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금쪽같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천지개벽으로 인하여 밀려난 서점 여주인이 생각난다. 깔끔하고 조용한 성격에 많은 책을 진열해 놓고 성실하게 서점을 경영하던 그는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어린 두 딸과 어찌 지내고 있을까. 그 아줌마에게도 이번에는 좋은 뜻의 천지개벽이 찾아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