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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jb@jb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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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불혹을 넘기고 나니 얼굴보다도 손에서 더 나이가 느껴진다. 세상이 좋아져서 성형 한 얼굴은 나이를 빗겨 갈 수 있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나이만은 속일 수가 없다. 손은 정직하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알 수 있듯이 손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손은 그 사람의 얼굴을 대변한다. 주름살 하나 없는 얼굴로 봐서는 40대도 안 되어 보이는데, 손은 나무토막처럼 마디가 굵고 쭈글쭈글한 것이 영락없는 중년여인의 모습이다.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입보다도 손이 먼저 수다를 떤다. 손사래를 치며 나누는 대화는 입으로 하는 이야기보다 더 생동감이 느껴진다. 수화를 하듯이 빠르게 움직이며 오르내리는 손을 따라가다 보면 내 눈이 현기증을 일으킬 때도 있다. 그들 속에는 더러 집안일도 해보지 않은 것 같이 고운 손가락에 알 굵은 보석 반지를 낀 손도 있고, 지렁이 같이 힘줄이 굼실거리는 손과 관절염을 앓아 관절이 퉁퉁 부어 오른손도 있다. 사람을 만날 때면 손을 눈여겨보는 습관이 있는데, 내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손들이 있다. 언젠가 여자교도소의 글 공모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던 수용자의 하얀 손과, 꼬깃꼬깃한 지폐를 내 손에 쥐여 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손, 그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간병인의 값진 손이다. 교도소에서 만난 그녀의 손은 손가락이 길고 늘씬했다. 흔한 반지하나 끼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귀티가 넘쳐났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동여매고 푸른 죄수복을 입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게, 상장을 받아드는 손은 하얗다 못해 파리했다. 알맞게 통통하고 마디 없이 매끈한 그녀의 손을 보며 피아노의 검은 건반이 스쳐갔다. 저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어떻게 저런 예쁜 손으로 죄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몸 중에서 손은 유난히 정이 많고 사려도 깊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화해를 해야 하는 사람과는 악수를 청하나 보다.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면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어릴 때 나를 키워주시던 할머니의 손은 울퉁불퉁하게 힘줄이 튀어나오고 지문이 다 지워졌지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손이었다. 추운 겨울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북이 등처럼 투박하고 까칠까칠한 손으로, 내 작은 두 손을 감싸 쥐고 따뜻한 체온으로 녹여주셨다. 어린 마음에 피부에 와 닿는 꺼끌꺼끌한 느낌이 싫어 때로는 손을 뿌리치기도 했었는데, 다시는 잡아볼 수 없는 할머니의 정스런 손이다. 할머니의 손이 그랬듯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손은, 대부분 거칠고 투박하다. 바로 성실하게 손의 임무를 다 했다는 자격증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노인병원에 가면 유급 간병인들과 자원봉사를 하는 간병인들이 있다. 요양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르신이 숟가락질도 못하는 분들인데, 그곳에서 간병인들은 환자들의 손이 된다. 밥을 떠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 모두 간병인들의 손이 하는 일이다. 한 병실에 여섯 명의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들은 환자들을 돌보면서 얼굴 한번 붉히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숟가락질도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도 손을 쓰지 않아, 이젠 주먹을 쥐는 일조차 자유롭지 못 한데, 그런 어머니의 모든 움직임을 대신 하는 것도 그들의 손이다. 하루에도 두, 서너 번씩 대변을 치우고 기저귀를 갈아 드리면서 어머니의 엉덩이를 아기 다루듯 톡톡 두드려주는 손을 보면서, 며느리라는 위치가 부끄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물론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라 직업이라고 하겠지만, 환자들의 대. 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들의 손이야말로 사명을 타고난 손 같아, 가끔 집에 모시고 오는 어머님의 시중을 들 때마다 그들의 위대한 손이 생각났다. 내 손은 어떤 손일까. 내 손을 들여다본다. 마디만 굵어진 앙상한 손에 성난 힘줄이 가득하다. 50년이 가까워지도록 부려 먹기만 했더니 요즘은 손이 나를 상대로 시위 중이다. 잠자는 동안에도 통증이 느껴질 만큼 쑤시고 아프다. 그동안 모르는 체하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달랠 요량으로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아보지만 받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달래주는 방법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이러다 할머니처럼 내 손의 지문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요즘은 손도 상전이란다. 그러니 손도 좀 쉬게 해주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지만, 내 손이 수고하여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다만 그것도 큰 행복이 아닐까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