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샘봉산과 월리사

느림보 이방주 2008. 1. 6. 05:46

  문의 샘봉산은 청주에서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산이다. 더구나 이 산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지 않는다. 나는 이 산을 친구 연 선생의 안내로 한두 번 가본 후 다른 친구들과 여러번 찾아 갔다. 작지만 아름답기 때문이다.

 

  12월 30일  우리 백만사 송년 산행을 샘봉산으로 잡은 것도 내가 좋아하고 모두들 좋아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샘봉산 바로 아래 월리사라는 고찰이 있고 월리사에서 대각사 쪽으로 한 십여리를 가면 후곡리에 연안 이씨들의 사우가 있고 그 아래 기막힌 붕어찜을 해주는 집이 있기 때문에 안성 맞춤이다.

 

  예정될 날의 전날부터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고 눈이 내렸다. 붕어찜도 예약해 놓았는데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출발했다. 청주에서 고은삼거리까지 가서 다시 문의 방향으로 차머리를 돌려 진행하다보면 문의 소재지 못미쳐 회인으로 가는 지방도가 나온다. 이 길을 통하여 가까이는 문의면 노현리로 갈 수 있고, 노현리를 지나 청남대 쪽으로 구부러지는 길목에  구석기 시대 어린이 유골인 '흥수 아이'가 발견된 청원두루봉 동굴로 가는 샛길이 보인다.

 

  ▽ 흥수 아이

    1982년 12월 5일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시현부락 두루봉에서 석회암 채취 작업 때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한 김흥수씨의 이름을 따서 '흥수 아이'로 명명하여 학계에 보고되었다. 김흥수씨는 당시 광산회사의 전무이사였다. 현장 검증은 충북대학교 이융조(李隆助)박사팀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금은 석회암 광산 개발로 동굴 현장은 초토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돌 판 위에 매장된 행태로 발견된 유골의 주인공은 숨질 당시 5~6세, 키는 110~120㎝, 두개골 용적은 1,260㏄ 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흥수 아이는 발견될 당시 가슴과 팔 주위의 흙에서는 꽃가루가 많이 발견됐다. 아마도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해 부모가 꽃장식을 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두루봉동굴 입구를 뒤로 하고 한 구비를 넘으면 바로 청남대로 가는 길과 갈라진다.  회인 가는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서 바로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면 구룡리이다. 구룡리는 옛날부터 용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여기는 구룡산과 함께 용굴이 있다. 구룡리로 올라서지 말고 청남대쪽으로 가면 분수가 있고 분수대 앞에 작은 용굴이 있다. 작은 용굴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많이 훼손되었다. 전설은 다음과 같다.

 

▽ 작은 용굴 전설

  문의면 구룡리에 구룡산이 있고 이 산 중턱에 용굴이 있다. 오랜 옛날 현재 대청호수 자리에는 여러 종류의 어류와 10마리의 이무기가 있었는데, 이들 이무기는 장차 용이되어 승천할 기회를 기다리던 중이였다. 이중 한 사나운 이무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호수의 질서를 깨뜨리니 하늘은 노하여 다섯 마리의 이무기를 따로이 살게 하여 가두어 두었다. 그러자 그 이무기는 동굴을 빠져나와 다시 질서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이에 하늘에서는 아홉 마리의 이무기만을 용으로 승천시키고 한 마리만 호수에 남게 했다. 도저히 한 마리의 이무기를 살려둘 수 없어 작은 고기들을 모두 호수밖으로 유인하고 수구에 가시목을 세워 막고 호수물을 말리기로 했다. 물이 마르자 이무기는 말라죽고 호수는 야산으로 바뀌었는데 다시 옛 호수로 돌아가 있다. 소용굴에는 용혈입구 우측상부 30m 산중에 하늘이 환하게 보이는 창굴이 있는데, 이 창굴은 이무기가 용이 되어 올라갈 때 생긴 등천창굴로 현재 창혈 석벽 부분에 자국이 생겨 선명하게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곧 승천시의 마찰로 생긴 용비늘 자국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구룡리 폐교된 초등학교 앞으로 몇 구비를 돌고 돌다가 한 모롱이를 지나면 왼쪽으로 '구룡산 월리사'란 이정표가 보인다. 길이 좁아서 차를 좌회전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여기서 회전을 해야만 한다. 월리사 입구에서 바라보면 샘봉산은 눈 안에 바로 들어온다. 아름다운 월리사는 내려오는 길에 들러 보기로 하고 왼쪽으로 흐르는 작은 골물을 건너 산행 들머리를 찾는다.

 

  이 날은 눈이 내렸다. 눈은 길을 덮을 만큼 내렸지만 운전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산에는 참나무 낙엽이 길을 덮어 찾기 어려웠다. 더구나 낙엽 위에 자욱눈이 쌓여 미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 여덟은 미끄러움조차 재미있다. 나는 가시 덤불을 등산 지팡이로 툭툭 건드리며 길을 냈다. 산토끼가 미끌거리며 달아난다.

 

  능선을 돌아 샘봉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잠깐이다. 자욱한 참나무 숲만 바라보다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대청댐이 아련하게 보인다. 정상에는 샘봉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움푹 파인 샘이 있다. 지금은 물이 나지 않기 때문에 냉전시대의 유물인 참호로 착각할 수도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바로 산 아래 한지 마을로 유명한 소전리 벌랏마을이 그림처럼 들어온다. 옹기 종기 모인 집들과 골목이 선명하다. 언젠가 여기 올라와 보고 그 마을이 궁금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 마을에는 한지 공예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있고 보양식을 파는 집도 있다. 거기서 샘봉산을 올려다 보면 또 아득하다.

    

  샘봉산은 전국 5대 명당에 들어간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샘봉산은 한반도의 한 중간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서 백두산 천지가 북쪽에 있고 남쪽 끝에 한라산 백록담이 있는데, 그 중간 문에 해당하는 구룡산 샘봉산에도 분화구가 있어 천지의 물과 백록담의 물이 서로 통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곳은 배꼽에 해당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60m밖에 안되지만 이런 명당 중의 명당이기 때문에 불법을 이룰만한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자연히 신비스러운 전설을 만들어 낼 법도 한 것이다. 심지어는 근래에 월리사에서 삼성각을 착공할 때도 뿔 달린 뱀이 출현하여 주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전해내려 온다

   

  정상에서 내려와 능선을 타고 몇 구비를 돌면 샘봉산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는 왼쪽으로 소나무 아래에 숨어 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 전망대 바위에서 보면 대청호수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볼수 있다. 오늘은 함박눈 내리는 가운데 눈쌓인 호수의 모습이 전설의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샘봉산 전망 좋은 바위에서 내려다 본 대청호수의 아름다운 모습

 

 여기서 낙엽에 미끄럼을 타듯 비탈길을 내려오면 바로 구룡산 월리사이다. 겨울에는 이렇게 설경이 아름답지만 이른 봄에 오면 진달래가 아름답다. 진달래와 가끔씩 섞여있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명당으로 내려오는 산 언덕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월리사 전경

  

  절집을 비껴 가시덤불을 헤치며 절 마당에 들어서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월리사란 이름의 연유를 금방 알게 된다. 대웅전 뒤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마치 관병식을 하듯 늘어서서 대웅전을 감싸 안고 있다. 마치 달속 마을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의상대사가 이곳에 절을 짓고 만월(滿月)의 청정함을 보고 크게 깨달음을 얻어 월리사라는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전국의 대부분의 사찰이 의상대사 아니면 원효대사나 나옹화상이 창건했다는 것을 보면 정사라기보다 사찰 연기설화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눈쌓인 절집은 말할 수 없이 고요하다. 아침 나절에 눈치우던 스님들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대웅전에 들어간 사이 눈을 밟으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봄에 화사하게 피어났던 목련나무도 여전하고 장독대에 눈이 소복하다. 풍경 소리가 그윽하다. 절은 풍경 소리로 손님을 맞이한다. 저 아래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기에 부딪쳐 되돌아갈 것이다.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울려 그 그윽한 소리를 안고 갈 것이다. 항상 눈을 뜨고 도를 닦는다는 잉어나 붕어들이 그 풍경에 귀를 기울이며 속된 세상의 속된 소리로 시끌어워진 귀를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모두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월리사를 돌아보고 차는 눈길에 미그럼을 타며 소전리를 돌아 후곡리로 들어간다.

(2007. 12. 30.)

 

'여행과 답사 > 한국의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 안성시 칠현산 칠장사  (0) 2010.04.05
충남 청양군 칠갑산 그리고 마곡사  (0) 2010.03.31
불갑사의 가을  (0) 2007.09.30
불갑사의 봄  (0) 2007.02.25
광덕사 호두나무  (0) 2007.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