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먹은 개구리
고추밭 둑 아래에 서 있었다. 약간 비탈진 밭이다. 고추가 약이 올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붉은 고추도 드뭇하게 섞였다. 고춧대 아래 개구리가 혼자서 앉아있다. 천혜향을 쥔 어른주먹만하다. 모양은 참개구리인데 등이 초록색이다. 나를 바라본다. 전혀 밉지 않다. 턱부터 배까지 하얗다. 숨이 가쁜지 무명 헝겊 같은 아래턱이 벌떡벌떡한다.
아, 이를 어쩐다. 고추밭 두둑 아래서 유혈목이가 개구리 쪽으로 ‘스르륵’ 기어간다. 배때기가 굵고 몸이 짤막해서 살벌하다. 등줄기에 빨강 주황 파랑 보라 색실로 꽃수를 놓았다. 세모대가리에서 그의 원초적 언어처럼 갈라진 혓바닥이 연신 날름거린다. 개구리는 튀어나온 눈알을 굴리며 유혈목이를 바라볼 뿐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저런, 곧 개구리에게 닥칠 끔찍한 일에 내가 조마조마하다.
뱀은 점점 가까워온다. 개구리는 여전히 태연하다. 눈을 질끈 감더니 갑자기 아가리를 쫘악 벌린다. 어! 유혈목이가 참개구리 입으로 스며든다. 턱 밑에 접어두었던 혀를 ‘날름’ 내밀어 감아 당겼는지 뱀이 스르륵 빨려 들어간다. 잡아먹힌 것이 아니라 스며들었다.
‘휴우’ 한숨을 쉬다가 꿈도 잠도 깼다. 꿈이 놀랍다. 영상이 또렷하다. 잠이 올 리 없다.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게 뭐지? 미래의 예언일까 내면의 표출일까?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이고, 꿈이 오는 순간도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깨어 있는 동안 꿈을 꾸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꿈은 자연의 원리이다. 예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꿈은 잠재된 의식의 표출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은 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
잠재된 의식이 꿈으로 표출된다면 상상이 가능한 세계여야 한다. 뱀이 개구리에게 먹히는 것이 어찌 의식에 잠재되었을까. 내안의 억눌린 정서가 있었나 생각해 본다. 참한 개구리가 나일까, 흉측하고 징그러운 유혈목이가 나일까. 아, 이건 분명 내면의 변화이다. 뱀은 위협이고 두려움이다. 부당하고 혐오스러운 권력이다. 혹시 내가 세상을 위협하고 권력을 휘둘러 두려움을 준 적이 있었나? 나는 부당한 권력인가? 아니 내겐 선한 권력조차 없다. 그러면 혐오스러운 권력에 질린 적은 있었는지 돌아본다. 왜 삶은 두려움의 연속일까. 보이지 않는 풀숲에 숨어 있다가 소리 없이 기어 나와 대가리를 세우고 갑자기 달려들어 개구리를 물어버리는 것이 뱀이다. 내게도 은근히 어둡고 침침한 손길을 내미는 세력이 있을지 모른다. 대가리를 세우고 갑자기 달려들어 물어뜯는 놈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도 유혈목이를 더러워하고 징그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有求有苦 無求無苦라던데 욕심 때문에 세상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래 다 내려놓자, 손에 들려 하지 말고 손에 든 것을 내려놓자. 요즘 그런 생각을 하는 참이었다. 생각해보니 개구리는 날 때부터 개구리가 아니다. 그는 어떤 욕심을 내려놓았기에 살랑살랑 흔들던 꼬랑지를 떼어버리고 뭍으로 뛰어오르는 은혜를 입었을까. 변형이고 변환이다. 이를테면 해탈성불이다. 올챙이도 진정성을 가지면 네 다리로 도약할 수 있다. 변환은 진정한 생명력이다. 진정한 욕구는 어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빨아들이는 것이다. 불안의 근원을 흡수하여 합일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제압이다. 이것이 진정한 변환이고 통합이다. 꿈을 깬 후에는 참 편안했다.
턱 밑에 접어 둘 수 있는 개구리의 혀만큼 부드러운 것이 있을까. 개구리는 먹을 것을 보면 입맛을 한번 다시고 부드러운 혀로 낚아챈다. 부드러움이 극에 달하면 유혈목이도 흡입한다. 그래 맞다. 세상에 강하고 날카롭고 음흉하고 더러운 세력은 개구리 혀만큼 부드러운 세력의 대문으로 빨려 들어가게 마련이다. 노자도 이렇게 말한다. ‘가장 부드러운 것은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天下之至柔馳騁天下之至堅]’ 이 꿈이 내면의식을 드러냈다면 미래를 예언한 것이기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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