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斷想

풀떼기인가 국밥인가

느림보 이방주 2025. 8. 4. 15:38

풀떼기인가   국밥인가 

 

 

늘도 폭염, 교직의 고향을 찾아간다. 단양군 영춘면 의풍초등학교가 거기이다. 남쪽으로 백두대간 고치재 너머 영주시 단산면으로 통하고, 동쪽 골짜기는 백두대간 마구령으로 통한다. 고치재 넘기 전에 마락분교가 있고 마구령 넘기 전에 남대국민학교가 있었다. 둘 다 경상도 학교이다. 의풍리 북쪽은 강원도 김삿갓면이다. 의풍은 삼도봉 아래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어 양백지간의 명당이라 알려졌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한다면 마락리나 남대리는 충북 땅이어야 한다. 그때 남대학교나 마락학교 교사들을 만나면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러나 우리 젊은 교사들은 어디에 가든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을 수 있으니 괜찮은 삶이라는 데 공감했다.

1973년 4월, 생애 첫 근무지 찾아가던 날을 그려 본다. 단양읍에서 영춘까지는 비포장도로 80리길로 두 시간도 더 걸렸다. 고수재를 넘고 버스가 배를 두 번이나 탔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봄이 길다는 永春에서 의풍 가는 길은 험난한 자갈길이다. 베틀재까지 오르막길 30리, 학교까지 내리막길 10여리를 4시간도 훨씬 더 걸어 깜깜한 밤에 도착했었다.

학교는 폐교되어 스산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 정들어 하숙하다 자취하다 얻어먹으며 그렇게 4년을 살았다. 대부분 문맹이었던 어른들도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친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기에 마을마다 한문 서당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강냉이풀떼기를 먹일지언정 어른들은 화전을 일구어 강냉이를 심었다. 희망을 심는 일이었기에 힘겹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들은 아니 내 또래 젊은이들은 서울에서 시골에서 유신 철폐, 호헌 반대, 민주화 운동에 최루탄 맞았다고 지금도 투사처럼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낮에는 아가들 한글 틔워주고 구구단 가르치고, 밤에는 내 또래 청년들에게 중등 강의록을 들고 미래 등불을 켰다. 지금은 그 등불 다 어디로 가고 잡초만 우거지고, 꽃피던 벚나무도 스러지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300명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큰 마을에 학교가 없으니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마을은 50년 전보다 좋다. 집도 좋고 도로도 좋고 사는 게 다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냇물에 고기 잡는 아이들이 없다. 양백지간 명당 마을 직선거리 30리도 넘는 큰 마을에 아이들 몇 명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이다. 오늘 안타까움이 더 깊다.

학교에서 10리 영월 땅 와석리 김삿갓 고을에 갔다. 피서객으로 차를 세울 데가 없다. 삶의 터전이 놀이터가 되었다. 남대리는 학교가 남았을까. 마락리는 학교가 남았을까. 와석리 분교는 아직 그냥 있을까.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진 마을은 미래가 없다. 수많은 산, 거기에 골짜기, 거기서 흐르는 물이 모이고 모여 한강이 된다. 골짜기가 하나하나 사라지면 한강물도 마르게 마련이다. 산골 마을이 사라지면 면이 사라지고 군이 사라지면 도시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강물은 골짜기 샘물이 시작이듯이 국가는 농산어촌이 근간이 된다.

돌아오는 길, 감자 산지로 유명하던 가곡면 두산리에 들렀다. 고수재 너머 산 정상에 있는 마을이다. 덕천리가 가물가물 내려다보인다. 감자는 없고 정상에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젊은이들로 붐비다. 정상은 완전히 시장이 되었다. 대형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려니까 번호표를 뽑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커피 한잔에 쌀 서되 값이다. 패러글라이딩은 15분 타는데 감자 몇 가마 값인지 알아보지 않았다. 감자마을은 이제 감자를 심지 않는다. 두산 감자 마을에 감자는 없다. 두산리에 감자가 없으면 두산이 아니다. 감자 농사밖에 모르던 농민은 떠나고 전원주택이 들어섰다.

도시로 돌아와 동네 소머리국밥집에서 국밥을 먹었다. 민생회복지원금으로 결제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국밥이 달다. 우선 먹는 곶감처럼 달다. 풀떼기인가 국밥인가. 변덕맞은 입맛이 참 수치스럽다.

(2025.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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