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함께 가는 길에 대한 성찰
이방주
김인환의 <길은 어디로> <그 곳에 내가 있다> 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한다. 이 작품은 자신이 지향하는 꿈을 성찰하여 남김없이 고백한다. 꿈을 다만 자아의 꿈으로만 보지 않고, 삶의 세계 속에서 자아의 존재를 통찰하고 있는 전개가 예사롭지 않다. 그의 성찰은 시간과 공간, 가정과 사회, 역사와 현실, 동양과 서양의 학문의 세계를 두루 성찰한다. 세계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노력, 성공 좌절을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삼고 있는 시야의 폭이 남다르다. <길은 어디로>에서 그는 자전거를 타고 험준한 고난의 길을 간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험준한 길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고난의 길 위에서 자아를 돌아본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그 길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사회에 결실을 환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결국 꿈은 공유이고 함께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곳에 내가 있다>는 꿈에 대한 성찰을 부모님의 고난의 삶으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님은 자신을, 자신은 자녀를 성공시키고, 자녀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아를 실현한다. 자녀들은 자신의 자녀를 위해 그렇게 할 것이라 암시한다. 그는 가족이 살아온 세월을 통하여 함께하는 길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동서양의 철학을 바탕으로 문명의 단절을 염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함께 문명을 일구어야 ‘나’가 존재할 수 있다는 보편적 진리를 드러낸다. 자아는 두 작품에서 재화도 예술도 철학도 시공을 초월하여 공유하고 함께 하는 것이 문명이 단절되지 않는 방편이라는 환원의 철학을 삶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두 작품은 추상적인 주제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례를 들어 풀어냈다. 상관물이 되는 일화와 사례를 다양하게 들어 의미를 암시하는 방법으로 주제를 강화시켰고, 이러한 의미는 자아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 수필은 변환과 성장의 문학이고, 일상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라는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내는 솜씨에 점수를 주어 추천한다.
수상소감
삶의 지남차가 된 수필
김인환
평생 길을 찾아다녔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하는 궁금함과 설렘이 평생의 여정이 되었다.
여행은 발로 읽는 독서이고 독서는 책으로 읽는 여행이라고 한다.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많은 길을 자전거로 달려갔다.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 다이센, 중국 타이항산, 베트남 하장, 미국 벨링햄 등,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다. 발로 읽는 독서 후 기록하곤 했는데 ‘서원대학교 수필창작 교실’이라는 또 다른 길을 만났다. 그곳에서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사막의 오아시스요, 망망대해 밤하늘의 별자리였다. 따뜻한 남쪽 나라를 가리키는 삶의 지남차였다. 이방주 수필가는 수필집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에서 ‘나는 이럴 때 들로 나선다. 나에겐 들꽃이 스승이고 들풀이 길잡이다. 자연은 말은 없어도 말씀이 있다. 들로 나가는 것이 격물(格物)이고 치지(致知)의 길’이라고 했다. 나도 그 길을 따르기로 했다.
한동안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무엇을 해도 해갈이 안 되던 그때 수필이 내게로 왔다. 지금은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수필이다. K-팝, K-음식, K-문화가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는데 한국의 수필문학이 자양분이 되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도 ‘느림보수필창작교실’이 좋은 것은 좋은 책을 소개받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 보지 않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수필을 준다. 우리 빌라에 함께 살고 있는 여러 학생에게도 수필을 준다. 수필이 있는 집, 우리집은 그런 집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이다.
공감과 끌림으로 수필을 알게 해주고, 갈림길에서 망설일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많은 시간 함께하면서 이끌어 주고 고언과 채찍을 서슴지 않고 수필의 길을 함께하는 수필교실 문우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며 글의 소재를 넌지시 일러주는 최덕희, 김주현, 김희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길은 어디로
김인환
저 길은 어디로 가나?
항상 궁금증을 품고 산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다. 자전거를 즐겨 타면서 생긴 습관이다. 호기심과 설렘은 평생의 여정이 되었다.
먼 산을 바라보면 실 같은 길이 언뜻언뜻 뻗어있다. 때로 사라졌다간 보이고 이내 보이지 않는다. 우거진 숲이 마치 삶을 잡아 삼키듯 품어버린다. 산을 타고 서리서리 내려가던 청룡은 바닷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동해의 용왕이 된다.
속리산 말티재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굽이굽이 휘돌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꼭 열두 구비다. 조선 세조 임금님이 가마에서 내려 말로 갈아타고 넘었다고 해서 말티재라고 하는데 나는 자전거로 넘는다. 그날도 무척 더운 날 라이딩은 시작되었다. 장재지에서 시작한 용틀임은 숨이 넘어갈 즈음 길이 보인다. 함께하던 라이더는 열 구비를 마저 돌지 못하고 보은 장터에서 먹고 올라온 파전과 막걸리를 확인하고 있다. 무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춘향의 묘에서 시작된 지리산 라이딩은 정령치, 성삼재, 시암재를 넘는다. 삼한 중 마한의 왕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이 고개를 맡기면서 ‘정령치’라 불리게 되었는데 지리산의 광대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수천 년을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아른아른 드러난다. 첩첩이 쌓여있는 산은 옅은 운무로 골골이 덮여있고 너른 평야는 초록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베트남 하장의 마피랭 계곡은 극상의 헤어핀으로 구름 속을 오가는 용틀임이 분명하다. 하늘과 맞닿은 타이항산의 왕망령, 천계산의 운봉화랑, 비나리길 아래 머금은 운해를 보면 경이로움에 절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우리는 언제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길 저길 가보고 싶은 갈망에 갈피를 잡지 못하다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닌 아쉬움만 남는다. 그러다 보면 날은 저문다. 내가 지나온 길이지만 원하는 대로 내 의지대로 살아온 이가 얼마나 될까? 누구든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진흙탕에 발을 담근 이가 있고 험한 가시밭길을 선택한 이도 있다. 금수저로 시작한 이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도 많이 보아왔다. 그럴 때면 ‘에이 저쪽 길로 갈 걸’하고 후회한다.
백만장자 의수(義手) 화가 박대성은 동양 수묵화의 대가이다. 어릴 적, 집에 공비가 들어 부친을 잃고 본인은 한쪽 팔을 잃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장애에 대한 차별과 멸시로 학교 가기를 싫어했다. 중학교를 졸업 후 학업을 그만두었다. 의기소침해 있는 그에게 그림은 길이 되었다. 여섯 살에 제사를 지낸 후 병풍을 따라 그렸는데 소질이 있다는 집안 어른의 한마디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여덟 번이나 국전에 연속으로 입선했다. 그 후에도 지역 화단의 반목과 내로라하는 명문대 출신 화가의 질시가 있었지만, 그림으로 입증했다. 공공의 장소에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큰 그림을 그린다. 커도 너무 크나 작은 솔잎 하나까지 한 손으로 그린다. 지금도 오직 그림에만 전념하며 고미술품과 예술품을 수집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그게 바로 학교란다. 그는 평생을 바쳐 그린 830점의 수묵화를 사회에 환원하였다. 그림은 소유보다는 공유하는 것으로 여러 사람이 즐겨야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백만장자 우경미는 조경의 대가이다. 시작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업 제안 발표 PT를 100번도 넘게 실패했다. 정처 없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방향을 잃고 걸은 적이 있다. 많은 시련과 좌절을 딛고 패러다임의 전환과 남이 생각하지 않는 공간 조경으로 대가가 되었다. 지금은 유기 식물을 치유하고 조경을 통한 공익 활동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백만장자 윤공순은 꽃 배달서비스의 전설이다. 열세 살 때부터 식당 일과 손수레 장사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건물 앞 청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월급 2천 원으로 시작한 고난의 길은 꽃배달서비스로 하루 12억 원의 매출을 올려 사옥을 올렸다. 어렵게 마련한 집을 동네 사랑방으로 개방하고 나누어 공공의 재화로 만들었다.
나도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전거와 함께 나섰다. 한여름이건 추운 겨울이건 상관없다. 피반령 넘어 수리티재로 말티재 넘어 법주사를 돌아오는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힘이 들면 들수록 정신은 맑아졌다. 희한하게 그러면 또 길이 보인다.
그들을 백만장자로 만든 건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한결같은 마음에 있다. 시련을 예술로 피워내고 역경을 딛고 한 분야의 대가가 되어서는 기꺼이 사회에 환원하였다. 그것이 공통된 길이다.
백만장자들은 말한다. 예술도 재화도 공유하고 함께하는 것이 삶의 방향이고 가야 할 길이라고. 언제나 길을 찾아 떠나지만 망설이고 선택해야 하는 길목에서 그들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사회에 환원하는 삶의 길은 아름답다고.
백만장자는 아니지만 나도 그 길을 가려고 한다. 그들만큼 내가 크게 가진 것은 없지만 함께하는 나눔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곳에 내가 있다
김인환
삶은 무한 반복되고 있다.
전쟁 후 아무것도 없던 시절 우리의 부모님은 넷이나 되는 우리 남매를 잘 키웠다. 농사밖에 할 게 없던 시절 우리에겐 농토도 집도 돈도 없었다. 그렇게 김동규와 이범분 내 부모님은 무에서 시작하였다. 그분들은 결혼 후에도 둥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도 그곳에서 태어났으니까. 그 후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학당마을에 손수 집을 지었다. 부엌과 방 하나만 있는 그야말로 단칸방을 직접 지었다. 구들을 놓고 문지방을 세웠으며 소나무를 베어 서까래를 얹었다. 그런 의지와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세상을 씹어 먹을 자신감은 큰 꿈이나 포부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낸 것이다. 처자식을 살려야 했고 책임져야 했기에 힘들어도 했다.
그후 어렵게 장만한 학당이 밭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홍옥, 골덴, 국광, 당시 심은 사과 품종이다. 지금은 개량되어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덕분에 나는 사과를 원 없이 먹었다. 상처가 나고 까치가 쪼아 놓은 못난 사과는 전부 내 차지였다. 잘 익은 부분만 까치가 쪼아 놓기 때문에 맛있는 사과는 전부 내가 먹은 거나 다름없다. 저녁에 먹으면 독사과라고 하는데도 상처 난 부분을 도려내고 하루 세 개 이상 먹고 잤다. 안 좋은 줄도 모르고 먹었다. 그때는 없어서 못 먹었으니까. 남들은 누릴 수 없는 우리만의 호사였다.
참외 농사도 지어 손수레로 읍내 장에 내다 팔았다. 아버지는 농사만 지어서는 돈벌이가 안 되어 미장일을 나섰다. 처음에는 보조로 시작해 어느덧 일 잘한다고 서로 찾았다. 그때는 손으로 하는 미장공이 귀한 때였다.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환갑 너머까지 읍내 미장일은 도맡아 했다. 그야말로 몸을 도끼 삼아 삶을 지탱했다.
아버지의 삶은 피곤했다. 만날 술이다. 즐겨 먹는 술이 아니고 힘들어 마시는 술이었다. 막일에 힘들고 술로도 힘들었다. 결국은 술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부지깽이를 휘둘러도 걸릴 것 하나 없는 적빈(赤貧)에서 집을 마련했으며 농토를 만들고 처자식을 먹여 살렸다. 그래도 자식은 반듯하게 키웠다. 고등학교만 나온 아들은 졸업하자마자 공직을 시작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에겐 힘든 미장일을 하면서도 힘이 나고 살아가는 자부심이었다. 본인은 그리 살아도 자식 잘되는 게 가장 큰 뿌듯함이었다.
지금도 나는 담배 가게 아들로 통한다. 군청이 들어서며 살던 집은 없어졌지만, 길상사를 올라가는 길목 집에서 담배를 팔았다. 당연히 내 여동생 셋은 담배 가게 아가씨가 되었다. 학당이 담배 가게 아들이라면 다들 통한다. 예전 분들은 이제 다 떠나셨지만, 맛집으로 소문난 학당이 칼국숫집에 가면 우리의 역사를 알고 있다.
나는 박사 아들과 작가 딸이 있다. 내가 하지 못한 공부를 아들과 딸은 대신 꿈을 이루어 준 나의 자부심이다. 나는 다하지 못한 공부로 마음에 응어리가 있다. 그런 나를 치유라도 해 주듯 아들은 박사가 되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미국까지 가서 공부를 더 했다.
삶은 무한 반복되고 변환하며 이어간다. 2000여 년 전 사고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하고 동양철학 또한 공·맹과 노·장 사상의 연장이지 않은가? 정치도 그때나 지금이나 한치도 변함이 없다. 사람이 집단을 이루고 도시를 이룬 이후, 행태와 규모가 커지고 더 험해졌을 뿐 뭐가 다르단 건가? 인공지능이 세상을 장악하여 인간이 종속되느니 말들이 많지만 결국은 인간을 중심에 둔 사고이다.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애플 전체를 걸겠다’라고 했던 말은 경제적 성공은 공헌의 부산물일 뿐 앞으로의 기술과 경영 그리고 정책의 나아갈 방향은 결국 인간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
고대 철학자가 언급한 ‘불멸의 욕구를 가진 인간은 더 나은 자 뛰어난 자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불멸하려고 한다’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지금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역사에 남진 못했지만, 우리를 낳은 부모는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지금의 우리를 만들고 우리의 삶을 일구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다. 언뜻 문명의 단절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유구한 역사와 찬란했던 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매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문명의 단절은 기후 위기나 환경파괴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 더 빨리 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평균연령은 45.5세이고 오히려 미국은 38.8세, 호주 38.4세, 이스라엘 30.5세로 많은 차이가 있다. 출산율을 보면 이스라엘 2.9명, 미국 1.64명, 일본 1.33 명인 데 반해 한국은 0.84명으로 극명하게 낮다. 이스라엘이 출산율이 높은 이유는 종교 문화적 배경, 강력한 출산 장려 정책, 가정 양립 환경, 사회적 지원체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돈이 많은들 삶은 유한하고 꿈이 많은들 항상 애달프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이는 이제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다. 박사와 작가로 성장시킨 나도 사명을 다한 것이나, 사명을 다했다고 해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로 연결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가끔 이런 소명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가 있다. 삶의 유한함을 잊고 살아가는 이가 많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떠나는 이가 많다. 알고 간들 모르고 간들 의미는 없는 걸까?
그들 또한 이어가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있는데.
그곳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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