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점산성虎岾山城은 신라의 전방 기지
오후에 보은 회남면에 있는 호점산성을 가기로 했다. 호점산성은 고리산성, 백골산성에 이어지는 산성의 고리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지만 규모는 두 성보다 크다. 호점산성의 매력은 보은지역에 많은 점판암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높은 곳은 높이가 거의 7, 8m나 되는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찾아갈 때마다 흥분시킨다. 문지나 성벽에 장대나 나무기둥 세웠던 흔적도 그냥 남아 있다. 게다가 등산로가 약 3.5km나 되어 숲속을 3시간 정도 걸으며 대청호의 절경을 내려다 볼 수 있어 한 번 다녀오면 또 가게 된다.
이번에는 아내가 따라간다고 한다. 아내 시간에 맞추어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1시간 쯤 승용차로 달려서 2~3시간 정도 등산을 한 다음 회남면 소재지서 보은 생삼겹살구이로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노을에 빛나는 대청호를 바라보며 돌아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반령으로 가는 길이 빠른데도 굳이 문의면 초입에서 좌회전하여 청남대로 들어가는 척하다가 구사리, 산덕리를 슬그머니 지나서 염티재를 넘으면 남대문리이다. 염티재는 신안에서 들어오는 소금배가 금강나루에서 짐을 풀면 짐꾼들이 소금 가마니를 지고 보은으로 넘어가던 소금고개이다. 또 호점산성이 있는 용곡리 사람들이 나무를 지고 이 고개를 넘어 문의 장에 다녀왔다고도 한다. 밤을 도와 소금을 지고 넘던 짐꾼들이 염티에서 호환虎患을 만나기도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마을 어른들은 말한다.
남대문리는 호점산성 남대문 바로 아랫마을이라는 뜻이다. 남대문리에서 호점산성 정문으로 오르는 된비알길이 있을 것은 바로 상상할 수 있다. 남대문리를 지나 571번 지방도로에 접속하여 좌회전하면 대청호수에 놓인 남대문교라는 큰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러면 바로 회남면 소재지이다. 소재지를 지나 대청호 둔치에 아름다운 갈대숲이 보이면 좌회전해야 보이스카우트 회룡야영장이 나온다. 다리 위에 차를 세우면 물 빠진 대청호 둔치에 우거진 갈대를 바라볼 수 있다. 갈대숲과 어우러진 자잘한 버드나무도 한 몫 보탠다. 아름다운 갈대숲이 붙잡는 소매를 뿌리치고 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농로를 1km 쯤 달리면 호점산성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가 있다. 보은군에서 마련한 산성 개요도와 안내 표지판을 읽고 출발한다.
주차장에서 남쪽 잘 다듬어진 등산로 통나무 계단을 밟아 작은 고개를 넘어서면 좁은 골짜기로 들어간다. 옛날 옛적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데리고 살았다는 전설 같은 골짜기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인적은 없다.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감추어진 산성의 비밀이 나올 것 같은데 숲이 깊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개복숭아나무에 초록빛 열매가 소복하다. 산뽕나무에 어미돼지 젖꼭지처럼 새까만 오디가 올망졸망 매달렸다. 인적이 없어 잡초가 우거지고 청미래 덩굴이 가랑이에 매달린다.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는 잡초에 덮여 있다. 여기가 호점산성의 들머리 동문지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지 산성을 따라 한 바퀴 돌아오면 바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북쪽으로 가파른 오솔길을 타고 올라간다. 고라니 한 마리가 불청객의 이야기 소리에 놀라 산줄기를 타고 튀어 오른다. 길은 가팔라도 통나무를 놓아 걷기엔 불편이 없다. 올라갈수록 길은 더 가팔라지는데 줄 난간을 만들어 놓아 잡고 쉽게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에도 전장의 흔적이나 기와조각이나 선인들의 삶의 흔적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기록에 의하면 토기나 기와편이 나왔다고 하는데 내 눈에 띠지 않았다. 최영 장군의 태묘도 있고, 금칼도 어디엔가 숨겨 있다는 전설도 있으나 눈에 뜨일 리는 없다. 주변은 온통 납작납작한 점판암이다. 그러면 이곳이 강이나 바다였다는 말인가. 이 돌은 성을 쌓기에 아주 편리할 것 같았다. 구들장처럼 납작하여 무겁지 않은데다가 다듬을 필요도 없이 기와를 올리듯 쌓기만 하면 되니 부녀자들도 가능할 것 같았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등마루를 타고 쌓은 성벽이 남아 있다. 혹 무너지기도 하고 혹 성벽의 모습이 남아 있기도 하다. 여기가 북문지이다. 북문지는 낙엽 더미에 묻혀 있긴 해도 그런대로 원형을 알아볼 수 있다. 안부에서 호점산성 주차장이 보인다. 타고 온 승용차가 바로 코밑에 있다. 누군지 성돌을 모아 장난삼아 탑을 쌓아 놓은 흔적도 있다. 잠깐 동안 재미있는 놀이로 문화재는 무너져 원형을 잃는다.
또 한 차례 깎아비알을 숨을 몰아쉬며 오르면 이제 평탄한 등마루다. 건물이 있었을 것 같은 너른 대지가 나온다. 납작한 슬레이트 같은 돌로 쌓아 나지막한 성벽을 만난다. 마치 어느 농가의 얌전한 담장으로 보인다. 다정한 고향 마을 골목을 걷는 기분이다. 아내와 나는 호젓한 산길을 여유 있게 걸었다. 숲이 우거진 속에도 성 안쪽으로 등산객이 다녀서 길이 잘 나 있다. 그러나 담장을 넘어 성 밖을 7~8m는 족히 되는 성벽이다. 가파른 사면에 까마득하게 쌓았다. 등산로는 울창한 참나무 숲길이다. 숲 사이로 마루금이 뚜렷하다.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의 전체 윤곽이 손에 잡힐 듯하다. 골짜기를 감싸 안고 축성한 완연한 포곡식 산성이다. 온전하게 보존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이쯤에서 성벽 아래로 내려가 성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성벽에서 자라난 나무 등걸을 잡고 성 아래로 내려간다. 아, 위에서 보는 것보다 더 높아 보인다. 두께 10cm 정도, 너비 30cm 안팎의 납작한 돌을 켜켜이 쌓은 모습이 잘라놓은 시루떡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판축식 토성이 층을 이루어 돌로 굳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경이로운 성벽에 취해 올려다보다가 발아래를 보니 취가 지천이다.
갈미봉에서 전망대까지 길은 아주 평탄하다. 따뜻한 담장 밑을 거니는 기분이다. 담장 같은 성벽이 중간에 뚝 끊어진 곳이 있었다. 성이 무너진 부분인가 했더니 아니다. 서문지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동문이 있고, 북쪽, 서쪽에 문이 한 곳씩 있다고 하고 남쪽으로 대문이 있다고 한다. 내부에서 보면 담장처럼 나지막한 성벽도 외벽을 보면 아찔하게 높다. 안쪽 성벽에 나무 기둥을 세웠던 자리인지 성벽에 홈이 보인다. 어떤 기둥을 세웠을까. 호점산성은 발굴 조사한 적이 없어 학술적 기록을 찾아볼 길 없다.
전망대에 오르면 염티에서 내려오는 자동찻길이 굽이굽이 한 눈에 보인다. 골짜기에 옹기종기 남대문리 마을이 정겹다. 산은 치알봉이 정상이고 성은 전망대가 중심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청주 대전 간 도로가 훤히 보이고 대청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북서쪽으로 샘봉산에서 피반령으로 뻗어가는 지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동으로는 산성의 안동네 아늑한 골짜기를 품고 있다. 아무래도 여기에 가장 높은 망루가 있었으리라.
숨을 고른 다음 정상인 치알봉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부분에 마치 망루라도 있었던 자리인지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높고 큰 성벽을 발견했다. 쌓은 방법도 정교하고 더 높다. 정방형 성곽이 치성처럼 밖으로 툭 튀어 나갔다. 너비도 훨씬 더 넓다.
높은 데서 바라보면서 궁리해보아도 답은 없다. 대체 언제 축성한 것이며 어떤 용도였을까. 이렇게 원형이 거의 남아 있는 산성에 대하여 연구가 되지 않았을 리 없다. 내가 더 연구하고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섣부른 짐작은 금물이지만 청주의 부모산성을 중심으로 삼년산성 호점산성이 문의의 구룡산성이 연결되는 어떤 방어망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년산성보다 규모도 더 크다. 보은에서 청주로 가는 길목이기에 신라라면 삼년산성을 방어하는 보조성 역할을 했을 것 같고, 고구려라면 삼년산성을 공격하는 거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백제라면 계족산성의 전진기지 쯤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무식한 생각이겠지만 연구는 추측과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354봉에서 남대문리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났다. 여기서 남대문리가 1km라고 한다. 그쪽으로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차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치알봉으로 향했다. 아주 가깝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다. 주차장 정자에 앉아 호점산성을 마음속으로 정리해본다. 궁금증이 계속 꼬리를 몬다. 특히 성을 쌓은 시대 정치적 상황은 어떠했을까. 호점 산성은 무엇으로 쓰였을까. 전설처럼 최영 장군과 관련 깊은 산성일까. 금칼이 숨겨졌다거나 최영 장군의 태묘가 있다거나 우리나라 사람이 3일간 먹을 양식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단순한 전설일까,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일까. 오늘을 사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이렇게 많다. 아무리 그래도 삼년산성이 사령부라면 호점산성은 삼년산성의 전진기지인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 위치 : 충북 보은군 회남면 남대문리, 거교리, 회인면 거교리 호점산(해발338m)
▣ 시대 : 삼국시대
▣ 형태 : 해발 280m에서 338m 봉우리 5개와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토석혼축산성
▣ 규모 : 전체 둘레 약 2,722m, 높이 석축 1.8m, 토축 부분 2.3m 높은 곳은 10m 이상, 문지 6개, 우물 1~3개소
▣ 답사 : 2010년 5월 16일은 아내 송병숙과 함께
2011년 6월 18일 충북고등학교 토요등산회원 민병택 선생님 외 10명
그 외 혼자 수차례 답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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