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임정숙 -피아노

느림보 이방주 2011. 6. 15. 06:24

피아노
[에세이 뜨락] 임정숙
2011년 06월 09일 (목) 20:54:29 지면보기 11면 중부매일 jb@jbnews.com

화초에 물을 주다 요란한 소음에 밖을 내다보았다. 누군가 이사를 하나 보다. 피아노 한 대를 조심스럽게 들어 옮기느라 몇 사람이 애를 쓰고 있다. 고개를 돌리려다 문득 잊었던 그리운 이름처럼 다시 피아노에 눈이 머물렀다.

비바람에 아카시아 꽃이 눈처럼 흩어지던 날의 오후로 기억한다. 반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뒤로 한 채 줄곧 창 너머 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수선한 날씨이나 물기 젖은 연푸른 나무 잎사귀의 흔들림과 풋풋함은 더없이 싱싱했다.

바깥 풍경에 잠시 정신이 팔렸어도 일순간 음악실이 조용해짐을 감지했다. 사정으로 좀 늦겠다던 음악 선생님의 등장이려니 생각했다. 대신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가무잡잡한 얼굴에 J라는 친구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나갔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 아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나비가 되어 나는 듯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던 피아노 선율은 갈수록 마음을 사로잡았다. 같은 나이임에도 훨씬 성숙함이 풍기던 연주자의 고즈넉한 표정과 예기치 않던 애절한 연주곡이 끝이 나고도 그 전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던 나를 숨죽이게 한 곡은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애타는 사랑의 절박함을 경험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처음 만난 그 곡의 떨림은 지금도 오롯한 기쁨으로 남아 있다.

그날, 불가피하게 수업 시간을 비우게 된 선생님의 부재로 J는 졸지에 피아노 독주회를 하게 된 셈이었다. 그 친구의 연주 몇 곡을 듣고 감상 후기를 쓰는 일이 과제였다. 이미 나는 제자리에 서서 내리는 비를 거부할 수 없이 맞은 나무처럼 맨 처음 각인된 곡으로도 여운이 충만해 다음 연주는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소질이 아니더라도, 멋진 곡을 들려준 감동만으로도 나는 J를 동경했다. 피아니스트까진 감히 엄두 못 낼 일이지만, 친구처럼 어떤 곡이든 근사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더 풍요한 삶이지 않을까. 사치스런 꿈이라고 말하기엔, 내 안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음감의 끼가 이미 흐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새삼 발견한 세계에 대한 열렬함으로 가슴이 뛰었다.

더구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J와 더 친밀해진 계기로 나눈 교감 때문인지 이십 대 후반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는데다 만만찮은 레슨비를 내며 취미로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사실을 차마 집에 말하기는 어려웠다. 용돈을 모아 형편이 될 때마다 다시 시작하곤 했던 과정이었으니 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에 근접만 하다 그칠 뿐이었다.

월급을 쪼개어 스스로 레슨비를 겨우 조달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미칠 정도의 절실함이 있지 않고서야 처음의 다짐이 한결같기엔 삶의 변수는 많았다. 나의 피아노 배우기 도전은 고작 동요 몇 곡의 연주 실력으로만 흐지부지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말았다.

결혼해서 큰 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빠듯한 형편임에도 고집을 피우고 사들인 건 피아노였다. 고가의 피아노를 몇 년의 할부로 거실에 들여 놓은 날은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또다시 피아노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희미해질 만큼 세월은 흘렀다. 대신 내 아이에게 엄마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의 기회를 무리해서라도 미리 열어주고 싶은 소망이 더 컸다. 한편으론 '인생 희로애락의 본능적 충동을 소리의 승화된 예술로 표현하는 삶도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연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길고 지루한 피아노 교습에 싫증을 내고 언제부턴지 피아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곡이든 자유롭게 연주할 때까지만 이라는 나의 닦달과 설득은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대리만족의 꿈을 키웠을지도 모를 나의 집착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몇 년 동안 무용지물처럼 먼지만 쌓이고 집안에 육중한 짐으로 전락한 피아노는 이사를 앞두고는 번번이 갈등을 겪게 했다. 게다가 세 아이가 점점 자라나니 품위 있는 장식품으로만 놓아두기에는 집안의 공간을 더 비좁게 만드는 듯했다. 오랜 시간 끌어왔던 마음을 다잡고 결국 가족들과 의논 끝에 피아노를 팔고 말았다.

피아노가 팔려나가던 날, 망연한 심경으로 현관에서 내가 눈물을 쏟은 것은 소유욕에 불과함만은 아닐 게다. 오래전 음악 시간 한 친구가 들려준 뜻밖의 아름다운 선율로 간직했던 나의 열망과 내 아이들에게 쏟았던 꿈들, 그 무엇 모두를 잃은 듯한 허탈감이라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동안은 지나다 우연히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면 품 안을 떠난 자식에 대한 애틋함처럼 가슴이 저릿해 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