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 ||||||
[에세이 뜨락] 임정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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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에 물을 주다 요란한 소음에 밖을 내다보았다. 누군가 이사를 하나 보다. 피아노 한 대를 조심스럽게 들어 옮기느라 몇 사람이 애를 쓰고 있다. 고개를 돌리려다 문득 잊었던 그리운 이름처럼 다시 피아노에 눈이 머물렀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소질이 아니더라도, 멋진 곡을 들려준 감동만으로도 나는 J를 동경했다. 피아니스트까진 감히 엄두 못 낼 일이지만, 친구처럼 어떤 곡이든 근사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더 풍요한 삶이지 않을까. 사치스런 꿈이라고 말하기엔, 내 안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음감의 끼가 이미 흐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새삼 발견한 세계에 대한 열렬함으로 가슴이 뛰었다. 더구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J와 더 친밀해진 계기로 나눈 교감 때문인지 이십 대 후반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는데다 만만찮은 레슨비를 내며 취미로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사실을 차마 집에 말하기는 어려웠다. 용돈을 모아 형편이 될 때마다 다시 시작하곤 했던 과정이었으니 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에 근접만 하다 그칠 뿐이었다. 월급을 쪼개어 스스로 레슨비를 겨우 조달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미칠 정도의 절실함이 있지 않고서야 처음의 다짐이 한결같기엔 삶의 변수는 많았다. 나의 피아노 배우기 도전은 고작 동요 몇 곡의 연주 실력으로만 흐지부지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말았다. 결혼해서 큰 딸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빠듯한 형편임에도 고집을 피우고 사들인 건 피아노였다. 고가의 피아노를 몇 년의 할부로 거실에 들여 놓은 날은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제 내가 또다시 피아노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희미해질 만큼 세월은 흘렀다. 대신 내 아이에게 엄마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의 기회를 무리해서라도 미리 열어주고 싶은 소망이 더 컸다. 한편으론 '인생 희로애락의 본능적 충동을 소리의 승화된 예술로 표현하는 삶도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연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길고 지루한 피아노 교습에 싫증을 내고 언제부턴지 피아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곡이든 자유롭게 연주할 때까지만 이라는 나의 닦달과 설득은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대리만족의 꿈을 키웠을지도 모를 나의 집착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몇 년 동안 무용지물처럼 먼지만 쌓이고 집안에 육중한 짐으로 전락한 피아노는 이사를 앞두고는 번번이 갈등을 겪게 했다. 게다가 세 아이가 점점 자라나니 품위 있는 장식품으로만 놓아두기에는 집안의 공간을 더 비좁게 만드는 듯했다. 오랜 시간 끌어왔던 마음을 다잡고 결국 가족들과 의논 끝에 피아노를 팔고 말았다. 피아노가 팔려나가던 날, 망연한 심경으로 현관에서 내가 눈물을 쏟은 것은 소유욕에 불과함만은 아닐 게다. 오래전 음악 시간 한 친구가 들려준 뜻밖의 아름다운 선율로 간직했던 나의 열망과 내 아이들에게 쏟았던 꿈들, 그 무엇 모두를 잃은 듯한 허탈감이라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동안은 지나다 우연히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면 품 안을 떠난 자식에 대한 애틋함처럼 가슴이 저릿해 오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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