守拙齋(수졸재) 옹기구이 | ||||||||||||
이방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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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jb@jbnews.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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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부터 꿈의 별장에 초대받았다. 언제 불러주려나 고대하고 있었기에 마음부터 바빴다. 올봄부터 한 직장에서 함께 내리막길을 걷게 되어 든든한 친구다. 내리막길에서 내가 미끄러지는 것을 붙잡아 줄 것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길을 가다가 딴죽을 칠 솔뿌리가 있으면 넌지시 일러주기는 할 지음(知音)이라 생각한다. 나도 아마 그에게 그럴 수는 있을 것이다.
'守拙齋', 본래 기름을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맑은 곳에 맑은 통나무로 맑은 집을 짓고 스스로 보잘것없음을 지향한다고 하였으니 더 바랄 벗이 뭐가 있을까? 더 빠질 아무것도 없는 맑은 육신에서 뭐든 자꾸 빼버리려고 하는 주인의 삶이 향기롭다. 클로버 한 줄기 없는 잔디밭이나 정갈하게 매달린 고추 열매는 주인의 얼굴 그대로다. 잔디밭 한 귀퉁이 단지에서는 노릇노릇한 냄새가 피어나와 정원에 앉아 있는 우리의 미각을 간질였다. 손수 삶은 감자를 내왔으나 미각의 궁금증만 흔들어 놓을 뿐이다. 궁금하다. '이건 뭐여?' 가까이 가서 덮개를 열려고 하니 주인이 놀라 말린다. 그러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감자 껍질이 제대로 벗겨질 리 없다. 연신 눈길은 엷은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단지 쪽으로 향한다. 다 익었는지 주인이 한 덩이를 들고 와서 도마에 올려 썰어 본다. 오겹살은 오색으로 색깔과 맛을 달리하며 익었다. 껍질은 연한 갈색이고 기름은 기름 색깔이고 살은 살색이다. 노릇노릇한 빛깔이 노릇노릇한 냄새를 풍긴다. 더 익은 곳도 덜 익은 곳도 없다. 더 마른 곳도 더 습한 곳도 없다. 타지도 않았다. 다만 살과 살이 맞닿은 곳은 생살 빛깔 그대로이다. 돼지고기 누린내는 참숯의 타는 연기 때문인지 향으로 변했다. 이번에는 훈제 단지로 가서 익은 고기를 가져다가 내손으로 썰어 보았다. 삶은 고기처럼 푸석하지도 않고 차지고 연하게 썰어진다. 익은 고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받는다. 기름을 빼니 돼지 살도 이렇게 순해진다. 세사에 순응한다. 왕소금을 슬쩍 뿌려서 구웠더라면 간간한 맛에 소금향이 배어 풍미를 더했으리라. '守拙齋', 본래 기름을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맑은 곳에 맑은 통나무로 맑은 집을 짓고 스스로 보잘것없음을 지향한다고 하였으니 더 바랄 벗이 뭐가 있을까? 더 빠질 아무것도 없는 맑은 육신에서 뭐든 자꾸 빼버리려고 하는 주인의 삶이 향기롭다. 백동으로 빚은 얼레빗처럼 청순하게 맑은 반달을 바라보며, 원붕을 불러 술을 권하고 무각과 불온의 소리 없는 풍악을 듣노라니, 참숯의 은근한 열기로 세상의 기름을 걸러내는 주인의 비우는 뜻이 옹기구이 만큼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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