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방송국까지 오늘 길의 가로수가 아름답게 물들었더군요.
우리 고장의 산은 나지막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높지도 낮지도 않아 아담합니다. 알맞게 솟아오른 바위와 거기에 청청한 소나무가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계곡마다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은 지나는 사람의 마음까지 씻어주는 듯합니다.
여러분,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산에 올라 보십시오.
아름다운 단풍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가르침을 받아 돌아오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일 것입니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받아줍니다. 사람들은 대개 산을 오르면서 정상을 정복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산을 오르면서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일상에 젖은 자신의 나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산은 다만 우리를 용납하여 받아주는 것일 뿐이지요. 그러니 겸손한 마음으로 산에 오를 때만 산은 언제든 우리를 받아줄 것입니다.
산은 말이 없습니다. 최근에 우리고장의 산이 아름답다는 것이 전국에 알려지고, 교통이 편리해지자 산이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단양이나 제천, 괴산, 보은의 아름다운 산들이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마당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산은 그렇게 허물어질 정도가 되었는데도 이렇다 말이 없습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묵묵한 산의 가르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산은 생명이 있습니다. 산은 수없이 많은 변화를 겪으며 한해를 보냅니다. 꽃철에는 꽃이 피고, 녹음 시절에는 녹음이 짙어갑니다. 요즘 같은 단풍철에는 살아온 한여름의 삶을 정리하여 갖가지 색깔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제 곧 그는 조락의 계절을 당하여 화려한 삶을 마감하면서 우리에게 삶의 영욕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산은 이렇게 생성과 성장과 소멸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실입니다.
산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봉우리에는 봉우리에 맞는 이야기가 있고, 계곡에 있는 담이나 소에는 또 거기에 맞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갯마루에는 그 고개를 넘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 남아 있고, 양지바른 묘지에는 삶의 애환이 묻혀 있습니다. 산은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의 보고입니다.
산은 깨우침이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야 하는 산길은 한결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때로 비단 같은 능선 길이 있는가 하면, 험한 돌길도 있고 낭떠러지도 있습니다. 언덕도 있고 너덜도 있습니다. 오르막길도 있는가 하면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산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역사를 비쳐주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산길에서 때로 피로를 느끼기도 하고, 상쾌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성자 같은 산도 지각없는 사람들의 교만을 다 받아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만이 한계를 넘어섰을 때, 산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서 마지막 방법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번 주말에는 단풍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돌아오실 때는 눈에는 아름다운 자연만을, 가슴에는 산의 가르침만을, 배낭에는 가져간 쓰레기만 담아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발자국 남기는 것조차도 산에게는 미안한 일이라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CBS (FM 91.5 MHZ) <오늘의 충북>(3분 칼럼) 2008. 10. 31(금요일) 오후 5:35 방송
http://blog.naver.com/nrb2005(느림보 이방주의 수필 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