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해외 여행

13.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느림보 이방주 2006. 8. 20. 20:15
 

7월 30일


파리의 리용 역을 출발한 TGV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여 끝없는 평원을 달린다. 기차는 참으로 편안했다. 한국인은 우리 외에도 많았다. 두세 명 그룹을 지어 배낭  여행을 다니는 대학생, 중고생 자녀를 데리고 다니는 부부 등 다양하다. 외국인들도 많다. 모두 기차가 편안한 보금자리나 되는 것처럼 그동안 피로한 몸을 푸근한 의자에 묻는다. 우리도 과일과 음료수를 꺼내놓고 그간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편안하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

 

프랑스의 평원은 초록과 황금색으로 이루어졌다. 초록의 목장에는 하얀색 소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누런 황금 평원은 밀밭으로 보였다. 밭과 밭 사이의 경계는 늘푸른 나무나 목책으로 나누어지는 모양이다. 초원에는 가끔씩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소들이 그늘에 모여서 새김질을 한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평원도 조금씩 고도가 점점 높아지자 밀밭은 사라지고 구릉에는 옥수수밭이 늘어나고, 비탈진 산에 초록의 목장이 더욱 아름답다. 잠깐 잠든 사이에 차는 어느덧 깊은 산 계곡을 숨 가쁘게 오르고, 산악지대 목장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산기슭 아래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산 그림자가 그대로 빠져 있다. 어느덧 스위스 땅을 밟고 있는 것이다.

차창으로 내다본 국경 지대의 호수와 전원

  스위스 땅에 들어서자 전원시에서나 상상하던 낭만적인 전원의 풍경이 차창에 비친다. 우리는 그 정결하고 삽상한 아름다움에 환호를 올렸다. 말로만 듣던 제네바, 베른을 거쳐 루체른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루체른은 인구 7만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도시다. 이 작은 도시는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의 서쪽에 발달된 작은 도시다. 호수에는 유람선이 떠 있고, 흰 고니와 물오리 같은 물새들이 아주 평화스럽게 노닐고 있었다. 호숫가를 끼고 기차역과 선착장 시내버스 종점이 있는 광장이 있어서 작은 도시지만 아주 번화하게 보였다. 광장에서 바라보니 호수와 호수 건너 언덕에 고풍스런 중세의 건물들이 이발관 달력에 있는 사진 속에 내가 들어 와 있는 기분이었다.

루체른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의 선착장, 건너편 언덕 위의 시가지

루체른은 티틀리스와 필라투스라는 알프스의 고봉을 끼고 있는 도시라 금세공과 섬유 공업이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고 한다. 역에서 보기에는 관광객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고 시내버스 기사들까지도 웬만큼 영어로 안내해서 관광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루체른 역에서 나온 우리에게 출발 시간을 기다리던 시내버스 기사가 쫓아와서 자동 발매기에서 표를 사는 방법과 우리가 예약한 유스호스텔을 찾아가기 위해서 타야할 버스를 자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나이 지긋한 가사는 차림도 깨끗하고, 행동과 말이 품위 있었으며,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10분 쯤 달려 우리가 예약한 어느 호숫가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시 시내로 나가기도 귀찮아서 유스호스텔 식당에서 저녁을 주문해 먹었다. 입에 맞지 않는 식사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한국인 민박집에서 먹는 콩나물국이나 감잣국은 잊는 것이 좋겠다. 아침은 양식 뷔페로 제공한다고 한다.

                                           루체른의 여유로워 보이는 주택

식사 후에 근처의 마을로 산보를 나갔다. 마을 아래 바로 작은 호수가 있다. 호수를 낀 마을은 모두 우거진 숲 속에 있고 그림 같은 집의 정원에는 잔디가 깔려 있으며 주차장에는 2,3대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이들의 생활수준을 짐작할만하다. 우리는 호숫가를 걸었다. 저녁 산책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많았다. 손을 잡고 거니는 노부부, 개나 어린 아이를 걸리고 산책하는 젊은이들, 조깅하는 사람들 모두 여유 있는 모습이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스호스텔 근처의 작은 호수

우리는 호숫가 바위에 앉아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감상하고, 아들은 스위스와 독일, 로마, 프랑스와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한다. 울트라 마라토너인 친구는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싶다고 한다. 친구가 숲으로 난 길을 뛰어서 사라지자 호수 건너에 기차가 지나간다. 산그늘과 노을이 비친 호수에 하얗고 붉은 기차 그림자가 비쳐 아른 거린다. 호수처럼 물오리, 고니가 사람 가까이로 몰려든다. 물오리 지난 자리에 작은 파문이 잔잔한 수면으로 흩어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러한 낭만적인 풍경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그 풍경화 속에 우리 부부와 아들이 함께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물 위에 노닐던 물새들이 거리낌 없이 그들의 유영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서 자연과 공존하는 스위스 사람들의 삶의 철학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물에 점점 드리우는 어둠의 아름다운 그림자를 바라보며 마음의 평화 속에서 빠져들었다. 숲 속 오솔길로 사라진 친구의 하얀 셔츠가 수면에서 박자를 맞추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 왔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온 친구는 호수의 둘레는 6.2km란다.

                                                          호숫가에 앉아서

내일은 해발 3570m의 인터라켄의 융프라우로 간다. 가슴이 설렌다.

                                                            (2006.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