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다는 것은
눈에 파묻힌 침엽수림(한라산 정상 부근)
오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른다는 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인가? 연초에 한라산에 오르면서 그런 생각에 젖었다. 겨울 한라산은 등정이 허락되는 날이 며칠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구랍(舊臘) 중순경에 연초 한라산 등정을 계획했다. 그런데 한라산에 그믐날부터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3미터 가량이나 쌓였다고 한다. 불안하긴 했지만 스물두 살 때 백록담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지새운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다짐을 하였다.
그날 아침, 제주의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바닷바람도 불어오지 않는다. 성판악 관리소에 이르는 도로가에는 성벽처럼 눈이 쌓여 있다. 심상찮은 바람이 휙 몰아친다. 장비를 점검하고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활엽수림 사이, 쌓인 눈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을 모아 겨우 이루어낸 등산로를 걸어 한없는 광야를 오르고 또 올랐다. 하늘빛은 울다 그친 아기 눈처럼 투명하다. 햇살은 한없이 하얀 눈 위에 눈부시게 부서진다.
눈 위를 천천히 걸어 신비의 정상으로 오르는 것은 나를 씻어내는 일이었다. 온몸을 그대로 눈에 헹구어내는 느낌이다. 아니 마음까지 하얗게 헹구어지는 기분이다. 부질없는 곳으로 향하던 나의 이성이 한 줄기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다. 상쾌하다. 땀이 흐르는듯하면 셔츠의 지퍼를 내리고, 땀이 식으면 다시 올리면서 다리를 계속 앞으로 내디디었다. 바지까지 땀에 젖는듯하다가 찬바람이 한번 휙 불면 한 순간에 사위였다.
오른다는 것은 헛된 마음을 접는 용기를 배우는 것이다. 침엽수림 지역에 다다르자 눈 쌓인 주목, 비자나무, 전나무 숲의 아름다움에 취해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아내가 진달래밭 휴게소를 12시까지 통과해야 정상 등정이 허락된다고 재촉해서 자제해야 했다. 새파란 바늘잎에 쌓인 하얀 눈과 햇살에 녹아내리다 얼어붙은 투명한 눈 고드름이 내 마음의 소맷자락을 자꾸 잡아당겼지만 정상 정복을 위하여 욕심을 접었다. 하나를 위하여 다른 하나를 접는 것도 또 하나의 용기이다.
마루에 오른다는 것은 내 안에 광야를 들여 놓는 것이다. 진달래밭 휴게소는 11시 30분에 통과하였다. 눈에 반쯤 묻힌 관리 초소를 지나 한 굽이를 돌아 올라가니 눈에 덮인 광야가 보인다. 빽빽하게 들어서 있을 관목들이 모두 눈 속에 파묻혀 백색의 광야로 변해 버린 정상 가까운 이곳이 내 안에 또 하나의 광야를 들여 놓고 있었다. 전나무들이 눈에 파묻혀 하얀 옷을 입고 서있는 허수아비처럼 상순만 보이는 숲 너머로 가물가물하게 산마루가 보인다. 푸른 하늘과 맞붙은 날망이 하얀 연필로 가느다랗게 선을 그어 놓은 것 같다. 땅이 하늘에 이어져 순백의 도화지처럼 하나로 보인다. 그것은 바람에 씻긴 내 안의 광야이다.
오른다는 것은 엉김을 풀어내는 것이다. 배가 몹시 고프다. 아침밥을 남긴 것이 후회되었다. 온몸의 모든 기운이 등줄기로부터 쭉 흘러내려 발끝으로 빠져나가 땅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허리가 푹 꺾인다. 목이 탄다. 갑자기 허벅지를 탄력 강한 고무줄에 맞은 것처럼 장딴지까지 ‘찌리릭’ 한줄기 칼날이 지난다.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다리가 옮겨지지 않는다. 장딴지에 감각이 없다. 눈 위에 주저앉아 쥐가 난 곳을 주무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언제 또다시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악물고 뻣뻣한 다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내디뎠다. 근육이 굳어간다는 것은 의지가 풀리는 것이다. 억지로 한 이십 보쯤 옮겨가자 스르르 풀린다. 신기하다. 오른다는 것은 이렇게 모든 엉김이 풀어지는 것이다.
오른다는 것은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이다. 눈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차갑다기보다 잠자리처럼 안락하고 포근하다. 사실 달릴 때는 걷는 것이 소망이고, 걸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잠들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잠든 다음 그보다 더 편안한 상태는 무엇일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하는 한 무리가 바로 앞을 지나간다. 나도 그들의 일행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냥 하산한다고 누가 뭐랄까? 한라산 등정을 포기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알면 또 어쩔 것인가? 그러나 가장 두려운 감시자는 나 자신이다. 우유 한 병을 통째로 들이마셨다. 힘이 솟는다. 굳었던 다리가 다시 평정을 되찾는다. 벌떡 일어서서 다시 바람 부는 정상을 향한다.
오른다는 것은 떨림이다. 정상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다. 차가운듯해도 귓전에 보드라운 바람을 맞으며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눈 덮인 진달래 밭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을 뜰 수 없었으나, 햇살은 바람이 씻어간 흰 눈 위에 한없이 찬란하게 비친다.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몇 번이나 산 아래를 돌아보았는가. 그러나 포기하기는 정복하기보다 더 어려웠다. 모든 것이 다 그러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지난날의 방황과 고통을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눈바람에 다 날려가는 듯했다.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 희열은 깨달음 뒤에 오는 법열의 경지에 다다른 듯 가슴이 떨렸다. 느림보 걸음으로 기어이 도착한 백록담에는 신비로움이 고운 햇살과 눈 속에 가득했다. 내려오는 길에도 사뭇 가슴이 떨렸다.
오른다는 것은 결국 어찌할 수 없는 나 자신이다.
(2006.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