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01. 5. 14. 17:01
아침에 커튼을 열어 젖히고 창문을 열면 매봉산에서 날아오는 삽상(颯爽)한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신문을 들고 거실에 불을 켜고 당신이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를 맡을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숨두부가 엉기듯 안락이 엉기어 온다. 똑, 똑, 똑 파를 써는 도마 소리도 좋고, 아사삭 아사삭 잘 익은 배추김치가 도마 위에서 동강날 때, 소리만 들어도 냄새도 소리도 새곰새곰 혀 밑을 자극한다. 당신의 동태 찌개, 시레기 무침, 깻잎 장아찌, 깍두기, 동치미까지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에 밥상에 앉을 때마다 순간순간 고귀함이 더 해진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초하루, 보름, 관음재일을 거르지 않고 예배에 참여하고, 절에 오고갈 때 있었던 얘기들을 흡족하게 들려 줄 때는 모처럼 아들에게 오셔서 마을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한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눈 쌓인 일요일에 아내를 졸라 함께 구룡산에 올라, 날망을 따라 난 평탄한 길을 십리쯤 걷는 것도 남들은 모르는 행복이다. 그 때 소나무를 툭툭 치면, 가지 위에 쌓인 눈이 한 움큼씩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며 자지러지게 웃는 당신을 보면 발가락 끝까지 찌리릿 찌리릿 느낌이 온다.

또, 식구들 몰래 화양 원탕에 달려가, 비록 각 탕으로 들어가지만, 따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고개만 물위로 내밀고 그 시원함을 느끼면서, 저쪽 탕에서 똑같이 시원함을 맛보고 있을 당신을 생각만 해도 그 따끈함에 온 몸이 저려 온다. 30 분만에 마치고 나와 차에 먼지를 닦아 내며 두 시간도 더 걸리게 본전을 빼는 당신을 기다리는 것도 푸근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목욕을 마치고 화양동 뒷길을 천천히 달리며 유리창을 조금 열고 신선한 바람을 쐬며 바위 틈에 옥이 방울방울 튀어 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도명산, 가령산으로 이어지는 절경을 감상하는 일도 아늑하고 푸근한 일이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산을 싫어하는 당신을 졸라 문장대라도 오를 때면, 나보다 앞서 힘차게 오르면서 체중을 이기지 못하는 나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약올리며 몇 발 앞서 가다 기다리곤 하는 당신을 좇아 끈질기게 계단을 기어오르면서 땀을 씻는 것도 남모르는 시원함이 있다.

사람이 바글바글모여 있는 문장대에서 멀리 대야산을 바라보며 이 산 저 산을 설명할 때 등산한 누구의 아내보다도 자신 있고 당당하게 나를 대해 주는 것도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물 맑은 계곡 깨끗한 바위에 앉아 당신은 도시락을 펴고, 나는 삼겹살 몇 쪽을 구워서 둘이서 밥 위에 얹어 김치에 싸서 먹으면, 세상을 다 주어도 바꾸지 못할 맛에 우리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은은하고 감미로운 행복을 감각한다. 당신이 나 몰래 준비해온 카스를 하나씩 들고 손잡이를 당겼을 때 경쾌한 폭음과 하얀 거품은 그대로 아직은 마흔 아홉인 나의 마음이었다.

경부 고속도로를 알맞은 속도로 달려 포항에서 자고, 정말로 파도가 차창 안으로 소금물 거품을 품어 넣을 같은 해안 도로를 달리며, 당신의 함성을 듣는 것도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보다 차라리 가슴이 벅차 오르는 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백암에서 온천을 한 다음, 해안 도로를 달리다가 어느 휴게소에 들러 꼬들꼬들 반쯤 마른 오징어(피데기)를 한 축 사고 멸치 두 상자를 사서 기분 좋게 차에 싣고, 오징어 장사가 덤으로 구워준 오징어 두 마리로 다리를 뜯어 점심을 에우고, 불영(佛影) 계곡을 꼬불꼬불 넘으면서 차창 너머에 보이는 아스라한 절벽 아래에 황천에나 흐를 것 같은 파란 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 물처럼 맑은 이마를 서로 바라 볼 수 있었다.

아이들 몰래 문의 영화 마을에서 당신과 단둘이 '쉬리'와 '정사'를 연속으로 볼 때, 情事가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잠이 들었지요. 이런 멋대가리 없는 남편을 안쓰러워 하며 믿고 따르는 당신이 있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가슴은 더욱 뿌듯해진다.

서른 둘 나이로 두 번째 대학을 졸업할 때, 세 살 짜리 아들은 걸리고, 첫돌 못 지낸 딸아이를 업고 식장에 와서도 추위를 잊으며 꽃다발을 한 아름 건네며 부끄러움 대신 대견스러워 하던 당신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 때 당신은 스물 몇 살이었지요. 뭐가 바빠서 그리 결혼을 서둘렀나요. 나는 두 번째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를 하는 동안,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당신은 구경 못한 가난의 참 맛을 전공했겠지요. 장미꽃 세 송이면 쌀 한 되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던 가난한 때였으니까.

마흔이 넘어 한국교원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을 때 쑥스러움을 더해주던 꽃다발, 마흔 일곱에 겨우 등단하여 신인상을 탈 때 간신히 찾아간 프라자호텔 21층에서 건네던 꽃다발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다. 이제 몇 번이나 더 꽃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언제 부끄럼없이 아내에게 꽃을 선물할 수 있을까?

아내의 꽃다발 가운데 가장 소중한 꽃다발은 턱없이 모자란 내 안을 채워주는 마음의 꽃다발이다. 아내의 마음의 꽃다발에는 밴댕이 속 같은 내 안을 훤하게 틔워주는 환한 수국도 있고, 비난하는 마음을 달래주는 청초한 목련도 있다. 영화와 현달이 삶의 목표라고 끝없이 유혹하는 욕망을 물리치는 가시 큰 장미도 있으며, 기름지고 빛깔 좋은 것만 따르려는 눈과 코를 혼내주는 향짙은 백합도 있다.

아내의 보이지 않는 꽃다발은 이제 곧 知命을 맞게 되는 내 나이가 속됨의 구렁에 떨어지지않게 하는 안전대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보잘것없는 나에게 내린 신의 소중한 꽃다발이다.

나는 늘 이렇게 아내를 믿으며 살고 싶다. 옛날에는 가까운 곳에 숲이 보이는 바람 맑은 계곡에 빨간 벽돌집을 짓고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이 꿈이었으나, 그건 내게 너무 호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것도 당신이었다. 다만 훌훌 털고 2박 3일만이라도 아무 걱정 없이 제주라도 다녀오는 것이, 아니면 당신이 우겨서 사준 무쏘를 끌고 남해안으로 동해안으로 한바퀴 돌아 치악산 아래 정말 러브가 있는 러브호텔이 있다면, 거기에서 하룻밤 자고, 정상에서 남이 안 볼 때 들꽃이라도 모아 조촐한 화관(花冠)이라도 씌워주는 것이 소망이 가난한 나의 작은 소망이고, 꽃 한 송이 건네 보지 못한 나를 속죄하는 길일 것이다.

2001 1. 27 동양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