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아내의 김치
느림보 이방주
2001. 4. 1. 17:51
나는 검은 콩밥을 좋아한다. 검은콩을 눌린 누룽지나 그걸 따끈하게 끓인 누른밥은 나를 향수에 젖게 한다. 누른밥을 한 숟가락 넘치게 떠서 속살이 노랗게 익은 배추김치를 올려놓아 한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어머니 맛이 되살아온다.
어렸을 적 병약했던 내가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분수에 넘치게 놀다 집에 들어오면, 저녁 먹기 전에 잠인지 혼절인지 모르게 아랫목에 쓰러진 적이 많았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저절로 일어날 때까지 그대로 두신다. 한밤중 겨우 일어나면 그제야 쓰러진 내 옆에 묻어 두셨던 검은콩을 드문드문 박은 쌀밥을 속살이 노랗게 숙성한 오동통한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물 말은 밥숟가락 위에 얹어 그리 뜨겁지도 않은데도 한 번씩 '호…' 불어서 떠 먹여 주셨다. 뭐든지 맛없어 하던 나는 잠결에도 어머니의 쓰린 사랑이 담긴 밥숟가락을 맛나게 받아 먹었다. 그 새곰새곰한 맛,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맛, 깊지도 얕지도 않은 맛, 그윽한 그 맛에 취해서 또 쓰러지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안쓰럽게 등을 쓸어 주셨다.
중학교에 들어가 어떤 처방도 없이 나의 건강은 제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어머니의 밥을 먹기 힘들었다. 누님들이나 형수님이 출산을 하면 어머니는 내 차지가 되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그 후 내가 6년간 객지 생활을 하고, 청주에 돌아와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여 다시 자취를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김치 맛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객지의 잡스러운 맛에 입맛이 기준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치의 참맛을 몰랐다.
내가 장가를 가 아내가 처음 담근 김치는 영 제 맛이 아니었다. 아내의 김치는 담글 때마다 맛이 달랐다. 제 맛을 찾을 줄 모르는 아내의 김치는 나의 구미를 더욱 방황하게 하였다. 어떤 때는 싱겁고, 어떤 때는 짜다 못해 쓴 맛을 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군둑내가 나기도 하였다. 집안 어른들이 오시면 냉장고가 제 기능을 못해서 그렇다는 둥, 김치 그릇이 플라스틱이라 그렇다는 둥, 배추가 덜 영글어 그렇다는 둥, 건강을 위하여 일부러 싱겁게 담갔다는 둥 애매한 것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핑계 대기에 급급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고 결혼 십 년쯤 되면서, 나는 아내의 김치 맛에 자신을 갖기 시작했다. 드디어 처가에 가면 나를 반하게 했던 처남댁의 김치 맛을 뛰어 넘어 어렸을 적 먹던 어머니의 김치 맛을 따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임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짜증나고, 외식이 싫어졌다. 여간해서 아내에게 좋은 말을 하지 못하는 나도 밥상 앞에서 김치를 먹을 때만큼은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누님이나 형수님이 오셔도 다들 아내의 김치를 칭찬하였다.
그로부터 김치에 관한 한 자신이 생긴 아내는 모든 김치를 다 맛나게 담근다. 배추김치는 물론이고, 총각김치는 총각김치대로 옛날 맛을 되살려 냈고, 동치미, 파김치, 열무김치, 무김치, 깍두기, 오이 김치, 미나리 김치, 나박김치, 고들빼기 김치, 어느 하나도 실수하는 법이 없다.
작년에는 동치미를 담그는데 아내의 말대로 초정 약수를 떠다 김치 국물을 부었는데 빨리 시어지지도 않으면서 참으로 시원하고 신비스러운 맛을 내었다. 지난가을에는 덕산 어느 농가에서 산밭에 마구 뿌려 놓은 총각무를 그냥 버린다기에 정부미 가마니로 두 가마니나 뽑아 왔다. 무는 잘 자라지는 못하였다. 작고 여리었다. 무 값보다 다듬는 품이 더 들 것 같았다. 다만 황토 흙이라 무가 잔뿌리 없이 깨끗하고 연했다.
이튿날 마침 일요일이라 둘이서 종일 다듬어 씻어서 허리가 아프게 총각김치를 담갔다. 너무 많아서 김치통에 담고, 단지에도 담아 베란다에 두기도 했다. 고춧가루를 넣기도 하고 그냥 소금에만 버무려 놓기도 하였다.
고게 맛이 들면서 밥상은 온통 김치의 천국이었다. 엄지손가락 만한 무를 통째로 입안에 넣으면 아삭아삭 씹히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듯했다. 양념도 고춧가루도 모두 신비스러울 정도로 적당히 버무려져서 곰삭아 황홀한 맛을 내었다. 재료들 각자가 본래의 제 맛을 초월하여 새로운 맛을 내는 것이다.
아내의 김치 담그는 법은 별다른 게 없다. 남보다 더 양념을 많이 쓴다든지 무슨 남모르는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깨끗이 씻어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을 알맞게 버무리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혀를 홀랑 반하게 하는 희한한 맛이 없이 그냥 옛날 우리의 보리밥처럼 투박한 맛을 내다가 숙성되면 빛깔과 향기부터가 남다르게 변하고 그윽한 맛이 나는 것이다.
김치 담그는 일은 별게 아닌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간을 잘 맞추는 일일 것이다. 소금에 알맞게 절이고, 고춧가루, 마늘, 파, 멸치젓, 등을 알맞게 넣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모든 재료들이 상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간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아리고, 너무 적으면 군둑내가 나고, 고춧가루가 너무 들어가면 맵고 너무 적으면 메슥거리게 된다. 재료의 양을 적당히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김치의 생명이다. 이렇게 알맞게 버무린 다음에는 숙성하기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다. 알맞은 온도를 유지하기에는 우리 흙으로 빚어 장작불에 구워낸 토기에 담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에 묻을 수 있으면 더욱 좋으련만 거기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즉 온도의 간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조건이 잘 맞으면 배추든 무든 속살까지 고추 국물이 배고 간이 배어 적당한 온도에 알맞게 곰삭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을 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속내에 똑같은 오욕칠정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다 같은 배추에 어떻게 간을 맞추느냐에 따라 김치의 맛이 달라지듯이 그것이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이는 것이 아닐까. 기쁨을 드러내는 것도 때와 장소가 있을 것이고, 슬픔을 드러내는 데에도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드러내는 정도도 간이 맞아야 잘 익은 김치처럼 곰삭은 맛이 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김치의 간을 잘 맞추는 사람은 삶의 간도 잘 맞추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는 김치의 간은 잘 맞추면서 삶의 간 맞추기에는 서툴고, 김치의 간 맞추기는 서툴더라도 삶의 간은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사람도 있다. 김치 담그기나 삶의 간 맞추기나 진솔하게 노력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경계할 것은 간 맞추기에 서툴다 하여 서둘러 화학 조미료라는 극약을 쓰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입맛이 기준을 잃고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얼마나 많은 화학 조미료들이 창궐하고 있는가? 음식에서나, 삶의 행태에서나, 세상은 온통 낯간지러운 화학조미료가 판치고 있다. 하루 빨리 옛 여인들의 손끝에서 묻어나는 진솔한 조미료를 찾아야 한다. 어머니의 그것처럼, 아내의 그것처럼.
어렸을 적 병약했던 내가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분수에 넘치게 놀다 집에 들어오면, 저녁 먹기 전에 잠인지 혼절인지 모르게 아랫목에 쓰러진 적이 많았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저절로 일어날 때까지 그대로 두신다. 한밤중 겨우 일어나면 그제야 쓰러진 내 옆에 묻어 두셨던 검은콩을 드문드문 박은 쌀밥을 속살이 노랗게 숙성한 오동통한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물 말은 밥숟가락 위에 얹어 그리 뜨겁지도 않은데도 한 번씩 '호…' 불어서 떠 먹여 주셨다. 뭐든지 맛없어 하던 나는 잠결에도 어머니의 쓰린 사랑이 담긴 밥숟가락을 맛나게 받아 먹었다. 그 새곰새곰한 맛,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맛, 깊지도 얕지도 않은 맛, 그윽한 그 맛에 취해서 또 쓰러지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안쓰럽게 등을 쓸어 주셨다.
중학교에 들어가 어떤 처방도 없이 나의 건강은 제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어머니의 밥을 먹기 힘들었다. 누님들이나 형수님이 출산을 하면 어머니는 내 차지가 되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그 후 내가 6년간 객지 생활을 하고, 청주에 돌아와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마련하여 다시 자취를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김치 맛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객지의 잡스러운 맛에 입맛이 기준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치의 참맛을 몰랐다.
내가 장가를 가 아내가 처음 담근 김치는 영 제 맛이 아니었다. 아내의 김치는 담글 때마다 맛이 달랐다. 제 맛을 찾을 줄 모르는 아내의 김치는 나의 구미를 더욱 방황하게 하였다. 어떤 때는 싱겁고, 어떤 때는 짜다 못해 쓴 맛을 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군둑내가 나기도 하였다. 집안 어른들이 오시면 냉장고가 제 기능을 못해서 그렇다는 둥, 김치 그릇이 플라스틱이라 그렇다는 둥, 배추가 덜 영글어 그렇다는 둥, 건강을 위하여 일부러 싱겁게 담갔다는 둥 애매한 것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핑계 대기에 급급했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고 결혼 십 년쯤 되면서, 나는 아내의 김치 맛에 자신을 갖기 시작했다. 드디어 처가에 가면 나를 반하게 했던 처남댁의 김치 맛을 뛰어 넘어 어렸을 적 먹던 어머니의 김치 맛을 따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임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짜증나고, 외식이 싫어졌다. 여간해서 아내에게 좋은 말을 하지 못하는 나도 밥상 앞에서 김치를 먹을 때만큼은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누님이나 형수님이 오셔도 다들 아내의 김치를 칭찬하였다.
그로부터 김치에 관한 한 자신이 생긴 아내는 모든 김치를 다 맛나게 담근다. 배추김치는 물론이고, 총각김치는 총각김치대로 옛날 맛을 되살려 냈고, 동치미, 파김치, 열무김치, 무김치, 깍두기, 오이 김치, 미나리 김치, 나박김치, 고들빼기 김치, 어느 하나도 실수하는 법이 없다.
작년에는 동치미를 담그는데 아내의 말대로 초정 약수를 떠다 김치 국물을 부었는데 빨리 시어지지도 않으면서 참으로 시원하고 신비스러운 맛을 내었다. 지난가을에는 덕산 어느 농가에서 산밭에 마구 뿌려 놓은 총각무를 그냥 버린다기에 정부미 가마니로 두 가마니나 뽑아 왔다. 무는 잘 자라지는 못하였다. 작고 여리었다. 무 값보다 다듬는 품이 더 들 것 같았다. 다만 황토 흙이라 무가 잔뿌리 없이 깨끗하고 연했다.
이튿날 마침 일요일이라 둘이서 종일 다듬어 씻어서 허리가 아프게 총각김치를 담갔다. 너무 많아서 김치통에 담고, 단지에도 담아 베란다에 두기도 했다. 고춧가루를 넣기도 하고 그냥 소금에만 버무려 놓기도 하였다.
고게 맛이 들면서 밥상은 온통 김치의 천국이었다. 엄지손가락 만한 무를 통째로 입안에 넣으면 아삭아삭 씹히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듯했다. 양념도 고춧가루도 모두 신비스러울 정도로 적당히 버무려져서 곰삭아 황홀한 맛을 내었다. 재료들 각자가 본래의 제 맛을 초월하여 새로운 맛을 내는 것이다.
아내의 김치 담그는 법은 별다른 게 없다. 남보다 더 양념을 많이 쓴다든지 무슨 남모르는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깨끗이 씻어 소금에 절여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을 알맞게 버무리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혀를 홀랑 반하게 하는 희한한 맛이 없이 그냥 옛날 우리의 보리밥처럼 투박한 맛을 내다가 숙성되면 빛깔과 향기부터가 남다르게 변하고 그윽한 맛이 나는 것이다.
김치 담그는 일은 별게 아닌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간을 잘 맞추는 일일 것이다. 소금에 알맞게 절이고, 고춧가루, 마늘, 파, 멸치젓, 등을 알맞게 넣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모든 재료들이 상호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간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아리고, 너무 적으면 군둑내가 나고, 고춧가루가 너무 들어가면 맵고 너무 적으면 메슥거리게 된다. 재료의 양을 적당히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김치의 생명이다. 이렇게 알맞게 버무린 다음에는 숙성하기 알맞은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다. 알맞은 온도를 유지하기에는 우리 흙으로 빚어 장작불에 구워낸 토기에 담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땅에 묻을 수 있으면 더욱 좋으련만 거기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즉 온도의 간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조건이 잘 맞으면 배추든 무든 속살까지 고추 국물이 배고 간이 배어 적당한 온도에 알맞게 곰삭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을 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속내에 똑같은 오욕칠정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다 같은 배추에 어떻게 간을 맞추느냐에 따라 김치의 맛이 달라지듯이 그것이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 보이는 것이 아닐까. 기쁨을 드러내는 것도 때와 장소가 있을 것이고, 슬픔을 드러내는 데에도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드러내는 정도도 간이 맞아야 잘 익은 김치처럼 곰삭은 맛이 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김치의 간을 잘 맞추는 사람은 삶의 간도 잘 맞추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세상에는 김치의 간은 잘 맞추면서 삶의 간 맞추기에는 서툴고, 김치의 간 맞추기는 서툴더라도 삶의 간은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사람도 있다. 김치 담그기나 삶의 간 맞추기나 진솔하게 노력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경계할 것은 간 맞추기에 서툴다 하여 서둘러 화학 조미료라는 극약을 쓰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입맛이 기준을 잃고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얼마나 많은 화학 조미료들이 창궐하고 있는가? 음식에서나, 삶의 행태에서나, 세상은 온통 낯간지러운 화학조미료가 판치고 있다. 하루 빨리 옛 여인들의 손끝에서 묻어나는 진솔한 조미료를 찾아야 한다. 어머니의 그것처럼, 아내의 그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