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00. 8. 27. 16:18

  아침 하늘이 아스라하게 높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상큼한 기온이 피부에 닿는다. 이런 날은 초등학교 운동회를 열기에 딱 맞는 날이다. 검은색 팬츠와 하얀 러닝 셔츠를 입고, 파란색 띠를 두른 흰색 운동 모자를 쓰고,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십리나 되는 길을 뛰어가던 일이 어제인 듯하다. 학교로 가는 오솔길에는 구절초 꽃이 하얗게 무더기로 피었었다.

 

  운동회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우리 마음을 들뜨게 했다. 어머니를 따라 구경간 운동회에서 우리를 가장 들뜨게 했던 프로그램은 '사탕 줍기'였다. 사탕 줍기는 취학 전 조무래기들을 출발선에 늘어서게 다음 한 30m쯤 거리를 두고 사탕을 쏟아 놓는다. 그렇게 무서웠던 총소리가 '탕' 나면 조무래기들은 한 알이라도 더 주우려고 엎어지고 뒹굴면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간다. 어떤 녀석은 '탕' 소리가 나기 전에 이미 달음질을 시작하여 여유 있게 주머니마다 불룩불룩하게 되어 달아나는가 하면, 뒤에서 걷어차는 녀석, 앞서가는 아이 팔을 잡아 재치는 놈, 등 아이들의 세계에도 변칙은 심했다. 어른들은 이런 조무래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고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조무래기들의 뜀박질이란 도토리 키 재기라 똑똑한 엄마가 귀띔해준 반칙을 쓴 아이에게 사탕이 많이 돌아갔다. 주머니가 불룩해진 아이들의 엄마는 약삭빠른 자식을 자랑하며 좋아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늘 병약하고 변변치 못하여 하얗게 질려 빈손으로 돌아온 자식을 위로하기 위해서 동네 아이들의 사탕을 얻으려고 전전긍긍하셨고, 나는 사탕 몇 알 때문에 한없이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두세 알씩 똑같이 나누어줄 줄 모르고 '사탕 줍기' 시켜 놓고 깔깔 웃는 어른들을 원망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붉게 타는 노을에도 어린 가슴은 퍼렇게 멍이 들었다. 이때부터 승부에 대해 웃고 말아도 될 단순한 경쟁을 애초부터 피하는 비겁한 습관이 생겼다.

 

  '사탕 줍기'는 세상을 지배하는 삶의 기본 원리가 되고 있다. 교육 정책의 입안자들까지도 예전과 달리 원대한 이상에 도달하는 '길'을 가르친 결과를 평가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30m 거리에 있는 '사탕 줍기'를 시키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더구나 사탕임자들이 우리의 '사탕 줍기'를 구경하면서 깔깔 웃는 것 같아 뒤통수가 근질거린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두터운 평교사의 양심과 가치관의 체에 걸러져야만 아이들의 가슴을 울린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번 가을 운동회에는 어린 가슴을 멍들게 하는 '사탕 줍기'만은 없어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1999. 9. 29. 충청일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