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축 읽는 아이(나)

징벌과 사면의 10월 26일

느림보 이방주 2025. 1. 5. 22:58

징벌과 사면의 10월 26일

 

10월 26일 1909년

영화 『하얼빈』을 봤다. 현빈이 분한 안중근이 늙은 늑대 이토 히루부미를 처단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이토 히루부미는 조선이라는 파이 나누어먹기를 협상하러 러시아로 가는 중이었다. 안중근의 총을 맞고 죽었다. 징벌이다. 그날이 1909년 10월 26일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현빈의 연기를 드러내는 구성을 피한 것 같았다. 다만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와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그것은 안중근이 전쟁 포로인 일본군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를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준 일이다. 안중근은 그에게 ‘가정을 돌보라’면서 사면했는데 그는 끈질기게 독립군을 추적하면서 야비한 근성을 보였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안중근은 이토오 히루부미를 암살한 것이 아니라 징벌한 것이다. 그는 재판정에서 이토오 히루부미는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대한제국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켰으며, 양민을 학살하고 이권을 약탈하는 범죄를 저질렀기에 징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오 히루부미는 사생활도 문란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술에 취하면 미녀의 무릎을 베고 자고, 술이 깨면 권력의 고삐를 잡는다면서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에서 모리 다쓰오도 죽음을 당한다. 영화에서나 역사에서나 비열한 인간들은 징벌을 받는다.

안중근이 교수형을 당하는 장면에 가슴이 움찔했다. 우리는 가슴 속에서 이미 영웅으로 새기고 있다. 비열하고 교만한 것들은 징벌을 당하지만, 인간적인 고뇌로 한 생명을 거두었다 해도 영웅은 역사가 사면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문득 이토 히루부미가 죽은 10월 26일이 섬뜩했다.

 

10월 26일 2018년

나를 잡아끄는 자가 있었다. 그냥 끌려갔다. 강이 보이는 언덕에 서서 검은 옷자락을 날리며 내가 갈 곳을 바라보았다. 강은 바라볼수록 을씨년스러웠다. 아니 생경하다. 그냥 ‘낯설다’보다 ‘생경하다’ 맞다. 검은 물이 넘실거리는 강 건너에는 봄볕이 따사롭다. 저긴 봄이다. 강만 건너면 도화가 아득히 떠간다는 별유천지(別有天地)이다. 왼쪽 겨드랑이를 낀 자가 한 말이다.

왼쪽 팔을 꽉 잡혀 아득한 강으로 내려갈 때 누가 나를 깨웠다.

“피검사 하실게요. 잠깐 따끔해요.”

말만 들어도 간호사 선생이다. 맞다. 나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왼팔에는 혈압측정기가, 얼굴에는 산소 호흡기가, 아랫도리에는 뭔지 모를 호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간호사가 오른팔에서 피를 뽑는 동안 생각해 보니 등골이 서늘하다. 그렇구나. 하마터면 강을 건너갈 뻔했다. 간호사 선생 덕에 개똥밭으로 돌아왔다. 모니터를 올려다보니 혈압이 80에서 90고개를 넘느라 안간힘을 쓴다. 52시간 째 저러고 있다. 온몸이 침대에 묶여 있는 것처럼 꼼짝할 수 없다. 자동으로 체크되는 혈압계가 주기적으로 팔을 죄어댄다. 간호사 선생들은 모두 분주하다. 밤인지 낮인지 세상은 늘 환하다. 고통스런 소리, 주검이 되어 실려 나가는 소리, 자지러지는 여인의 울음소리……. 괴롭다. 들리는 소리도 참기 어렵다.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날은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미동산 둘레길을 걸었다.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약 8km 쯤 걸어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두 시간이면 된다. 비 내리는 산길이 좋았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좋고 우산 위에 구르는 하얀 물방울도 보기 좋았다. 거기다가 우리들 이야기도 끝이 없었다. 1시간 20분쯤 걸었을 때 왼쪽 팔이 저릿했다. 조금 있으니 가슴까지 저릿저릿하다. 친구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길에서 30m 쯤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정자가 나온다. 비를 피할 수 있다. 거기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계단이 힘겹다. 숨이 차고 가슴이 뻐근했다. 차를 마시는데 저릿하고 뻐근함이 주기적으로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은 편안하게 차를 마셨다.

“그때 말이야. 박 대통령 죽던 날, 십이륙 말이야. 그날이 오늘이잖아.”

나는 갑자기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 죽음을 꺼냈다. 우리는 ‘십이륙’이란 사건 명칭이 붙어 있는 그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박정희’라고 그냥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불러지지 않았다. ‘박대통령’ 또는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입이 부드러웠다. ‘전두환’ ‘노태우’랑은 달랐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사면일까 징벌일까. 아무 말도 없었다. 누구도 확신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가슴이 저릿저릿한 주기가 조금 더 빨라지고 왼팔에서 기운이 ‘주르륵’ 빠지는 듯한 강도가 조금씩 심해졌다. 그래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비 내리는 습습해서 몸이 으슬으슬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대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아내에게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점심에도 고기를 먹었는데 왜 또 돈가스가 먹고 싶었을까. 동네 돈가스 전문점에 가서 왕돈가스를 배부르게 먹었다. 걸어서 집에 왔다. 저릿저릿한 주기가 훨씬 빨라졌다. 가슴이 뻐근한 것이 아니라 아프다고 할 정도였다. 비로소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가 가까이 와서 내 이마를 만져보았다. “식은땀이 나네. 식은땀이 왜 나요?” 아내가 급하게 말했다. 식은땀이라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면서 식은땀을 닦아내라고 하셨다. 아 심근경색이 오는구나. 오늘이 징벌의 날이구나. “가자, 성모병원으로 가자.” 아내는 옷이라도 갈아입으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어차피 환자복이든 수의든 갈아입을 텐데.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아내가 운전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도 내가 아버지를 주차장까지 업고 아내가 운전을 했다. 성모병원은 5분 거리이다. 응급실 안내하는 사람에게 소리쳤다. “나 심근경색이 왔어요. 어디로 갈까요.” 그 놈은 전화만 계속 받으면서 손짓으로 기다리라고 한다. 뭐야. 죽음을 기다리라는 말이야? “이 사람아 심근경색이 온다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여전히 전화에 매달렸다. 주차를 마친 아내가 들어왔다.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안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바퀴달린 침상에 올라가 누웠다. 의사가 오더니 심전도 검사를 하고 x-ray를 찍었다.

“괜찮으니까 집에 가셨다가 내일 오셔서 심장내과 진료를 받아보세요.”

이 사람 의사 맞나. 진단이 허랑하다.

“나 저기 침상에 누워 있으면 안 될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그러셔요. 집에 가셨다가 내일 오셔도 되는데요.”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침상에 누워 있으려니 주기는 점점 더 잦아지고 통증으로 변했다. 어느 지긋한 간호사 선생이 알약을 한 알 주면서 귓속말로 통증이 올 때 혀 밑에 넣으세요. 바로 괜찮아지시면 말씀하세요 한다. 조금 있으니 주기가 왔다. 혀 밑에 알약을 넣었다. 사르르 잦아들었다. 간호사 선생을 불렀다. 말했다. 급하게 심전도 검사를 했다. 의사 간호사들이 부산하다. 큰일 났다. 진행이 엄청 빠르다. 자기네끼리 소리 지른다. 이제 그 시간이구나. 얼마쯤 지나 심장내과 과장이라는 분이 왔다. 의사 간호사들이 혼쭐이 난다. 아내는 얼굴이 하얗다. 아들이 왔다. 온몸에 약병들이 주르륵 매달렸다. 의사가 가슴에 서류를 올려놓고 사인을 하란다.

“지금 바로 시술을 해야 합니다. 안하면 돌아가십니다. 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아내가 울먹인다. 가볍게 사인을 했다. 아들은 겁먹은 얼굴로 “아버지 괜찮아요. 잠시 후면 되니까 안심하세요.” 참으세요가 아니라 안심하세요다. 그래 네가 그 말밖에 할 말이 있겠냐. 이렇게 가는 것이구나. 언젠가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시장에서 산 천기대요 부록에 있는 것을 직접 따져 본 것이다. ‘초년에는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겨우 살아서 중년에는 사느라고 고생고생하다가 말년에는 많은 사람에게 고임을 받으면서 잘 살다가 장수하고 67세에 이승을 떠난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초년운 중년운이 딱 맞더니 지금이 예순일곱 살이구나. 떠날 시간이구나. 강을 건너갈 때 강가에 배웅 나온 아들에게 하려고 꼽아놓은 말들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말았다. 이미 세상이 다른데 그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입을 다물었다.

심장 조영실이라는 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영화 촬영장 같았다. 알몸이라 몹시 추웠다. 춥다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이 뭔가 덮어주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하는 말들이 다 들렸다. 강 건너 마을은 추울까. 내가 강을 건너간 뒤 사람들은 뭐라 할까. 징벌이라 할까? 팔목을 베고 혈관에 케이블을 넣어 쇠붙이를 집어넣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느낌이 있다가 모르겠다. 하나를 마치고 또 하나를 마치고 또 하나를 마칠 때까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다. 전혀 징벌일 수 없는 어머니, 1994년 10월 26일 새벽, 내 서재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눈을 감겨 드리면서 눈물에 젖은 엄마의 속눈썹을 보았다. 나는 계속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엄마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는 아주 착하고 예쁘게 눈을 감으셨다. 강 건너 마을에 가면 예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시술을 50분 걸렸다고 한다. 중환자실에서 72시간 질곡의 징벌을 받았다. 어느 문우가 전화를 했다. ‘괜찮으세요? 관세음보살을 계속 부르세요.’ 아득하다. 정말 관세음보살이 아픔의 소리를 들으실까. 문우의 말대로 계속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혈압이 110을 넘기자 중환자실은 나를 풀어주었다.

일반병실에 가니 72시간 묵은 변을 볼 수 있었다. 시원하다. 나를 묶어둔 예순일곱으로부터도 풀려났다. 징벌로부터 사면의 순간이었다. 2018년 10월 26일이다. 지금 내 생은 덤이다.

이제 역사가 누구를 징벌하고 누구를 사면할 것인가 결정할 순간이다.

(2025.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