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14] 로고스의 물,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14]
이호윤 수필 「로고스의 물임을」 ---『수필미학』 2024년 봄호 게재
로고스의 물,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
이방주
‘먼 훗날 먼 바다에서 비가 되어 돌아와 꿈결인 듯 내 딸에게 속삭일 수 있으려나.’
계간 『수필미학』 2024년 봄호에 게재된 수필 「로고스의 물임을」의 작가 이호윤은 이렇게 소망한다. 이 한 줄의 문장에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의 순환원리를 담아냈다. 평범한 일상에서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 즉 로고스를 체득한 철학수필이다.
작가는 ‘로고스의 물’이라는 하나의 화두에 두 줄기의 사유를 담았다. 하나는 ‘내 안의 물줄기가 마르는’ 고통이다. ‘생명의 물’이 빠져나가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렇게 육체의 메마름은 ‘영혼의 건조함’까지 불러온다. 그래서 물은 육체와 영혼을 존속시키는 원소임을 깨닫는다.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기를 찾는다. 비는 마중물이 되어 ‘내 몸속 물줄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에너지이며 로고스의 물임을 확인한다.
또 한 줄기의 사유는 대우주에 스며있는 물기의 근원적 원리이다. 물기는 대우주의 별, 땅, 모든 숨탄것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넣어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바다도 본래는 산이었고 강이었고 작게는 인간의 눈물이었다는 사유에 이르게 된다.
두 줄기의 사유는 작은 물방울로부터 시작하여 결국 하나도 통합된다. 물방울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누군가의 영혼인 눈물로부터 시작되어 빗방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메마르면 육체가 메마르고 그것은 다시 영혼의 메마름을 불러오면서 끊임없이 순환한다. 소우주인 인간이나 자연을 넘어 대우주는 모두 초미세한 물 원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존재의 원리이므로 ‘로고스의 물’이라 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 존재와 현상의 근본 원리가 물이라는 말이다. 물이 단순한 근원적 물질이라는 의미만은 아니라고 본다. 이와 달리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os)는 ‘만물의 근원은 불’이라고 했다. 탈레스는 근원을 말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를 말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의 오행상생원리로 이해하면 사물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화하는 통합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자연과 우주의 모든 현상과 인간의 육체와 정신세계는 이성이 중심이 되는 로고스의 원리에 의해 운용되고 순환하며 영속한다.
철학을 주제로 하는 수필은 자칫 논리에 매몰되기 쉽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상의 체험에서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를 통섭하는 사유로 천착해낸 작품이다. 가령 우리네 일상에서 내뱉는 한마디 말이나, 권하는 한 잔의 커피도 로고스의 물일 수 있다는 생활의 철학이다. 관계와 존재의 세계에서 일거수일투족이 다 로고스의 물이라는 깨우침을 주는 작품이다.
로고스의 물임을
이호윤
수필 교실 수강 첫날. 잠들어있던 오래된 욕망에 눈떠 마침내 글 쓰는 일에 나선 첫 발걸음이었다. 라디오에선 때마침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늘이 새로운 삶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작은 설렘과 떨림으로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알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그 순간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보였다. 차 유리에 알알이 맺힌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던 것이다.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에선 소리도 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은 엄마의 반짝이는 눈물이었다. 내 출발을 축하해 주는 기쁨의 눈물. 엄마를 잃은 슬픔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몇 해 전부터 부쩍 나는 내 안의 물이 마르는 것을 느껴왔다. 강물이 말라버려 바닥을 드러내듯 생명의 물이 내게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중이다. 12만 km에 이른다는 혈관이지만 작디작은 몸속에 있으니 그 과정은 순식간에 낱낱이 드러난다. 생명 유지에 가장 영향을 덜 미치는 피부와 작은 물줄기인 눈 혈관부터가 시작이었다. 각막이 찢어지고 발바닥도 갈라졌다. 물이 부족하니 피는 끈적해지고 온갖 곳에 염증이 들러붙는다. 촉촉해야 할 연골에마저 수분이 부족하고 활동에 제약을 받으니 로고스는 말할 것도 없고 영혼의 건조함마저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주 조금씩 저 멀리 바다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로고스가 내게 속삭인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필시 나는 바다로, 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겠기에 순순한 마음이다. 마당의 흰 목련도 물을 거두어 돌아갔듯이 내게도 그때가 다가오고 있음이니. 목련도 나도 숨 탄 모든 것들도 강물과 바다와 한가지로 돌고 도는 중이다.
오늘 오후에도 그날처럼 비가 왔다. 조용한 거실에 혼자 앉아 있던 나는 문득 본능적으로 차오르는 물기를 느꼈다. 두터운 커튼을 걷고 베란다로 나가 보니 새하얀 구름이 떠가는 맑은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신비로웠다. 창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내미니 열어젖힌 온몸의 세포마다 물기가, 생명의 힘이 빨려 들어오는 것만 같다. 거울을 보지않아도 촉촉한 내 얼굴엔 생기가 돌고있으리라. 비는 마치 마중물처럼 내 몸속 물줄기를 끌어올리고 있으므로. 나는 물,로고스의 물이다.
인간을 일컬어 ‘소우주’mikros kosmos라 불렀던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들’은 더할 수 없이 쪼개진 작디작은 물방울들이 아닐까 하고 상상한 적이 있다. 소우주인 우리 몸속에서 끝없이 흐르며 움직여 결합과 해체를 계속하는, 생명이게 하는 원자 말이다. 물질적 존재인 원자로는 영혼의 경계를 찾을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던 데모크리토스가 그래서 나는 안타까웠다. 만약 그가 진실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던 것이라면? 무릇 과학이란 증명해 내는 바로 그 순간까지는 그저 이론에 불과한 것이니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소우주 속의 초미세한 물 원자들이 바로 로고스를 담은 생명이라면? 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에 나오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언제나 강이다. 그리스 신화의 레테강은 이승의 마지막 기억을 말끔히 씻어내기 위해 영혼들이 허겁지겁 마셔야 했던 생명의 물이기도 했다. 살아서는 육체에 머물고 죽어서는 영혼을 어루만지는 신비로운 물.
작은 우주인 내 몸속에서 물은 끝없이 작용하며 새로운 피를, 뼈와 근육과 혈관과 온갖 호르몬과 체액 등 수없이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는 또한 대우주의 호수요 강물이며 바다다. 언제고 호수로 강으로 바다로 돌아가는 빗물처럼 소우주인 나 역시 그러하겠지. 내 안에도 그 물이 흐른다. 내가 곧 빗물이요 강물이며 바다인 것을 깨닫는다. 제각기의 흐르는 시간으로 저마다의 길로 수많은 로고스의 물이 바다로, 하늘로 돌아가는 것도.
하늘과 별과 바람과 땅 그리고 숨 탄 모든 것들에는 물기가 스며있다. 뿌옇게 병든 하늘의 얼굴을 씻어주고 외롭게 떠도는 바람의 눈물이 되어주고 땅 위의 숨 탄 것에게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바다는 그렇게 오랫동안 하늘이었고 바람이었고 강이었다. 그리고 땅 위의 모든 숨탄것들까지도 모두 물이었다. 나도 물이다. 그 일체감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돌이켜보니 먹고 마신 모든 것 중에 좋은 물만 있진 않았다. 약이든 술이든 몸에는 틀림없이 독이었을 그것들. 내게, 바다에게 무슨 짓을 하며 살았는지 몹시 미안하다. 내 몸속 오염된 피가 낯선 이물질로 더럽혀진 비좁고 낡은 혈관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그리고 마침내 내가 돌아갈, 그리고 내게 돌아올 호수가, 강이, 바다가 건강하기를 기도한다.
그러면 혹시 먼 훗날 나 역시 먼 바다에서 돌아와 내 딸에게 꿈결인 듯 비 되어 속삭일 수 있으려나?
이호윤
sugarqn1203@naver.com
서울 출생. 한국수필 등단(2021)
한국수필작가회, 수필미학작가회, 충북수필문학회, 무심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