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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12] 전략적 상상을 통한 자연과 소통

느림보 이방주 2024. 5. 20. 18:05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12] 이방주

이승숙 수필 <불돌> ---『선수필』 2024년 봄호 게재

전략적 상상을 통한 자연과 소통

 

인간은 자연이 존재하는 모습에서 삶의 이치와 방법을 배워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 이른바 자연과 인간의 통섭이다. 수필가는 소재로 선정한 자연 속의 일상에서 독창적인 시선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를 찾아 개념화한다.

이승숙의 〈불돌〉은 《선수필》 2024년 봄호에 게재된 작품으로 자연과 소통하는 전략을 잘 보여주었다. 투명인간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사는 ‘작은아이’와 이것이 답답한 엄마 사이에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중심화소이다. ‘불돌’에 눌려 ‘차깔한 마음’을 풀지 못하는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마들가리 같은 삶에 지친’ 자아의 마음을 먼저 비워간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자연의 이법(理法)에 물어야 한다. 자연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이를 위해서는 상상의 전략이 필요하다. 장마철 길 위에 기어가는 지렁이의 숨어 있는 마음을 읽어내야 하고, 발길에 차이는 낙엽이 품은 우주의 질서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상상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작가는 통도사를 찾아간다. 통도사는 불보사찰로 금강계단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이다. 일주문 옆에서 수양매화를 본다. 땅을 향해 피어난 수양매화에게 ‘땅을 하늘 삼아’ 겸손을 잃지 않는 마음 배우기를 한다. 욕망과 이기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소통의 첫 단계이다. 다음에는 자장매화를 본다. 자장매화는 자장율사의 창건 이념을 기리기 위해 370년 전에 스님들이 심었다고 한다. 작가는 화려함의 극치이면서 ‘변함없는 꽃으로 젊음을 과시’하는 모습에서 까마득하게 잃어버린 자아의 젊은 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 신성한 가르침으로 상대인 ‘작은아이’를 심중에 품어 안게 된 것이다. 상대에 몰입하여 자신을 비워나가면서 궁극적 본질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신보다 자연에게서 더 성스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자장매화가 부처고 보살’임을 깨달은 것이다. 진정성으로 인하여 심중에 내재되어 있는 영성(靈性)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매서운 추위를 겪었을 때 매화향은 더 짙어진다. 인간도 고통을 겪어 이겨낼수록 덕은 더 커진다. 대상에 몰입하여 자연과 합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작은아이’ 방문을 열고 마음을 짓눌러온 불돌을 빼어 날린다. 자연을 모방한 엄마의 비움과 성숙에서 ‘작은아이’도 곧 성숙을 배우게 될 것이란 여운을 남긴다. 비움으로 얻는 채움으로 상상을 끝맺는다.

이 작품은 자연의 존재 방식을 모방하여 자아의 존재 방식을 배우는 과정을 상상적 소통전략을 통하여 드러낸 작품이다. 수필 한 편으로 인간, 자연, 우주의 본성과 상관관계를 인식하여 비움과 채움이라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깨달음을 준다. (6.9매)

 

불돌

이승숙

작은아이의 방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투명 인간처럼 지낸 게 달포가 다 됐지 싶다. 문을 열었다는 건 마음을 풀고 싶다는 신호다. 묵언으로 시위하는 아이나 엄마인 나도 힘든 시간이다. 시시때때로 버럭 대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적이 당황스럽다. 그럴 땐 ‘엄마’라는 자리를 던져버리고 싶다. 휘날리는 봄꽃처럼 내 마음이 난무한다.

화로의 불이 쉽게 사위지 않도록 눌러 놓는 돌이나 기왓장 조각을 불돌이라 한다. 평소 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차깔한 마음을 풀지 못하는 제 속은 오죽할까 싶다가도 마들가리 같은 삶에 나도 지친다.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것과 알량한 자존감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나도 아이의 마음을 풀려고 애달파하지 않는다. 노년의 나이에 그럴 기력도 없거니와 나 또한 냉전으로 응수한다. 제풀에 지친 아이는 슬금슬금 나의 눈치를 보며 화해의 시간을 잰다. 그러면서도 먼저 다가오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뿐이다.

하늘하늘한 봄바람이 꽃구경하기 좋은 날이다. 곧장 통도사로 차를 몰았다. 일주문 옆 수양매화가 다소곳이 꽃잎을 연다. 꽃이 피고 질 때까지 겸손을 잃지 않고 땅을 하늘 삼아 피는 매화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만첩홍매화와 분홍매화가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매화 꽃잎은 보통 다섯 장이 기본인데 다섯 장 이상인 것을 만첩 매화라고 한다.

영각 앞 자장 매화가 흐드러지다 못해 붉은 불을 뿜는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화려함의 극치다. 바람 따라 코끝을 스치는 매향에 정신이 아슴아슴해진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수많은 사진사 틈에서 나도 몇 컷을 눌러 본다. 이런 모습이 일상인지 지나는 스님은 무정한 눈빛 한번 줄 뿐이다. 매화는 수백 년 세월에도 변함없는 꽃으로 젊음을 과시한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까마득한 날이다.

달 밝은 밤, 그 누군가는 이곳에서 흐느끼며 울지 모른다. 왠지 외롭고 고독한 자들의 마음을 곱게 안아줄 것 같다. 그 어떤 절대적인 신보다도 자연이 더 성스러울 때가 있다. 꽃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꽃처럼 화사하다. 행복을 주는 자장매화가 부처고 보살이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꽃잎도 공중 부양을 한다. 꽃 지기 전에 어서 벗들을 초대해야겠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이어도 좋고, 안개비나 작달비가 내리는 날은 더 운치가 있을 테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칠 때 향이 더욱 짙어진다고 한다. 자장매화의 특성이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고 자장율사의 지계(持戒) 정신을 표현한다고 해서 자장 매화라 한다. 매화에 취한 사이 벌써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다. 상춘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도 곧장 집으로 향한다. 밀려드는 자동차의 붉은빛이 만개한 홍매를 뿌린 듯 눈이 부시도록 환하다.

어곡 교차로에서 ‘퍽’ 하는 순간 홍매의 환영에서 깨어났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난 것이다. 평소에 눈 감고 다녀도 훤한 길이다. 그것도 좌회전 1차선에서 직진하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다. 복잡한 퇴근시간에 협소한 공단길로 왜 접어들었을까. 아직도 그게 의문이다. 분명 넓은 국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엊저녁 꿈자리가 사납더니 꿈땜을 톡톡히 한 셈이다. 나의 안 좋은 꿈은 예전에도 신통하게 맞아떨어졌었다. 몸 안 다친 게 어디냐며 지인들 모두 이구동성이다. 내 생애 제일 비싼 매화도 봤겠다, 올해는 꽃길만 펼쳐지리라 믿으며 혼자서 위안 중이다.

작은아이의 방문을 열다가 화들짝 놀랐다. 책상 위 선물 보자기의 매듭이 가위로 싹둑 잘려져 나갔다. 끈을 자르는 건 이해를 하지만 보자기를 그것도 새 보자기를 자르다니. 화가 나기는커녕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매듭을 풀기보다는 가위를 먼저 들이대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오해를 풀기보다는 그냥 자르는 편이다.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냥 덮어 버린다. 정면 돌파보다 혼자서 더운 가슴을 식히다가 끝내는 내 마음을 닫아버린다. 어쩌면 마음 다치는 게 두려워서 미리 울타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모든 게 내 탓이지 싶다가도 결국은 깊은 가시가 된다.

찬바람에도 꽃이 피는 강한 기질의 매화처럼 아이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아이의 방문과 창문을 열어젖히고 갇혀 있던 불시울들을 끄집어낸다. 오래도록 감추었던 가슴 안의 불돌도 모두 빼어 날린다. 삼월의 햇살이 갈지자로 들어와 앉는 봄, 봄이 또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윽한 매향이 휘도는 봄의 만찬이다.

 

이승숙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10년 《수필과비평》 등단.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산수필과비평, 드레문학회 회원.

수필집 : 『이화, 달빛 사르다』 『매화 홀로 난분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