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4] 240325 ‘고백 없는 길에 대한 그리움’(임미옥의 수필 이방주 단평)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4] 이방주 ‘고백 없는 길에 대한 그리움’
임미옥 수필 <그해 눈 오던 날> ---『좋은수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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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없는 길에 대한 그리움
사랑은 고백하는 순간부터 의무가 된다. 고백의 말은 윤리적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의 과오를 고백하거나 미래의 다짐을 고백하는 말도 용기로부터 비롯된다. 수필은 고백의 심정을 받아 쓴 글이기에 윤리적 책임감이나 부끄러움을 넘어설 용기가 필요하다.
월간 『좋은수필』 1월호에 발표된 임미옥 수필가의 작품 <그해 눈 오던 날>을 읽는 동안고백 없는 줄다리기가 가슴을 졸이게 했다. 두 청춘의 ‘말 걸어오기’ 줄다리기의 배경은 눈 쌓인 밤길이다. ‘눈 내리는 달밤’이라는 배경처럼 이들의 내면은 아이러니하다. ‘폭설에 미끄러운 길’ ‘달빛에 빛나는 눈길’ ‘잠자던 새가 푸다닥’ 날아가는 길을 ‘영화 같은 로맨스’를 기대하며 설렘과 무서움으로 걸어간다. 이들 속내에는 말 걸어오기에 대한 ‘기다림’과 ‘불안감’이 공존한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사람들로부터 걸음을 늦추어 ‘맨 뒤에 처진 것은 둘 뿐’이라 느슨했다가 다시 팽팽해지는 심리적 변화를 고백한다.
과거에는 고백하지 못한 일을 지금은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다. 이 작품의 작가도 고백 없는 길을 걸었던 기억을 소환하여 지금 고백할 수 있는 양면성은 액자형 이야기 구조의 효과이다. 수필의 화자는 대개 작가와 일치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한 사람이지만 화자는 둘로 나뉜다. 기억을 소환하여 고백하고 있는 현재의 서술자와 소환된 기억의 시간에 고백 없는 서사를 잔잔한 어조로 들려주는 이른바 초점화자가 있다. 현재의 서술자는 소환된 서사의 초점화자와 다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환하고 성숙한 다른 인격체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말을 건넬 수 없었던 일을 지금은 쉽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필적 착시 현상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고백 없는 길에서의 서사에 서정성 담아 잔잔하게 고백하여 효과를 거두었다.
수필이 독자에게 가까이 가려면 서사와 서정이 조화를 이루어 읽는 재미를 주어야 한다. 서사에 치우치면 한낱 이야기에 머물고, 서정이 지나치면 주관적 고백이 노출되기 쉽다. 서사와 서정이 조화를 이루어 설리(說理)에 맞게 삶의 보편적인 의미로 개념화될 때 독자의 인지적 정서적 공명을 얻어낼 수 있다. 이 작품은 서사적 구성이 치밀하고 그에 맞는 서정성이 내리는 눈이 가져다주는 신비와 낭만을 거쳐 그리움과 순수로 귀결되어서 읽는 이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초점화자가 경험한 고백 없는 길의 신비스러운 눈은 서술자가 맞는 오늘에도 신비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초점화자가 기억의 끝에서 서술자를 만나 오버랩 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고백 없는 눈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해 눈 오던 날/ 임미옥 (좋은수필 2024년 1월호)
부드러운 깃털들이 한들한들 내려온다. 하얀 영혼이라도 있는 듯 나풀거리는 눈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끝을 알 수 없는 곳, 영원이라고 하는 그 어느 곳, 시간을 넘고 공간을 지나서 오는 눈…. 눈은, 신비를 담고 온다. 눈은, 낭만을 주고 맑은 마음이 되게 한다. 별 조각 같은 그리움들을 싣고 날리면서 내 젊은 날 순수를 떠올리게 한다.
가슴이 허허롭던 그해 겨울날, 동전만 한 눈이 종일 비처럼 퍼부었다. 약속한 적 없으나 누구라도 만날 것처럼 공연히 설렜다. 그날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니,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 때문이었다. 장터 ‘맛나당’ 빵집에 들어섰다. “이게 누구야! 이렇게 만나는 행운은 눈이 주는 선물이야!” 한 남자 선배가 큰 소리로 반겼다. 나는 커다랗고 둥근 함석 난로 연통을 두 손으로 감싸 손을 녹인 후, 그와 마주 앉아 성냥개비를 쌓으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제법 진지하게 주고받았다. 마음을 나누는 연인 사이가 아니어도 허한 가슴을 조금 정도 채울 수 있었다.
어느 겨울에는 영화 같은 일도 있었다. 방학이라 유치원에 출근할 일도 없는데 그날도 아침부터 눈이 날렸다. 무작정 청주로 나와 눈을 맞으며 목적이라도 있는 양 성안길을 걸었다. 양화점 앞을 지날 때 충동이 일었다. 양화점에 들어가 헌 구두를 버리고 새 구두를 신고 나와 사뿐사뿐 걸었다. 그러다 극장에서 영화 한 편으로 마음을 채우고 나오니 눈송이가 동전만큼 커져서 쏟아지고 있었다. 음악다방으로 들어갔다. 쪽지에 자니 호튼의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All For The Love Of A Girl)’을 적어서 뮤직 박스에 건네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막차를 타게 되었다.
버스에 올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저녁에 환하던 달마저 숨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청주에서 오십 리 되는 고향으로 가던 버스가 중간쯤 가다가는 미끄러워 더는 못 간다면서 내려놓고 가버리는 거다. 사람들이 순하던 시절이었다. 승객들 의사는 개의치 않고 한밤중 노상에 내려놓았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만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이도 있었다.
폭설로 버스가 더는 못 가는 것이 낭만으로 여겨졌다. 부모님께 확실한 핑계를 댈 수 있었으니까. 승객 중에 낯익은 청년도 있어서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그와 함께 설원에 취해 먼 밤길을 걷게 될 것이다. 긴 행렬 속에서 영화 같은 로맨스가 생기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청년은 아침마다 큰 기와집 대문에 기대서 내가 유치원 어린이 손을 잡고 출근하는 걸 바라보곤 했었다. 그 구간을 지날 때면 그의 시선을 뒤통수에 느끼며 지나곤 했었다.
걷기 시작하자 쏟던 눈이 멈추고 뽀얀 달님이 나왔다. 달빛에 반사돼 하얗게 빛나는 눈길을 사람들은 패잔병들처럼 터벅터벅 걸었다. 그 청년은 나보다 몇 걸음 정도 앞서서 걸었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무심히 걷는 그의 어깨 위로 휘영청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걷고 걸어도 앞서 걷는 그룹과 나와의 간격이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걸어도 내 보폭이 작아서 일행들과 점점 멀어지자 나 혼자 많이 뒤로 처지면 어쩌나 불안했다.
손목시계는 자정을 향해 달린다. 그때다. 그림자처럼 걷던 그 청년이 걸음을 늦추는 게 아닌가. 뒤를 돌아보지는 않으나 나와 속도를 맞추어 천천히 걷는 것이 분명하다. 뒤처진 내가 신경 쓰인 걸까? 남들처럼 빨리 가지 않고 걸음을 늦추는 걸 보니 내게 신경 쓰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맨 뒤에 처진 건 우리 둘뿐이다. 그런데 그는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나 보다. 큰 기와집 대문에 기대어 내가 출근할 때마다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얼굴을 붉혀 설렘을 주더니 오늘은 목석이라도 됐나 보다.
그는 내게 말을 걸고 싶은 의향은 없어 보였다. 내가 한걸음 뒤에 걷고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 같았다. 길가 나무에서 잠자던 새가 푸다닥! 하고 저쪽 나무로 옮겨 가거나 풀숲에서 작은 동물이 지나는 기척이 날 때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백설 옷을 입은 나무들이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온통 무서운 것뿐이라 주변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땅만 보고 걸었다. 머리카락이 쭈뼛할 때마다 그의 팔을 잡고 같이 걷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끝내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럴 거면서 출근하는 나를 왜 바라보았을까. 큰 기와집이 다가오면 옷매무새와 머리를 만졌고, 도도한 표정으로 지나곤 했는데 말이다. 큰 기와집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살았다. 아침마다 나를 기다리다 저만치 내가 보이면 분홍색 핀을 머리에 꽂은 아이가 뛰어오면서 “선생님!” 하고 불렀다. 나는 아이 볼에 뽀뽀해 주고는 손을 잡고 출근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본 것이 아니었나 보다. 강아지처럼 촐랑촐랑 나를 따라가는 그 아이가 귀여워서 바라보았는가 보다.
그는 누구일까. 그 아이 삼촌일까, 아니면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일까. 궁금했지만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가 바라본 게 내가 아니고 귀여운 그 아이였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물어보았다면 아이가 그에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니까. 아이들은 엄마랑 아빠랑 부부싸움을 어떻게 했는지 여과하지 않고 유치원에 오면 다 말한다. 그날 밤 너무 무서웠어도 말을 붙이지 않은 것도 다행한 일이다. 나에게 관심 있는 줄로 착각한 것을 들킬 뻔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를 둔 지금 내게, 영화 같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찌할까. 착각이 대수냐며 내가 먼저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출근할 때 매일 바라본 게 누구였냐고 물어볼 수 있을까. 그랬더라면 그날 새로 산 구두가 길들지 않아서 아팠던 발이 덜 아팠을 것이고, 백설 옷 입고 귀신처럼 서 있는 길가의 나무들이 무섭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하얀 눈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신비를 담고 온다. 눈은 아직 그칠 기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