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1] 240305 길 잃은 자(박엘리아 작품 한혜경 단평)
<길 잃은 자> 글/박엘리야/ 계간수필 2024 봄호
육중한 나무문을 열었다. 저 멀리 서 있던 어느 노승이 나에게 무어라 중국어로 외쳤다.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그것이 다시 나가라는 뜻인지 아니면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몰라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노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어로 계속해서 나에게 외쳤다.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친절하게도 손을 소독하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허둥지둥 손을 소독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노란 조끼를 입은 봉사자 두어 명은 기념품 판매대에 서서 무언가를 포장하느라 바빠 보였다.
절의 내벽은 작은 불상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고 층층이 쌓인 불상들은 몇천 개는 되는 것 같았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금박을 입고 손가락과 이마를 오색진주로 치장을 한 커다란 불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제 몸에 그런 번쩍거리는 것들이 둘려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듯 불상들의 입매는 평온했다.
누군가가 내 옆에 섰다. 내게 소리를 치던 노승이었다. "무어 필요한 거 있어?" 다행히도 영어로 물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내가 답했다. "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구나" 두껍고 커다란 안경 때문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는 노승이 내 쪽을 향해 말했다.
"제 숙소가 요 앞이라서 들렀어요" 예상 밖의 문장에 할 말을 잃은 나는 무언가라도 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너는 관광객인 거구나" 한결같은 어조로 노승이 답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 집은 여기서 차로 두어 시간 거리이긴 해요" 노승은 말을 멈추더니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점심 먹었어?" "아니요"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와 버렸다. "따라와" 노승이 등을 돌리고는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나는 노란 승복을 뒤따라갔다. 노승은 가다가 멈춰서더니 판매대에 있던 봉사자들의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뒤돌아 나를 보며 쑥스러운 듯 웃기에 나도 따라 웃었다.
회색 복도를 돌아 절 뒤쪽으로 들어서니 널찍한 식당이 있었다. 이미 식사 시간이 끝났는지 식당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노승은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 한 명에게 무어라 하더니 나를 맡기고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봉사자는 천으로 덮여 있던 음식들을 다시 차려주고는 먹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나는 두부와 야채로 만든 음식들을 퍼다가 커다란 원탁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먹다가 문득 옆을 보니 노승이 저 멀리 나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손을 들어 인사를 해야 할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노승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개를 다시 숙여 내 앞에 놓인 밥을 마저 먹었다. 머릿속엔 길을 잃은 것 같다던 노승의 말이 문득문득 밟혔다.
내가 길을 잃었나?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한 뭉텅이의 먼지처럼 마룻바닥을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저들에게는 내가 길을 잃은 처지로 보일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옆에 있던 과자까지 가져와 먹고 있는데 노승이 또 나에게 시선을 두며 지나가고 있었다. 길 잃은 자가 밥을 잘 먹고 있나 보살피는 것처럼. 과자를 쥔 손은 주저하는 새에 인사할 기회를 또 놓쳐버렸다.
본당으로 돌아왔다.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천장에 달린 수많은 풍등을 바라보았다. 빨간 풍등 밑에는 길게 달린 노란 천들이 앞뒤로 흔들렸다. 풍등에 달린 천에는 개개인의 바람이 적힌 글자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 검은 글귀들은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풍등이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게 꼭 붙잡고 있는 것처럼. 공간을 채운 염원의 자기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불상이 있었다. 풍등을 닮은 입꼬리를 하고 이들의 염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듣고만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아니다, 사실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다. 저들에게는 그게 그거일지 몰라도 나는 그저 가야 할 길이 없는 것이다. 내게는 염원할 것도, 염원할 곳도 없다. 내 발밑에는 단단한 땅이 있고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이 있으며 나에겐 그게 전부다.
나는 자유롭다. 목적지가 없는 내게는 소원도 의무도 없다. 다만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그 자유가 때때로 버거워질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자유를 택한다. 아니 자유가 나를 택했던가.
진정 자유로운 자에게 바치는 염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향내가 코로 흘러 들어왔다가 나갔다.
출처 : 데일리한국(https://daily.hankooki.com)
단평 /한혜경
좋은 수필은 잔잔하던 마음의 수면에 균열을 낸다. 안온함에 빠져 있던 정신을 벼락 치듯 내려치기도 하고, 소리 없이 가만가만 다가와 살며시 흔들어 놓기도 한다.
박엘리야의 수필 <길 잃은 자>는 이 균열의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외국의 절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말에서 촉발된 사유의 세계로 초대한다.
절의 노승이 작가에게 영어로 건넨 말 "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구나"라는 '예상밖의 문장'은 "내가 길을 잃었나?"라는 질문을 끌어내 곰곰 음미하게 한다. 그 결과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그저 가야 할 길이 없는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염원할 것도, 염원할 곳도 없다" 목적지가 없으므로 "소원도 의무도 없"으며, 따라서 "자유롭다"
바라는 것도 없으며 의무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차분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된 장면을 따라 흐르며 깊어진다. 길 잃은 것처럼 보여 작가에게 말을 건네고 밥을 먹었는지 챙기는 노승, 금박에 오색진주로 치장한 불상들, 식사 시간이 지나 깨끗이 치워진 식당에서 다시 차려준 음식을 먹는 작가, 빼곡하게 소원이 적힌 노란 천이 달린 빨간 풍등들.
이 장면들은 작가의 사유를 입어 사유와 한 몸이 되어 다가온다. 제 몸에 "번쩍거리는 것들이 둘려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는 듯" 입매가 '평온'해 보이는 불상들은 물질과 치장의 무의미함을 일깨우고, 풍등에 달린 천을 채우고 있는 '개개인의 바람이 적힌 글자들'이 무거워 보였다는 서술은 소원이 없는 작가의 자유로움을 떠올리게 하므로.
그런 까닭에 무심히 읽고 넘어갔던 첫 문장 "육중한 나무 문을 열었다"는 다시 읽을 때 둔중한 울림을 준다. 이 문은 절의 문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로 외쳐서 당혹스러웠지만 사실은 작가가 길 잃은 것처럼 보여 마음 쓰는 노승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끝에 잊었던 무언가가 떠오를 수 있고, 인식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출처 : 데일리한국(https://daily.hankooki.com)
◆한혜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계간수필> 수필 등단(1998) △<한국문학평론> 평론 등단(2002) △평론집 <상상의 지도> <시선의 각도> △글쓰기 이론서 <말 글 삶> <생각 글 말-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수필집 <아주 오랫동안> <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4인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