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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 공개특강 자료] 한국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의식

느림보 이방주 2023. 12. 18. 22:53

한국 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의식

-고대 설화문학과 향가를 중심으로-

 

이방주

 

Ⅰ. 문학과 죽음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
Ⅱ. 설화문학에 나타난 고대인의 死生觀
Ⅲ. 향가에 나타난 초월적 삶의 논리
Ⅳ. 성경의 부활과 한국 고대 설화에서의 재생
Ⅴ. 한국 문학에 나타난 죽음 의식
Ⅵ. 한국인의 죽음 의식을 수용한 현대수필

 

Ⅰ. 문학과 죽음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

 

인간의 삶에는 죽음이 내재해 있다. 인간은 ‘산다’는 개념 안에 언제나 ‘죽는다’라는 예측불허의 사건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삶의 방식은 바로 죽음의 방식이란 말이다.

문학이 삶의 양상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삶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죽음이라는 개념은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허구적으로 결구되는 문학적 현실에는 죽음에 대한 의식이 개재될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죽음에 대하여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한국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의식을 살펴본다는 것은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지향과 그것의 변화 과정을 파악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된 설화문학과 향가, 그리고 성경에서의 부활 신화를 통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Ⅱ. 설화문학에 나타난 고대인의 死生觀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를 의식하며 삶을 이루어간다. 미분화에서 분화의 세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발전적 사색을 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발전적 사색의 과정을 담은 것이 바로 문학이다. 그래서 선조들이 남긴 꿈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는 신화, 전설, 민담에 담긴 죽음의 문제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1. 『삼국유사』『삼국사기』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의식

(1) 초자연적인 영존(永存)의 영속(永續)으로서의 죽음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나타난 혁거세의 신이한 출생 신화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잘 나타나 있다. 혁거세 출생 신화 중에서 의미 있는 부분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상스러운 기운이 땅에 비치고 백마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하나의 붉은 알이 있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한 번 울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여기 등장하는 백마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매개자이다. 이런 사고는 초월적 세계인 천상계와 일상적 세계인 지상계에 경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세계라는 의미이다. 이런 사고는 인간이 영속적인 질서 속에 귀속하는 귀소성의 단면을 보여 준다.

그러면 박혁거세의 출생담에 담겨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은 무엇일까? 『삼국사기』에서는 죽음에 있어서 신성한 매개자는 용으로 대치된다. 『삼국유사』에서는 죽음은 하늘로 승천하는 영원한 삶이라고 표현하였다.

‘60년 9월에 금성의 우물에 두 용이 나타났는데 우레가 울고 폭우가 쏟아지고 성문이 진동하였으며, 61년 3월 왕이 승하하였다.’

‘理國六十一年 王升于天 七日後 遺體散落于地’(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던 어느 날 왕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뒤에 그 죽은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여기에서 혁거세의 죽음은 인간적인 삶의 과정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우주 질서의 영원한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은 영존(永存)에의 회귀일 뿐이다.

이러한 신이한 탄생과 죽음, 죽음에 대한 견해는 『삼국사기』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혁거세의 아들 남해왕, 탈해이사금도 신이한 출생과 죽음의 양상을 보여준다.

조동일 교수는 ‘영웅의 일생’이란 말로 영웅 서사를 다음과 같이 구조화하였다.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인물 - 비정상적인 출생(잉태) - 탁월한 능력을 타고남 - 棄兒로서 죽을 고비를 맞이함 - 조력자를 만나 구출 양육되고 죽음을 극복 - 자라서 다시 위기에 처함 - 투쟁으로 극복, 승리자가 됨(위대한 업적)

탈해의 일생을 여기에 견주어 보면 다음과 같다.

ⅰ) 용성왕국의 함달파와 적녀국의 왕녀 사이에서(고귀한 혈통)

ⅱ) 大卵으로 태어나서(기이한 출생)

ⅲ) 키가 9척이나 되고 용모가 준수하였으며 지식이 과인함(비범한 능력)

ⅳ) 알이라는 이유로 버려져서 궤에 실려 표류하다가(기아로 죽을 고비)

ⅴ) 적룡이 궤를 인도하고 해변 노모가 구출 양육(조력자를 만나 구출 양육)

 

탈해의 일에는 시련 고난의 과정을 겪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자라면서 위기를 겪거나 투쟁적으로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패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용자(龍子)인데 천상계→용성국→지상계의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의식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초자연적인 영존의 세계에서 세속적인 인간의 세계로 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천상(天上)→수중(水中)→지상(地上)의 어디에도 갈 수 있는 영웅의 신이한 왕래를 보여 이것은 신화의 세계가 넓혀진 ‘개방의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용성국의 용왕들이 사람의 태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이는 수중 세계에 대한 인간 세계의 관점에서 본 세속화를 의미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혁거세 출생담이나 탈해의 일생에서 죽음은 현상계와 상호 교류하는 천상계에의 복귀, 영존에의 회귀를 의미한다. 곧 인간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영속의 세계와의 상호 긴밀한 밀착성을 엿볼 수 있다.

 

(2)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로 스스로 선택한 죽음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조」에 기록된 이차돈의 죽음 설화에 담겨 있는 죽음의 의미를 살펴본다. 이 설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법흥왕에 이르러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자, 왕은 불교를 펴보고자 하였으나 군신(群臣)들이 반대하여 실행이 어려웠다. 이때 이차돈이 왕에게 아뢰기를 자신을 참형(斬刑)함으로써 중의를 결정하라고 하면서 만약 불도를 행하면 비록 죽어도 유감이 없겠다고 말하였다. 왕은 군신들과 달리 말하는 이차돈을 죽이게 한다. 죽을 때 이차돈이 “나는 불법을 위하여 형을 받기로 하였다. 불법에 신령이 있다면 나의 죽음에 반드시 이상이 있을 것이다.” 그를 참형하자 목이 잘린 자리에서 피가 용솟음쳐 나오는데 마치 젖빛과 같았다. 군신들은 다시는 불법을 시행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차돈의 죽음’이라는 설화에 담겨 있는 죽음 의식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불법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불교에서의 죽음에 대한 참다운 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죽음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얻을 수 있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자신은 불교의 참뜻을 깨닫고, 불교의 교리를 중생에게 전하는 이타(利他)를 택한 행위이다. 여기에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계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2. 「列傳」에 나타난 죽음

 

(1) 예언으로서의 죽음

예언으로서의 죽음으로서는 『삼국사기』에는 김유신,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언급되어 있다.

죽음은 단순한 삶의 시간적 흐름의 단계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예언하는 영험으로서의 종말을 알려주고 있다.

선덕여왕은 사물의 인과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미래를 예언하였다. 당태종이 보낸 모란 그림을 보고 향이 없음을 예언하였는데, 이것은 사물의 인과 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예지한 것이었다. 또 겨울에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여근곡(女根谷)에 숨어 있는 적병을 예언하였다. 여기서 개구리의 노한 형상은 병사의 형상이고 옥문은 여근(女根)을 의미한다. 이것은 두 개의 사물을 인과관계를 통하여 유사한 법칙에서 유추한 판단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은 이러한 경험과 과학적 사고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감성 즉 영감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삼국사기』열전에 김유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문무왕 13년 요성(妖星)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또 그 해 6월 사람들이 보니 김유신의 집에서 군사들이 울면서 나와서는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신을 보호하던 음병(陰兵)이 자신의 복이 다한 것을 보고 나가는 것이라 하여 이것을 근거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한다.

릴케에 의하면 죽음은 ‘낯선 죽음’과 ‘고유한 죽음’으로 구분하는데 낯선 죽음은 밖에서부터 우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라 삶이 완전히 성숙되기 전에 다가오는 죽음을 의미한다면, 고유한 죽음은 삶의 내재적인 필연성에 의한 죽음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보면 선덕여왕의 죽음은 ‘고유한 죽음’이며, 김유신의 죽음은 선덕여왕의 죽음보다 한 단계 진화한 ‘삶 속에 녹아 있는 죽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요컨대 선덕여왕이나 김유신의 죽음은 초자연적인 영존의 영속이라고 생각했던 혁거세의 죽음보다 한발 앞으로 나아간 인간 의식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2) 말 실수에 의한 죽음

내해이사금의 아들 석우로(昔于老)의 죽음은 후세에 계고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석우로는 내해이사금의 아들이다. 사촌인 조분왕(230∼247) 때 왜인, 백제, 고구려와 싸워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장군이었다. - (중략)- 친동생 첨해왕이 왕으로 있던 253년 왜국 사신 갈나고가 객관에 있을 때 우로가 접대하면서 그와 농담하기를 "조만간 당신네 왕을 소금 굽는 종으로 만들고, 왕비는 밥 짓는 부엌데기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왜왕이 그 말을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 우리를 치니, 대왕은 궁궐을 나가 유촌에 머물렀다. 우로가 아뢰기를 "오늘 이 환란은 제가 말을 삼가지 않은 데서 말미암은 것이니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왜의 군영에 가서 이르기를 "지난번의 말은 농담이었을 뿐이니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 지경에 이를 것을 생각했겠는가?"라고 하였다. 왜인들은 대답하지 않고 그를 잡아 섶더미에 올려놓고 불태워 죽인 다음 가버렸다.

 

(3)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죽음

삼국유사에 의하면 박제상의 죽음의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박제상의 죽음은 차원 높은 자기 실존의 본래성으로 나아가는 죽음을 의미한다.

삼국사기 열전에 언급된 살신성인의 죽음은 나라를 위해서 죽음을 겁내지 않는 견위치명(見危致命)하는 화랑정신을 들 수 있다. 신념으로서 살신 보국한 예는 해론(奚論), 소나(素那), 김흠운, 죽지(竹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나라를 위하여 죽음을 겁내지 않는 비장한 신념을 가지고 죽음을 때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살신성인의 죽음은 후에 고대 소설에 영향을 미친 원형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의 제기된 몇 가지 죽음의 양상을 토대로 두드러진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영겁 회귀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② 산신사상과 영혼 불멸 사상이 내재하고 있다.

③ 초기에는 보다 심화된 신성성이 엿보였으나, 점점 인간적 속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인류문화의 세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④ 초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죽음에 세속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목적 지향적인 죽음’이 대종을 이루게 된다. 예로 이차돈의 죽음에서 자리(自利)(불도의 참뜻을 깨닫고 실천한다는 사실)와 이타(利他)(불교의 교리를 뭇 중생에게 퍼뜨리려는 의도)를 들 수 있고, 열전에서 유교적 충효열의 의미를 부여하는 죽음을 ‘목적 지향적인 죽음’이라 할 수 있다

 

3. 『삼국유사』에 수록된 고대 설화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의식

 

(1) 산신으로 복귀하는 죽음

『삼국유사』에 게재된 단군신화에서는 단군의 출생 과정에서 환웅과 웅녀가 결혼하는데, 이것을 신끼리의 결혼인 신성혼으로 해석하였다. 즉 환웅과 웅녀의 혼인을 남성 원리의 천신(太陽神)과 여성 원리의 지신(穀神)의 결합을 재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雄과 熊女의 결혼은 하늘과 땅의 원초적인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며, 단군의 탄생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同穴而居, 不見日光, 得女身은 熊으로서의 죽음과 熊으로부터의 탈피가 계기가 되며, ‘득여신(得女身)’은 탈피와 재생을 말한다. 즉 죽음과 재생 등 인간 생명의 율동으로 파악하였다.

단군신화가 우리 민족의 민속적, 의식적, 문학적 원형(元型)을 이루어 온 것은 두말 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 드러난 삶과 죽음에 관한 의식은 곧 우리 문학에 수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어서 그 의미가 깊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신화의 서사적 줄거리를 살펴보면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하여 후에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500년 나라를 다스리다가 주(周) 무왕이 즉위하여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장당경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908세’라고 하였다.

이것은 단군이 영원한 우주질서로 회귀한 것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원초적인 꿈의 고향인 천계(天界)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지 않고 산신으로 화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신단수를 우주목(宇宙木), 세계주(世界柱)라는 의미에서 견주어 보면 동신제의 원형으로서 천신 숭배 사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민족을 수호하는 신격화의 모습, 더 나아가서는 호국적인 신격화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2) 승천하는 죽음

『삼국유사』의 혁거세 신화의 죽음의 양상을 세분하여 생각해 보면 ①理國六十一年 王升于天 ②七日後 遺體散落于地 ③后亦云亡 國人欲合而葬之 ④有大蛇逐禁 各葬五體爲五陵 亦名蛇陵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여기서 ①理國六十一年 王升于天에는 영겁회귀 사상이 담겨 있다. 이것은 다시 태어나려는 의지(재생 모티프)로 볼 수는 없지만. 원래 그가 하늘의 아들로(天子) 지상으로 하강하기 전의 천상계로 회귀함, 즉 무한하고 영원히 활동하는 지속적인 세계에로의 복귀로 해석할 수 있다.

②遺體散落于地는 혁거세의 死後에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의미한다. 영혼은 승천하여 개방된 우주 질서 속으로 회귀하고 육체는 매장된 것이다. 여기에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③國人欲合而葬之 ④有大蛇逐禁 各葬五體爲五陵 亦名蛇陵에서 죽음은 단순한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는 이분법적 이해가 아니라 복수 영혼의 개념을 읽을 수 있다. 곧 영혼의 일부는 저승으로 가고 다른 일부는 유골 근처에 머문다는 영혼의 이중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3) 죽음의 사랑 모티프

『삼국유사』의 「桃花女와 鼻荊郞條」에서 도화녀를 두고 남편과 호색군(好色君)인 사륜왕(四輪王)의 사랑과 죽음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제 25대 사륜왕은 진지대왕인데 호색적인 임금으로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 속에 방탕하여 폐위되는데, 폐위되기 전에 사량부의 한 서녀인 아름다운 도화녀에 흑심을 품었으나 도화녀가 不事二夫라하여 거절하면서 남편의 사후라면 가하다는 말을 하였다. 왕은 폐위되어 도화녀의 남편이 죽기를 기다린다. 사륜왕은 윤리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고 후일을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먼저 죽은 후에 여인의 남편이 죽었다. 그래서 사륜왕의 영혼은 죽지 않고 도화녀의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은 뒤 10일 후에 도화녀를 찾아가 7일간 머물게 된다. 도화녀는 그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鼻荊이라 하였다. (전반부만 요약)

 

사랑의 성취를 가능하게 해주는 죽음이라는 모티프이다. 비형랑 설화에서 주인공은 물론 도화녀나 사륜왕이 아니라 비형랑이다. 이 설화에서 비형랑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륜왕의 죽음이다. 사륜왕의 죽음은 단순한 인간의 죽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죽었을지 모르나 혼령은 살아 있다가 도화녀에게 나아간다. 사륜왕은 사랑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죽음으로 참다운 사랑을 기다린다.

 

Ⅲ. 향가에 나타난 초월적 삶의 논리

 

1. 죽음 의식을 수용하고 있는 신라 향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향가 14수 가운데 신라인의 죽음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다음 몇 편을 들 수 있다.

 

득오의 「모죽지랑가」, 어느 노인의 「헌화가」,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광덕사의 「원왕생가」 , 월명사의 「제망매가」, 영재의 「우적가」

 

이 작품들 중에서 「제망매가」는 죽음의 문제를 직접 다루었으나, 「헌화가」처럼 직접적으로 죽음의 문제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이 노래들 중에서 「제망매가」 「우적가」 「찬기파랑가」는 가요 위주의 내용이고, 「모죽지랑가」 「원왕생가」는 설화 위주의 가요라고 할 수 있으며, 「헌화가」는 가요와 설화가 함께 중요시 되고 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동양의 서정은 반드시 ‘자연’과 관련시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과 달리 동양의 시에는 자연은 ‘영원한 것’으로 나타나며 결국 인간의 ‘죽음’과 관계를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과 관련된 개별 향가의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신라 사람들의 죽음 의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2. 「모죽지랑가」에 나타난 재회에 대한 기원

 

「모죽지랑가」와 그 사실적(史實的) 설화는 『삼국유사』 권 제2 『기이』 「효소왕대 죽지랑조」에 나온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ⅰ) 죽지랑이 그의 무리중의 한 사람인 급간(級干 신라 관직의 12위) 득오가 익선아간(益宣阿干 신라 관직의 6위)에 의해 부산성 창직으로 임명되어 부역을 하면서 괴롭힘을 받는 것을 구해 주는 구출담

ⅱ) 죽지랑의 출생담과 청장년기 공덕담

ⅲ) 향가 「모죽지랑가」

 

「모죽지랑가」의 설화는 위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지만 ⅱ)문단이 ⅰ)문단에 비해 시간적으로 더 먼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부분에서 죽지랑의 ‘영웅적 일생에 대한 찬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생시에는 화랑의 위치에서 인자하고 숭고한 덕을 갖춘 인품 있는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사후에 종교적으로 승화된 인물로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모죽지랑가」는 죽지랑의 사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모죽지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여기에 나타난 죽음 의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ⅰ) 지나간 봄 돌아오지 못하니

살아계시지 못하여 우올 이 시름

ⅱ) 殿閣에 밝히오신

모습이 해가 갈수록 헐어가도다.

ⅲ) 눈의 돌음 없이 저를

만나보기 어찌 이루리.

ⅳ) 郞 그리는 마음의 모습이 가는 길

다복 굴헝에서 잘 밤 있으리. (김완진 역, 현대어로 옮김)

 

ⅰ)행에는 득오의 낭에 대한 추모의 정이 담겨 있다. 봄에 대한 선험적인 시간관에 근거하여 生死를 달리한 낭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시간의 비가역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죽음의 비극적 서정미를 표출하고 있다. ⅱ)행에서 영정을 모신 전각이 헐어가는 모습을 통하여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의미와 죽음에 대하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허망함이 담겨 있다. ⅲ)행에서는 현세의 방법으로는 님을 만나볼 수 없으므로 일상적 시간 개념을 초월하는 방법 즉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이나, 신비주의에 의한 사령(死靈)과의 만남이나, 불교적 차원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ⅳ)행에서는 죽지랑의 넋이라도 만나기 위해서는 다복 굴헝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화자의 결연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 대목에서 죽지랑은 없지만 영혼은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향가의 전반부인 ⅰ),ⅱ)행과 후반부인 ⅲ), ⅳ)행으로 구분되는데 전반부는 자연적 세계, 후반부는 자아의 내면을 표출하였다. 전반부는 자연적 시간의 불가역성을 말하는데, 후반부는 초월적 시간으로 현재의 순간에서 시간을 수직적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전반은 서경을 후반은 자아의 심정을 주로 표현하였다. 후반부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을 기원하고 있는데, 이때의 만남은 현실적인 삶의 초월을 통하여 사모하는 낭과의 만남을 기도함으로써 신비로운 만남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3. 「헌화가」에 나타난 자연과의 합일

 

「헌화가」는 『삼국유사』 권 제2 『기이』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그 사실적(史實的) 설화와 함께 나온다. 「헌화가」에는 죽음의 문제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은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천길 벼랑의 꽃을 따다 바쳤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양주동 역 현대어 옮김)

 

「헌화가」의 배경 설화와 노인의 신분에 대하여 의견이 많다. 노인을 목우선승(牧牛禪僧)으로 불교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도교와 관련된 신선으로 보기도 하며, 산신, 여신, 또는 평범한 농부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찌했든 꽃을 바치는 노인의 사랑은 개체적 생명을 초월하여 원초적 합일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유아기에 어머니와 일체감을 느끼는데 여기서 노인의 수로부인에 대한 사랑은 이러한 일체감에의 복귀를 기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노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꽃을 따서 바쳤다는 것은 죽음의 초탈이 곧 충만한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은 충만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고, 죽음은 삶의 저편을 의미한다고 볼 때 초월적 삶은 보다 고차원의 삶을 모색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노인은 개체적 생명을 뛰어넘어 자연과의 합일을 꾀하는 차원에서 죽음은 삶과 다름없는 것이고 일종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재생의 새 차원의 삶을 위한 구질서의 청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 「찬기파랑가」에 나타난 달과 물의 조화

 

「찬기파랑가」는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제2,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의 이 기록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은 경덕왕 때의 기이한 일과 충담사의 「안민가」에 관한 이야기이고, 둘째 부분은 향가 「찬기파랑가」가 실려 있다. 셋째 부분에는 표훈대덕 이야기이다. 그런데 충담의 「안민가」에 대하여는 설화가 자세히 실려 있으나, 「찬기파랑가」에 대한 설화는 없다.

「찬기파랑가」의 성격에 대하여 불교적 노래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다. 이는 충담사가 승려인 점을 감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충담사가 월명사와 더불어 승려나 화랑이기 앞서 인간이란 점을 토대로 하여 「찬기파랑가」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기파랑의 고매한 인격을 기리는 서정시가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찬기파랑가」의 해독은 양주동, 김완진이 大同小異하나 여기서는 양주동의 해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ⅰ) 열치매

ⅱ) 나타난 달이

ⅲ) 흰구름 조차 떠감이 아니야

ⅳ) 새파란 나리에

ⅴ) 耆郞의 모습이 있어라

ⅵ) 이로 냇가 조약에

ⅶ) 郞의 지니시던

ⅷ) 마음의 끝을 좇고 싶구나

ⅸ) 아으, 잣가지 드높아

ⅹ) 서리를 모르올 花判(花郞長)이여 (양주동 해석 현대어 옮김)

 

「찬기파랑가」의 시상 전개의 과정을 살펴보면 ⅰ)~ⅲ)행은 전반부로 자연의 외계 현상을 묘사하였다. 달과 구름의 대립을 통해 달의 선명한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ⅳ)~ⅷ)행은 중반부로 주관과 객관의 융합을 그리고 있다. 냇물에 비친 달이 기랑의 모습으로 바뀌어 점점 구체화되어 간다. 냇물에 비친 조약돌을 통하여 기랑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처리하였다. ⅸ)~ⅹ)행의 후반부에서 기랑에 대한 주관적 예찬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가에서 핵심이 되는 시어는 ‘달’과 ‘물’이다. 달은 그 속성 때문에 원형적인 의미를 지닌다. 광명, 밝음, 숭고한 인물에 대한 표상으로 대체하는 시어이다. 그래서 재생력을 표상하기도 하고 구원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물도 재생력을 표상하고 구원의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찬기파랑가」에 나타난 죽음 의식은 재생 구조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회상의 상태에서 떠오르는 낭의 모습은 과거에 함께 지내며 즐거움을 나누던 낭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충담사의 눈에 비친 현재의 비약적인 모습은 초월적인 존재로 우뚝 솟아 있다. 과거의 인물이 현재의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에 잣나무라는 자연물이 매개가 된다. 여기서 달과 물은 원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재생력과 구원성을 표상한다.

기파랑은 현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마음속에 떠오르기는 하나 생존하여 함께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에 비극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비극적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모색한다. 그것은 인간을 더욱 ‘비극적인 것’으로 만든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려는데 인간은 더욱 슬픔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결사에서는 초월적 시각에서 낭의 심원하고 장엄한 모습이 부각된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망각하고 참된 실재를 추구하려는 데에서 ‘숭고한 것’이 나타나게 된다. 하늘로 치솟는 ‘잣가지’에서 숭고한 것으로의 전환을 엿볼 수 있다.

 

5. 「원왕생가」에 나타난 소멸(消滅)과 생성(生成)의 미학

 

「원왕생가」는 『삼국유사』 권 제5 『감통』 제7, 「광덕․엄장조(廣德․嚴莊條)」에 실려 있다. 「원왕생가」는 시가보다 설화에 더 비중을 둔 경우에 속한다. 다음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원왕생가」의 설화이다. 편의상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다.

 

ⅰ) 문무왕 때에 불도에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이 있어 퍽 친근하였다. ㉮그들은 평소에 누구든지 먼저 극락정토에 갈 때는 서로 알리기로 약속했었다. (광덕 엄장의 약속)

ⅱ) 광덕은 분황사의 서쪽에 은거하며 신을 삼아 생활하였는데, 아내가 있었다. 엄장은 남악(南岳)의 암자에서 화전을 경작하고 살았는데, (광덕 엄장의 일상생활)

ⅲ) 어느 날 노을이 붉고 솔 그늘이 고요히 어둠에 잠기는 저녁때였다. 엄장의 집 ㉯창밖에서 '광덕은 지금 서방정토에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라.'는 소리가 났다.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구름 밖에 하늘의 풍악 소리가 들리고 땅에는 광명이 드리워 있었다. 이튿날 엄장이 광덕의 집에 가보니 그는 과연 죽어 있었다. (광덕의 죽음(西昇))

ⅳ) 광덕의 아내와 함께 장의(葬儀)를 마친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합의하에 동거하게 되었는데, ㉰저녁에 같이 자며 관계하려 하니 여자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스님이 정토(淨土)에 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또 말하기를 "광덕은 나와 10여 년을 같이 살았으나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고, ㉱저녁마다 단정히 앉아 염불을 하고, 혹은 16(十六觀- 중생이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해 닦는 16가지 방법)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16관에 숙달하자 달빛이 문에 들면, 그 빛을 타고 올라앉았습니다. 정성이 이 같았으니 어찌 극락에 가지 않겠습니까? 무릇 천 리를 갈 사람은 그 첫걸음이 규범이 된다는데, 이제 스님의 관을 보니, 동쪽으로 간다 할지언정 극락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광덕의 처에 의한 엄장의 깨달음)

ⅴ) 엄장은 부끄러워 물러나 원효법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간청하였다. 법사는 정관법(淨觀法- 이미 생각의 더러움을 깨끗한 몸으로 번뇌의 유혹을 끊는 것)으로 그를 유도하였다. ㉲엄장은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한 마음으로 관을 닦으니 역시 서방정토로 가게 되었다. (엄장의 정진 죽음(西昇))

 

이 설화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ⅲ) 광덕의 죽음 부분인데 신라인들의 미타정토(彌陀淨土) 신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위에서 밑줄을 그어 표시한 ㉮~㉲는 미타정토 사상과 관련을 맺은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 日夕約曰 先歸安養者須告之

㉯ 窓外有聲, 報云 某已西往矣 惟君好住, 速從我來

㉰ 遂留夜宿將欲通焉 婦之曰 師求淨土 可謂求魚緣木

㉱ 但每夜端身正坐 一聲念阿彌陀佛號 或作十六觀 觀旣熟 明月入戶 時昇其光 加趺於上 竭誠若此 雖欲勿西奚往

㉲ 藏於是潔己悔責 一意修觀 亦得西昇

 

이러한 미타 사상은 미타미륵 관음 사상과 더불어 통일 신라 이후 신라인들에게 가장 널리 퍼져 있던 불교 신앙이었다. 통일을 이루어 태평성대가 계속되자 신라는 국가적 유약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타력적인 신앙으로 내세에 극락왕생하자는 생각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완진 해석의「원왕생가」를 옮겨 본다.

 

ⅰ) 달이 어째서

ⅱ) 西方까지 가시겠습니까

ⅲ) 無量壽佛前에

ⅳ) 報告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ⅴ) 誓願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ⅵ) 願往生願往生

ⅶ) 두 손 곧추 모아

ⅷ)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ⅸ)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ⅹ) 四十八大願 이루실까 (김완진 해석, 현대어 옮김)

 

다른 향가에도 달이 나오지만 「원왕생가」의 달은 西方의 使者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달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달은 광명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어둠 속에서 빛을 가져다준다. 또 달은 생성과 소멸의 반복을 통해 그 모습이 변치 않는 불멸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달은 영휴를 반복하지만 서서히 단계를 밟아 보름달이 된다. 이러한 순환의 틀은 불교의 윤회설과 연관을 맺는다. 그래서 달의 이미지는 아미타불로 이어진다. 미타사상이란 아미타불의 자비를 믿는 자는 극락에 가게 되며, 그 세계에 태어난 자는 무량과 광명과 수명을 갖추고 불멸이 된다는 사상이다.

「원왕생가」에서 죽음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시구는 ⅵ)행의 願往生願往生 이라는 일종의 발원이다. 이러한 발원은 ‘빨리 극락왕생하기를 바랍니다.’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신라인들의 불교적인 신앙과 관련 맺는 죽음에 관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원왕생가」와 사실적(史實的) 설화에 담겨 있는 죽음에 관한 의식을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願往生願往生에서 보듯이 세속적 삶에 얽매이기보다는 신앙적 삶에 충실하고 싶어 한다.

둘째, 극락왕생의 사고는 순환적인 우주관이 자리 잡고 있다. 현실적 삶을 마치는 것을 종말로 보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인 극락을 설정하고 있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닌 영생(永生)의 개념을 보이고 있다.

셋째, 초월적인 삶의 추구가 현실적 삶과의 병행 속에서 이루어짐이 특이하다. 엄장이 남악에 암자를 짓고 살며 밭 갈기에 힘쓰고 광덕의 처의 깨우침으로 한마음으로 도를 닦아 극락으로 가는 것이 그 예이다.

넷째, 「원왕생가」와 사실적 설화에는 영혼 불멸의 사상이 담겨 있어 죽음을 공포로 생각하지 않는 데에 동양 사상의 낙천성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극락으로 향한다는 신라인의 죽음에 관한 의식을 알 수 있다.

 

6. 「제망매가」에 나타난 죽음을 통한 죽음의 극복

 

「제망매가」는 『삼국유사』 권 제5 『감통』 제7, 「월명사도솔가조」에 실려 있다. 이 노래는 사실적(史實的) 설화가 전해지지 않고 다만 월명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노래를 불렀는데, 지전이 서쪽으로 날려 없어졌다는 이야기만 전한다. 그래서 가요 위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제망매가」는 양주동의 해석을 통하여 살펴본다.

 

ⅰ) 生死路는

ⅱ) 예 있음에 젛이어서(두려워서)

ⅲ) ‘나는 간다’ 말도

ⅳ) 못다 이르고 가느닛고

ⅴ)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ⅵ)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ⅶ) 한 가지에 나고

ⅷ) 가는 곳 모르온져!

ⅸ) 아으 미타찰에 만날 나는

ⅹ) 道 닦아 기다리련다. (양주동 해석, 현대어 옮김)

 

「제망매가」는 다른 어느 향가보다도 죽음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창작 동기가 죽은 누이라는 점, 작품 내용이 죽음을 직시한 인간의 무상감 및 비애감을 표현한 것으로 이루어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다만 서정시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마지막 결사 부분인 ⅸ), ⅹ) 행 때문일 것이다. 다른 10구체 향가처럼 이 노래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ⅰ)~ⅳ) 행은 ‘헤어짐’의 의미로 충만 되어 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고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다음에 ⅴ)~ⅷ) 행은 주관적 관계를 바탕으로 가치 판단으로 전환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가을’ ‘바람’ ‘나뭇잎’ ‘나뭇가지’ 등은 자연물이지만 인간의 주관적 세계를 비유하는 대상물이다. ‘가을’은 사바세계의 시간을, ‘바람’은 무상을, ‘나뭇잎’은 무상에 쫓겨 죽음을 향하고 있는 미망한 인간 생활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ⅴ)~ⅷ)행은 죽음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현실의 삶에 도취되어 위기를 잊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깨우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묘미는 ⅸ), ⅹ)행에 있다. 이 부분에는 승려로서 삶과 죽음이 다를 바 없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을 깨우치려는데 있지 않고, 인간적인 입장에서 골육과의 사별에 대한 정을 노래하고 있어서 수도승의 정진보다는 인간적 노력을 보여주는 서정성이 높은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한편 공간적 변모는 ‘예’라는 현실적 공간에서 ‘미타찰’이라는 천상적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시공간의 「제망매가」의 시 구조상에 안정감과 내적 조화를 기하고 있다. 불교적 변증법의 상상력이 발휘된 「제망매가」에 나타난 몇 가지 죽음에 대한 의식을 살펴본다.

 

첫째, 죽음을 결국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세속적 삶이 초월적 삶으로 질적인 의미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즉 미타찰에서의 만남은 영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초월적 삶으로서의 일치․통합성을 상징한다.

둘째, 서술어의 변화를 통해서도 불교적 변증법의 논리와 죽음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두렵다’(正) 에서 ‘가는 곳 모른다.(슬픔의 대상)’(反)이다가 ‘죽음을 기다린다.’(合)고 한다. 죽음은 공포의 대상에서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셋째, 「제망매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며, 죽음을 통한 죽음의 극복이라는 역설적 논리를 표현한다.

 

7. 「우적가」에 나타난 개오(開悟)와 무구(無垢)에의 회귀

 

「우적가」는 『삼국유사』 권 제5 『피은(避隱)』 제8, 「영재우적조(永才遇賊條)」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의 「영재우적조(永才遇賊條)」는 영재라는 인물 중심의 설화이나 가요의 기능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적가」는 다른 향가에 비해 해독이 분분한데 김완진의 해독이 영재와 도적의 정신적 교감을 영재의 자아 표출을 통해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김완진의 해석을 통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ⅰ) 제 마음의

ⅱ)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ⅲ) 日遠烏逸 달이 난 것을 알고

ⅳ) 지금은 수풀을 가고 있습니다.

ⅴ) 다만 잘못된 것은 强豪님

ⅵ)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ⅶ) 兵器를 마다하고

ⅷ) 즐길 法을랑 듣고 있는데

ⅸ) 아아, 조그만 善業은

ⅹ) 아직 턱도 없습니다. (김완진 해석, 현대어 옮김)

 

개오(開悟)란 인간의 내부와 외부의 실상에 완전한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 즉 주객일치, 주체가 객체의 실상을 충분히 자각하고 파악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노래의 ⅰ), ⅱ)행은 세계와 자아가 불일치하여 보아 개오 상태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ⅲ), ⅳ)행에는 자기 본성을 꿰뚫어 보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 나아가려는 확고한 신념, 즉 깨달음의 상태로 지향하는 자아의 모습이 담겨 있다. ⅴ) ⅵ) 행에서는 대상의 실재에 대한 의지적 또는 창조적 파악을 시도하여 ‘완전한 안녕과 두려움 없는 상태를 성취’하게 된다. ⅶ), ⅷ) 행은 도적들을 보다 높은 단계인 ‘무구(無垢)의 상태로 회귀시키려 한 점이 되겠다. ⅸ), ⅹ)행에서는 주객을 넘나들던 인식의 상태가 주체적인 존재로 돌아오게 된다. 이 행에서는 선적 경지의 최고 단계인 완전한 견성(見性)에 이르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우적가」에는 직접적으로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에 임하는 자세,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의식이 드러나 있다. 「우적가」에 죽음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사실적(史實的) 설화 중에서 ‘남악에 은거하려던 중에 길에서 도적 60여 명을 만남’에 나온다.

 

말년에 남악에 은거하려고 대현령을 지나는데 도적 60여 명을 만났다. 장차 해하려고 하자 영재는 칼 앞에서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하고 당당하게 대하였다.’ (釋永才性滑稽 不累於物 善鄕歌 暮歲隱將于南岳 至大峴嶺 遇賊六十餘人 將加害 才臨刃無懼色 怡然當之 賊怪 而問其名 曰 永才 賊素聞其名)

 

또 한 곳은 「우적가」의 ⅴ)~ⅷ) 행에 나온다. 설화의 내용은 도적들의 위협(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영재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우적가」의 ⅴ)~ⅷ) 행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도적들이 칼날을 들이대며 해치려고 위협해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의 의식은 ‘병기(兵器)’와 ‘즐길 法’의 대립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확산된다. 즉 소외되고 소아적인 도적들보다 높은 단계의 무구(無垢)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Ⅳ. 성경의 부활(復活)과 한국 고대 설화에서의 재생(再生)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누구도 이 법칙을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법칙에 순응하면서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대한 열망을 가슴 깊이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열망은 종교의 경전이나 문학 작품, 민속 행사에 수용되어 표현되기도 하였다.

인간의 부활을 가장 잘 담아낸 종교적 경전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예수의 부활과 몇 건의 부활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의 신화를 허황된 이야기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재생이라고 한다. 재생에는 몇 가지 양식이 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부활(復活),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동식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환생(還生), 신이나 신이한 존재로 변하는 것을 환생(幻生)이라고 한다. 재생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하나의 관념으로 뿌리내렸다. 이를 믿지 않는 사람도 이야기에 수용되어 있으면 쉽게 이해하고 그러리라고 믿었다. 이것은 인간의 소망이 설화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재생설화라고 한다.

 

1. 성경의 부활 이야기

성경에는 예수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 엘리아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가 있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에 사흘 만에 부활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1) 예수가 과부의 아들을 살림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고 있었다. 그 죽은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고, 그 여자는 과부였다. 그런데 그 성의 많은 사람이 그 여자와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엽게 여기셔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서 관에 손을 대시니 메고 가는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다.

 

(2)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림

그런데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가인데, 이 여자는 착한 일과 구제 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에 이 여자가 병이 들어서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신을 씻겨서 다락방에 두었다.

룻다는 욥바에서 가까운 곳이다. 제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그에게로 보내서 지체하지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베드로가 그곳에 이르니 사람들이 그를 다락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과부들이 모두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지낼 때에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여 주었다.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바깥으로 매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시신 쪽으로 몸을 돌려서

“다비다여,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 여자는 눈을 떠서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서 앉았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서 그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서 그 여자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3) 예수께서 부활하심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엄청나게 컸다.

그 여자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랐다. 청년이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소. 여기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서 볼 것이라 하라.”

하였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며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렸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않았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의 무딘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들려 올라가셔서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4) 성경에서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

성경에는 이밖에도 죽은 사람의 재생에 관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지만 몇 가지만 예로 들었다. 성경에서는 능력이 뛰어난 엘리아, 엘리사 또는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 아이의 몸에 자신의 몸을 포개고 하느님께 기도하거나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라고 하여 살려내기도 하고 낸다. 성경에서는 간절한 기도의 응답으로 죽은 사람이 부활한 것이라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죽은 사람에게 ‘일어나라’로 명령하여 죽은 사람이 잠을 자다가 깨어 일어나는 것처럼 일어선다. 이것은 예수에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예수의 부활을 처음 안 사람들은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려고 갔던 여인들이다.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여 갈릴리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은 믿지 못한다. 이때 죽은 지 사흘 만에 육신 그대로 나타난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보여 주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성경에 나타난 재생의 과정은 죽은 사람도 부활할 수 있다는 사고를 보여준다. 삶과 죽음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한국의 재생 이야기와 영혼관

 

성경의 부활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것은 현상만을 사실로 인정하려는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의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재생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좋다. 곧 부활(復活), 환생(還生) 환생(幻生)에 관한 의식을 알아보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설화나 향가에서의 삶과 죽음에 담긴 의식을 살펴보았지만, 성경과 관련 있는 설화나 민간 신앙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에 따르면 사람은 영혼과 육신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영육분리(靈肉分離)의 이원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으면 삶이고, 육신에서 영혼이 떠난 상태가 죽음인 것이다. 곧 떠났던 영혼이 육신으로 돌아오면 재생이고 부활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의식에서 초혼(招魂)의식이 이를 말해준다.

육신은 형상을 갖추고 있어 눈에 보이지만 존재에 한계가 있다. 육신은 공간성과 시간성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영혼은 형체가 없지만 영원한 존재라고 믿는다. 영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무시간, 무공간의 존재라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재생설화에는 부활, 환생(幻生), 환생(還生)설화가 있다. 우리나라 설화나 민간 신앙에 수용된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은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첫째는 신령스러운 물건에 의해 부활하는 경우이다. 영물매개부활(靈物媒介復活)이라고 하는데 죽은 사람이 꽃, 약수, 눈물, 나뭇가지, 구슬, 손가락의 피를 매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둘째로 떠난 영혼이 육체로 다시 돌아오는 환혼(還魂)부활이 있고, 셋째로 귀신의 작용으로 죽었던 사람이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다시 살아나는 축귀(逐鬼)부활이 있다. 넷째는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지인의 정성스런 행동에 감동한 하늘(하느님, 염왕, 제석) 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주는 감천(感天)부활이 있다.

 

(1) 약수를 구해 부모를 살린 바리공주 (영물매개부활. 감천부활)

 

옛날 이씨 주상금마마가 7공주를 본다는 해에 왕비를 맞아들인 후 계속해서 6공주를 낳는다. 왕과 왕비는 왕자를 낳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드린 후 일곱째 아이를 잉태했으나 낳고 보니 또 공주였다. 크게 노한 대왕은 일곱째 공주를 옥함에 넣어 강물에 띄워버린다. 아기는 석가세존의 지시로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게 구출되어 양육된다. 바리공주가 15세 되었을 때 대왕마마가 병이 들었는데 꿈에 청의동자가 나타나서 하늘이 아는 아기를 버린 죄로 죽게 되었다며 살기 위해서는 버린 아기가 구해다준 무장신선의 약려수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려지고 한 대신의 충성으로 바리공주를 찾는다.

바리공주는 모든 신하들과 언니들이 거절한 구약의 길을 남장을 하고 혼자 떠난다.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에 이른 바리공주는 무장신선을 만나 약물값으로 나무하기 3년,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등 9년 동안 일을 해주고 무장신선과 혼인해 아들 일곱을 낳은 뒤 약수를 가지고 함께 돌아온다. 이때 양전마마는 이미 승하해 장사를 지내려는 중이었는데 바리공주가 상여를 멈추게 하고 약수와 꽃으로 양전마마를 살린다. 살아난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의 소원을 들어 그녀를 만신의 왕이 되게 하고, 무장신선은 죽은 사람이 가는 길에서 노제를 받아 먹게 하고, 일곱 아들은 저승의 십대왕이 되게 한다. (다음백과 <바리데기, 오구풀이, 무조전설, 巫祖傳說> 요약)

 

(2) 저승에 갔다 온 사람(환혼부활)

 

옛날에 ‘박경래’라는 사람이 병이 깊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밖에서 누가 큰소리로 부르면서 빨리 나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가 보니, 세 사람이 서 있다가 다짜고짜 가자고 하여 저승으로 데리고 갔다.

저승에 가니, 염라대왕 아래에 앉은 최판관이 치부책을 보면서 말했다.

“네가 박영래냐:”

“아니오. 박경래입니다.”

“뭐, 박영래야? 이놈들, 박영래를 잡아오라고 했더니 박경래를 잡아왔구나. 이 사람은 여덟 달 후에 올 사람이니 돌려보내라.”

이 말을 들은 저승사자들이 미안하다고 하고, 빗자루 하나를 주면서 발자국을 쓸면서 가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빗자루를 받아 쓸면서 와 보니, 자식들이 울고불고 하다가, 그가 깨어나자 모두 기뻐하였다. 그로부터 그의 병은 차츰 좋아져서 여덟 달을 더 살았다.

그가 아들을 시켜 ‘박영래’라는 사람을 찾아보게 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 박영래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가 다시 깨어나던 그 시각에 죽었다고 한다.

 

(3) 염왕의 배려로 다시 살아난 선율(환혼부활)

 

망덕사의 승려 선율은 돈을 시주받아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만들려 하다가 완성되기 전에 갑자기 저승사자에게 쫓겨 염라대왕에게 갔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는 인간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였느냐?”

선율이 말했다.

“소승은 늘그막에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완성하려고 했으나, 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왔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네 수명은 비록 다하였으나 좋은 소원을 다 마치지 못했으니,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보배로운 불전을 끝마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고는 선율을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이 울면서 선율 앞에 와 절을 하고 말했다.

“저 역시 남염주 신라 사람인데, 부모가 금강사의 논 한 이랑을 몰래 훔친 죄에 연루되어 저승에 잡혀 와서 오랫동안 무거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법사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시거든 제 부모에게 이 일을 말하여 빨리 그 논을 돌려주도록 해 주십시오. 또 제가 세상에 있을 때 참기름을 침상 아래에 숨겨 두고, 곱게 짠 베를 이불 사이에 감추어 두었으니, 법사께서는 제 기름을 가져다 불등(佛燈)을 켜 주시고, 그 베를 팔아서 불경을 베끼는 비용으로 쓰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황천에서도 은혜를 입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율이 말했다.

“그대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사량부 구원사의 서남리입니다.”

선율이 그 말을 듣고 막 가려 할 때 다시 살아났다. 이때는 선율이 죽은 지 열흘이 되어 남산 동쪽 기슭에 이미 장사 지낸 후였다. 선율이 무덤 속에서 사흘 동안이나 살려 달라고 부르짖자, 지나가던 목동이 이 소리를 듣고 절에 알렸으므로 절의 승려가 가서 무덤을 파고 꺼내 주었다. 선율은 전에 있었던 일을 다 말하고 그 여인의 집을 찾아갔다. 여인이 죽은 지 15년이 지났는데, 참기름과 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선율이 그녀가 말한 대로 명복을 빌었더니 여자의 혼이 와서 아뢰었다.

“스님의 은혜에 힘입어 저는 이미 고뇌에서 벗어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듣고 모두 놀라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어 그를 도와 불경을 완성시켰다. 불경은 경주의 승사 서고(僧司書庫) 안에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그것을 돌려 읽으며 재앙이 물러가기를 빌었다. (일연, 삼국유사 「선율 환생」)

 

(4) 한국인의 재생관

 

「약수를 구해 부모를 살린 바리공주」는 무조신호로,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천도시키는 진오귀굿의 말미에 부르는 무가 「바리공주」의 요지이다. 바리공주는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림받은 딸이었으나 자기희생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구해온 약수와 꽃으로 상여에 실려 나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려낸다. 부모가 살아난 것은 바리공주가 구해온 영물의 영험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에는 자신을 버닌 부모를 위해서 약을 구해온 효심과 희생에 감동한 신의 은총이 작용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저승에 갔다 온 사람」에서 ‘박영래’는 저승사자에게 끌려 저승에 갔다가 이름의 발음이 비슷하여 일어난 저승사자의 실수임을 알게 되었다. 저승사자의 잘못이 밝혀져 이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염왕의 배려로 다시 살아난 선율」에서는 수명이 다하여 저승에 잡혀 갔으나 염라대왕이 그가 매우 귀한 일을 했던 것을 알고 그 일을 마치고 오라고 돌려보낸다. 이승에 돌아와서 무덤 속의 그의 시신으로 들어갔으나 나오지 못하여 소리를 쳐서 살아나게 된다.

 

3. 성경과 한국 부활 이야기에 드러난 죽음 의식

 

성경에 나오는 부활이야기와 한국의 부활이야기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성경에서의 부활은 엘리야, 엘리샤, 베드로의 기도의 응답으로 살아났으므로 감천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몸을 포개어 기도한 것은 영물매개부활의 의미가 가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일어나라.’고 하여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권능을 가지고 부활시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한국 설화에서와 같은 환혼부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부활한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설화에서도 이승에서 좋은 일을 하거나 남을 위해 희생하면 죽음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Ⅴ. 한국 문학에 나타난 죽음 의식

 

인간은 하이데거의 말대로 ‘죽음을 향한 존재’이다. 이 자명한 사실을 대면함으로써 인간은 고뇌하고, 대결하고, 신앙을 갖기도 하고, 예술을 창작하며, 현존재로서 실존의 문제를 탐색한다. 그 죽음과 죽음의 사실을 어떻게 사유하고 받아들이며 절망하고 혹은 이겨내는 양상은 문학에서 가장 구체적이며 심층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한국문학에서 우리 한국인은 죽음에 대하여 어떤 의식과 태도를 드러내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고대의 설화문학과 향가문학을 살펴보았다.

고대 설화문학에 나타난 고대인들의 死生觀을 살펴보면, 죽음은 인간적인 삶의 과정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우주 질서의 영원한 끝은 아니라는 생각, 곧 永存에의 회귀일 뿐이라고 보았다.

혁거세 출생담이나 탈해의 일생에서 보면 죽음은 현상계와 상호 교류하는 천상계에의 복귀, 영존에의 회귀를 의미하고 있다. 곧 인간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영속의 세계와의 상호 긴밀한 밀착성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自利와 利他의 의미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계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선덕여왕이나 김유신의 설화에서는 죽음은 초자연적인 영존의 영속이라고 생각했던 혁거세의 죽음보다 한발 앞으로 나아간 인간 의식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초기에는 보다 심화된 신성성이 엿보였으나, 점점 인간적 속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즉 ‘목적 지향적인 죽음’이 대종을 이루게 된다. 사륜왕이 죽음으로서 사랑의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나 이차돈의 죽음도 여기에 속한다.

향가 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의식은 육체는 없어져도 영혼은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는다. 헌화가에서 죽음은 충만한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랑은 충만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고, 죽음은 삶의 저편을 의미한다고 볼 때 초월적 삶은 보다 고차원의 삶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망각하고 참된 실재를 추구하려는 데에서 ‘숭고한 것’이 나타나게 된다. 찬기파랑가에서 하늘로 치솟는 ‘잣가지’에서 숭고한 것으로의 전환을 엿볼 수 있다.

또 죽음을 제재로 한 향가에서는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닌 永生이라는 개념을 보이고 있다. 원왕생가와 그 史實的 설화에는 영혼 불멸의 사상이 담겨 있어 죽음을 공포로 생각하지 않는 데에 동양 사상의 낙천성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육체는 없어지지만 영혼은 극락으로 향한다는 신라인의 죽음에 관한 의식을 알 수 있다.

제망매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죽음은 공포의 대상에서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그 이유는 세속적 삶이 초월적 삶으로 질적인 의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미타찰에서의 만남은 영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초월적 삶으로서의 일치되고 통합되는 것임을 상징한다. 우리 민족은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하며, 죽음을 통한 죽음의 극복이라는 역설적 논리를 표현하였다.

이제 고대 우리 문학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의식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의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떠한 전통으로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다양하고 방대한 문학 작품에서 중세인의 갈등과 초극 의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고, 현대 문학의 다양한 양식을 통하여 현대인의 좌절과 상실의 현실 인식으로서의 죽음 의식을 알아볼 필요성도 있다.

 

Ⅵ. 한국인의 죽음 의식을 수용한 현대수필

 

 

집 두 채// 박영자

 

올해 나는 집 두 채를 장만하였다.

그러고 보니 큰일을 했다면 한 셈인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투기꾼이나 복부인쯤 되는 것으로 오해할까 두렵다. 그게 아니고 한 채는 앞으로 살 집이요, 또 한 채는 죽어서 갈 집이다.

지금 사는 이 집에서 꼭 10년을 살았다. 단독주택으로 제법 잘 지은 집이라 내게는 과분하다고 여기며 열심히 쓸고 닦고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에 대한 애착도 시들해지며 아파트의 유혹이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내 집이 큰 불편이야 없지만 겨울이면 거실에 난방이 제대로 안 되어 기를 못 펴고 살아야 했고 직장 일로 낮에 집을 비워야 하니 집단속이 어려웠다.

아파트가 편하다며 이사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들을 때마다

“아파트로 가면 누가 밥을 떠 먹여 주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관심은 눈덩이처럼 커 갔다.

겨울에도 반소매 옷을 입고 사는 친구네 아파트에 다녀온 후로 아파트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 절정에 달했다. 그러다가 봄이 와 새싹이 돋고 꽃이 피면 그 동안 가꾸어 온 정원을 바라보며 언제 그랬나는 듯 아파트 생각은 멀어져 갔다. 건들마가 나고 추워지기 시작하면 불현 듯 그 친구 집의 따스함이 부럽고 다시 아파트 병이 도지곤 했다.

재작년 겨울 신문에서 아파트 분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아파트 부지가 마침 아들이 다니는 학교 바로 앞이라 통학하기 편하겠다 싶어 남편 허락도 미처 받지 못하고 신청서를 냈다. 떠보느라고 아파트로 가고 싶다고 운을 떼면 이 집이 어때서 그러느냐며 말도 못 꺼내게 하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꼭 당첨되리라는 확신도 없이 추첨한 것이 용케 당첨이 되고 보니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때서야 남편을 설득하게에 진땀을 빼고 결국 1년 반 동안 분양금 마련에 애를 먹고서야 내 집이 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문득문득 죽음이라는 말이 내 주위를 서성거렸다. 내가 죽으면 어디에 묻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가곤 했지만 그것은 잠시 뿐 구체적인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잘 아는 분이 갑자기 비명에 갔다. 50대의 건강한 사람이 허무하게 간 것도 원통한데 미망인이 망인의 유택을 마련하지 못하여 가슴을 치니 보는 사람도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급히 서두르느라 묘지 알선하는 복덕방의 농간에 부르는 게 값이요,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일을 지켜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정인이 번쩍 난다.

무관심하던 신문 광고란의 묏자리 정보도 꼬박꼬박 읽어보고 복덕방에도 들러 금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백 평짜리 큰 땅이거나 몇 천 평이나 되는 가족묘지 자리로 거액이 아니면 만져 볼 엄두도 못 냈다. 나 같은 월급쟁이에겐 그림의 떡이요, 설사 돈이 있대도 어울리지도 않는 짓이었다.

지나쳐보던 남의 산소도 유심히 보게 되고 잘 다듬어 놓은 가족 묘지를 보면 부럽기까지 하니 나이 탓일까.

시부모님 묻히신 종산은 버스로 한 시간 반, 다시 걸어서 하 시간을 넘게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놓이지 않은 강을 건너는 것이 문제다. 가뭄에는 뒤뚱거리는 돌다리나마 건널 수 있어 다행이지만 물이 불은 때는 부모님 계신 먼 산만을 바라보다 그냥 돌아서야만 한다. 그러니 명절 때조차 제대로 성묘를 하지 못하여 죄스러웠다. 내가 이런데 우리가 종산에 묻힌다면 내 자식들이 우릴 몇 번이나 찾아올까. 바쁜 세상에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진 않지만 애들은 자식된 도리를 한다고 얼마나 애를 쓸까.

궁리 끝에 천주교 묘지를 생각했다. 신부님께 묏자리 걱정을 했더니 천주교 묏자리도 들어갈 자리가 없단다.

“루시아씨 죽으면 들어갈 자리야, 천주님이 마련하시겠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태연자약하시다.

시립공원묘지도 알아보았지만 역시 자리가 없어 개발계획을 세워 놓고 있지만 지역 주민들과 마찰로 어려운 형편이란다. 죽어서 갈 땅 몇 평도 쉽지 않으니 듣던 대로 묘지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남겨 놓고 있어 개운치 못했는데 어느 날 미사 끝에 묘역 조성을 새로 하게 되었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귀가 번쩍 띄었다. 토요일 오후 묘지 조성 설명회에 참석했다. 차로 40여분 달리니 천주교 묘지라는 표지판이 길 안내를 한다. 위령성월에도 미사 한 번 드리러 오지 못한 내가 여기 올 자격이 있는가. 부끄러움과 자책에 얼굴이 붉어진다.

남편과 나는 말이 없다. 공동묘지를 찾는다는 게 유쾌한 일은 못되며 더구나 자신이 묻힐 곳을 찾아간다는 것이 묘한 기분이다. 겨우 차 한 대가 빠져나갈 만치 좁은 오솔길을 따라 비탈을 오르니 거기 묘지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포근하게 감싸 안은 봄볕 때문일까. 생각처럼 그렇게 음산한 곳도 섬뜩한 것도 아니다. 산 중턱에 예수님이 팔 벌려 서 계시고 산허리를 따라 묘지들이 기도하듯 엎드려 있다. 작고 아담한 묘지마다 울긋불긋 형형색색의 조화들이 봄바람에 나부낀다. 죽은자와 생명 없는 조화, 뭔가 상통하는 것만 같다.

가물가물 보이지도 않는 허공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종달새 소리가 어느 망령의 못 다한 노래처럼 바람결에 실려 온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죽음 앞에 성호를 긋고 잠시 묵상한다.

생명 있는 것이라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문 저편은 어떤 색깔일까. 신비로운 보랏빛일까. 장엄한 검은빛일까….

“이런 데 묻히면 외롭진 않겠지요?”

침묵을 깨는 내 말에 남편은 콧소리로 맥없이 한 번 웃을 뿐 대답이 없다.

기존의 묘역 맞은편 산이 허옇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산의 상층부, 중간 부분, 하층부를 넓게 밀어 놓고 개발 자금 마련을 위해 상층부만 분양한단다. 백분(白粉)처럼 뽀얀 마사토를 한웅큼 집어드니 똑 고른 알갱이가 너무 깨끗하다. 살그머니 볼에 대본다. 햇살 묻은 흙에서 따스함이 전해온다.

모두들 죽음의 엄숙함에 압도된 것일까. 순례자의 행렬처럼 묵묵히 가파른 길을 오른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길처럼 숨이 헉헉 차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큰 제비나비 한 마리가 너울너울 앞선다.

상층부에 오르니 훤히 트여 가슴속이 시원하다. 이런 곳에 내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 돌아오면서 단장이냐 합장이냐로 입씨름을 한다.

“몇 십 년을 같이 살았으면 됐지, 저 세상 가서도 같이 살아?”

합장으로 마음을 정한 남편의 속마음을 다 아는데 딴청을 떤다.

묘지 추첨하는 날은 일요일 오후였다. 꼭 당첨되기를 기원하며 시간도 되기 전에 성당에 도착했다. 사람 마음이란 다 비슷한 것일까.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줄을 서는 것이 다반사요, 그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건만 죽는 일만은 순서가 없으니….

추첨 번호를 받고 기다리며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모두들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다. 다른 일과 달라서일까. 새치기를 하는 사람도 없다. 나도 담담한 기분으로 몇몇 낯익은 사람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다.

우리가 뽑은 번호는 151번이다. 인쇄된 도면을 받아들고 바둑판처럼 그어 놓은 몇 백 개의 칸에서 한참 만에 내 집을 찾아낸다.

“가장자리 아니야, 이왕이면 가운데가 좋은데….”

“가운데가 뭐가 좋아요. 복잡하지. 옆이 트여서 좋구먼. 요새는 아파트도 가장자리가 좋대요.”

확실한 근거도 없으면서 나는 얼른 그렇게 말한다. 기왕에 결정된 일인데 그런 건 따져서 무얼 하겠는가.

옆에 섰던 아저씨가 말참견을 한다.

“자리 참 좋구먼유. 우리와 이웃이네.”

마음 좋아 보이는 아저씨네는 바로 우리 뒷줄이다.

“앞뒷집에서 잘 지내면 되겠네요.”

아저씨도 남편도 껄껄 웃는다.

감사하다.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았던 걱정거리가 잘 풀려 속이 후련하다. 밖엔 어느 새 저녁노을이 붉다. 서산마루에 지는 해가 어둠을 펴놓고 가듯이 우리에게도 머지않아 어둠이 내리리라.

 

 

천상재회天上再會//신금철

붉은 광장이다. 연둣빛 가녀린 꽃대에 빨간 모자를 쓴 상사화가 목을 길게 늘이고 그리운 이를 기다린다. 꽃무덤을 이루고 긴 기다림으로 서있는 그들이 행여 그리움에 지칠까 애처롭다. 꽃나비가 되어 그들의 그리움을 달래주고 싶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불갑사를 향해 달린다. 일요일인 오늘, 불갑사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경내에서 떨어진 먼 거리에 주차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인파 속을 헤치며 만난 상사화는 화려함 저 깊은 곳에 슬픔을 안고 있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상사화는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 마디 못한 스님의 애절한 사랑의 전설을 따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남겼다. 잎이 나와서 다 시든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와 피어나니 평생 만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 뿐, 만날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전설이 있어, 보는 이들은 그 고운 꽃을 아픔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은 아름답다. 그러나 만날 수 없는 사랑은 슬픔을 동반한다. 무리 지어 피어있는 상사화를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향한다. 한적한 숲 속 상수리나무 밑에 다소곳이 피어있는 두 송이의 상사화가 나를 반갑게 맞는다. 마치 내 어머니 같은 꽃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분이셨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 보다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셨고, 참음과 배려심이 많으신 고운 분이셨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한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에 아버지와 부부의 연을 맺고 스물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앳된 나이에 남편을 잃었으니 땅이 꺼지는 슬픔과 함께 앞으로의 삶이 두려우셨을 게다. 그렇게 어머니는 세상에 두 살 배기 딸과 단 둘이 되셨다.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87세까지 상사화로 사시며 혈육인 외동딸 하나를 고운 꽃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천상재회天上再會로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을 나누시길 바라며 슬픔을 달랬다. 저 세상을 모르기에 두 분이 만나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두 분이 재회하여 행복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상상한다. 가끔씩 어머니가 혼자 남겨두고 일찍 떠나신 아버지를 원망도 하시고 그 동안 고생하신 수고에 칭찬도 해달라고 어린애처럼 떼도 쓰셨으면 좋겠다. 여니 부부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여행도 다니시고 부부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시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시길 매일 기도한다.

그리운 어머니와 두 살 때 돌아가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다정히 손잡고 상사화로 피어나 나를 향해 웃고 계신다. 환영으로 보이는 두 분의 모습이 너무도 다정하여 조용한 미소를 짓는다. 상사화의 아름다운 정경 사진을 찍고 있던 남편이 나를 향해 렌즈를 맞추고 있다. 나는 양손을 올려 하트로 포즈를 취하고 사랑을 날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어 행복하다. 아니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며 더 행복하다. 사진을 찍는 남편을 따라 사계절 아름다운 곳을 누빈다. 샛노란 유채의 해맑음, 황홀함에 취하게 하는 분홍빛 진달래, 하얀 옥양목 치마를 입은 어머니처럼 청순한 메밀밭, 어머니를 만나는 슬픈 전설의 상사화, 고운 단풍 그리고 설국의 아름다움까지 사계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텔레비전의 큰 화면에 비춰보는 즐거움은 황혼에 접어든 우리 부부의 낙이다. 그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재혼의 유혹을 뿌리치고 혼자 몸으로 나를 키우시느라 무던히 많이 흘리셨을 어머니의 땀과 눈물 덕분이다. 어머니의 생전에 효도를 못했음에 후회가 깊다. 항상 어머니는 내 마음 속에 상사화로 피어있다.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간은 아름답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은 곁에서 함께 나누어야 더 행복하다. 평생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상사화가 가엾다. 영원한 이별의 사랑이 애처롭다. 상사화의 꽃대 밑에 사랑의 잎을 달아 그들을 동여매주고 싶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천상에 계신 아버질 만나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듯 가녀린 꽃대를 감싸 안은 파란 잎과 한 몸이 되어 활짝 웃는 상사화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웅전에서 불경을 외우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슬프게 들리고 그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스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초월하여 상사화의 아픔을 겪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죽어서 피우는 꽃//이방주

 

봄비가 개고 하늘은 유리구슬처럼 맑다. 봉분에 새로 입힌 잔디가 파랗게 돋았다. 보기 좋아 마음이 잔디처럼 포근해진다. 마주 보이는 뾰족한 산봉우리가 잘 손질한 붓끝을 닮았다. 그래서 문필봉이라 한다. 문필봉을 마주하는 곳은 명당이다. 이런 곳에 조상을 모시면 문필가가 나온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부모님의 유택이다. 문필봉 너머로 시야가 끝이 없다. 청주시내 하얀 아파트촌이 다 굽어보인다. 푸른 숲 속에 대학 건물이 언뜻언뜻 보인다. 꽃이 온 산을 뒤덮었다. 잔디까지 파랗게 살아났으니 시름이 다 가시는 듯하다.

몇 해 전부터 산소에 암세포처럼 이끼가 퍼지더니 잔디가 다 죽었다. 삼년이나 봄마다 잔디를 새로 입혔으나 허사였다. 도래석을 한 뒤 봉분에 배수가 잘 되지 않아 이끼만 살판이 난 것이다. 게다가 제절 바로 앞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뻗치고 볕을 막아 묘정이 마를 날이 없다. 베어내고 싶었지만 아깝기도 하고 너무 커서 엄두가 나지 않아 해마다 미루다가 때를 놓쳤다. 올봄에도 봉분이고 제절이고 이끼 세상이고 잔디는 빈사 상태이다. 할 수 없이 봉분과 제절에 소금을 한 가마쯤 뿌렸다. 이끼는 볕이 들지 않으면 되살아난다는 말에 벼르던 벚나무도 베어버렸다. 무성한 가지에 가려졌던 문필봉이 훤하게 드러났다. 파란 하늘이 훨씬 가까워졌다. 묘정에 따뜻한 볕이 들어 부모님께서 보송보송한 봄을 맞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가보니 이끼가 노랗게 죽었다. 갈퀴로 긁어내고 봉분에 잔디를 새로 입혔다. 두 주일쯤 지나자 그동안 비가 적당하게 내려 어느새 봉분이 파래진 것이다. 온 산이 꽃대궐이다. 진달래가 피고 산벚꽃이 꽃구름처럼 산을 뒤덮었다. 마음이 놓인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모님은 날마다 보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그리움도 덜어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파랗게 새 옷을 입었으니 얼마나 좋으실까?

 제절에 쑥이 파릇파릇 올라온다. 올라오는 새싹이 곱기는 하지만 자손이 시원찮으면 '죽어 쑥구렁'이란 말이 싫어 뽑아내기 시작했다. 누군가 잔디는 살리고 다른 잡초는 죽이는 약을 치라고 했지만 부모님 누워계신 유택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마뜩찮아 해마다 손으로 뽑아낸다. 손만으로 당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이렇게 견디리라.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와서 뵐 것이 아닌가? 

여기를 명당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에 보이는 문필봉 때문이다. 조부모님 산소를 이곳으로 옮겨 모시고 아버지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제례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가 되셨다. 어머니도 어른들을 졸라 이곳에 모셨다. 그리고 5년이 안 되어 나는 수필가로 형은 시인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문필봉의 기운을 우리 형제가 받은 것이다. 부모님의 기氣가 미친 덕택이라고 생각되는 것만으로도 음덕蔭德이고 울력이다. 

명당은 조상의 체백이 황골이 되어 기운이 자손에게 미쳐 울력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손에 대한 무한의 사랑은 죽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의식의 발로이다. 기氣는 바람을 만나면 하늘로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땅으로 스며든다고 한다. 기氣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자손에게 제대로 미치려면 바람과 물을 잘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풍수를 과학이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일지 모르지만 삶이 뜻대로 이루어지면 그것을 믿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무튼 자손 사랑이 유별난 우리 민족에게 있는 아름다운 문화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뽑아 놓은 쑥도 버릴 겸 허리도 펴야겠기에 일어섰다. 문필봉으로 향하던 눈길이 문득 멈추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놀라 넘어질 뻔했다. 이럴 수가 있나? 죽은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난번에 베어 기슭에 눕혀 놓은 아름드리 벚나무에 꽃이 환하게 피었다. 무성한 가지마다 빈틈없이 피었다. 살아 서 있는 나무보다 오히려 죽어 누워있는 나무가 더 많은 꽃을 피웠다. 밑동이 기계톱에 싹둑 잘렸는데 마지막 힘을 다하여 꽃을 피운 것이다. 열매까지 맺을 수 있을까? 나무를 베어버린 죄의식에 앞서 나무가 보여주는 자손에 대한 열망에 가슴이 멍했다.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나 아버지 어머니의 현신을 뵙는 듯 두렵고 숙연해졌다.

나무도 철학이 있을까?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생각을 정말 했을까? 자손에 대한 사랑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조상들이 후손을 생각하여 풍수라는 개념을 만들어 백골이 되어서도 자손에게 기를 미친다고 생각했듯이, 나무도 죽어서 자손을 위한 열망을 꽃피우는 모습이 경이롭다. 그야말로 마침의 삶이 경이롭고 아름답다.

나도 귀엽고 고귀한 새 생명인 손자를 대하면 삶을 다 이루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심하게 된다. 자손에게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지향하기보다 마침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자손을 위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새로운 삶을 설계해야 한다. 조부모의 기가 부모님께 미치고 부모님의 기가 우리 형제에게 미치듯 나의 기운이 내 아들과 손자에게 미치는 그런 마침의 삶을 말이다. 죽어서도 꽃을 피우는 아름드리 벚나무를 다시 바라보며, 이곳에 누워 계신 부모님께서도 이제 막 태어난 새 생명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주리라 조심스럽게 믿고 소망한다.

 

*** 참고문헌

1. 삼국유사, 일연(이민수역), 을유문화사

2. 삼국사기, 김부식

3. 한국문학 주제론, 이재선, 서강대학교출판부

4. 한국문학과 죽음, 뱍태상, 문학과지성사

5. 성경이야기와 한국 이야기, 최운식, 보고사

6. 생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 최운식, 한울

7. 공간의 시학, 가스통바술라르(곽광수 옮김), 동문선

8. 문화와 문명, 성기조, 문예운동사

9. 세계 종교 돌아보기, 오길남,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