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22. 10. 11. 14:22

나의 소주 반세기

 

아무리 좋은 자리라도 나의 소주는 딱 한 잔이다. 반백년 소주 배움이 돌고 돌아 겨우 한 잔으로 돌아왔다. 고희를 맞은 내 삶의 영역은 딱 소주 한 잔으로 이룬 나비물만큼밖에 안될 것 같아 마음 아프다. 한 잔을 놓고 잘라 마시고 또 잘라 마신다. 씁쓸하다.

소주 입문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망의 고3이 될 열아홉 살 2월이다. 학교는 2월이 헐렁하지만, 흔들리는 가슴은 가눌 길이 없었다. 학교길 고갯마루에 구멍가게를 겸한 주막이 있었다. 겨울도 봄도 아닌 나른한 오후 하굣길, 주머니를 뒤져 소주 한 병을 샀다. 병뚜껑을 이빨로 물어 열었다. 한 모금 ‘쭈욱’ 빨아보았다. 목구멍에 ‘캭’ 불이 붙는다. 씁쓸하다. 씁쓸하더니 달달하다. 화끈하게 남은 맛은 가슴 가득한 바로 그 맛이다. 연신 불맛에 취했다. 한 병을 다 비우고 길가 무덤 햇볕 따뜻한 제절에 가방을 베고 까라졌다. 입문하는 날은 지옥문 앞까지 갔었지만 뒷맛은 화끈했다. 씁쓸한 여운은 오래 갔다.

대학 시절 소주 학습은 막걸리로 대신했다. 낭만을 누린 것도 아니지만 씁쓸할 것도 고독할 것도 없었다. 2년밖에 안 되는 대학생활은 막걸리처럼 시금털털했다. 졸업 후 충북 최고벽지로 알려진 의풍학교에 부임했다. 밤이 너무 깜깜했다. 백 평 남짓한 하늘에서 별이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학교 앞 희끗희끗한 시냇물은 밤새워 애절하게 울어댔다. 젊음도 외로움도 참을 수 없어 밤마다 소주를 마셨다. 장이 섰다는 전설이 묻혀버린 장터거리 구멍가게에서 달걀을 한 판씩 삶아놓고 소주를 마셨다. 함께 부임한 선배와 셋이서 계란 한 판을 다 먹으면 그만큼 빈병이 줄을 섰고, 코에서는 달기똥 냄새가 났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자갈길이 하늘로 마구 솟구쳐 좌우로 흔들렸다. 취중에도 선생이란 사슬을 벗지 못해 고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가슴에 쓴물은 소리 죽인 함성으로 소나무 옹이처럼 응어리졌다.

그러구러 서른이 넘어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여고 3학년을 담임했다. 날마다 밤 열한시까지 혼자 교무실을 지켰다. 소주가 좋아서 마신 것은 아니지만, 누구랑 함께 마실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겼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았던 교무실을 잠그고 나올 때 외로움의 끝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집과는 반대쪽으로 500미터쯤 걸어가면 단양 충주 유람선 나루터 휴게소이다. 거기 포장마차가 있었다. 한 청년이 카바이드램프carbide lamp를 지키고 있었다. 갈 때마다 청년은 늘 혼자이다. 소주 한 병을 청한다. 첫 잔은 청년이 따라 준다. 안주는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양고 선생님이시죠.’ ‘그렇게 보여요?’ ‘무척 외로워 보이십니다.’ ‘아니 뭐 왜 그리 보이지?’ 왜 그런지 다 아니까 공연히 창피스럽다. ‘선생님, 저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번 학기 등록을 못했습니다. 다음 학기에는 꼭 등록하려고요.’ 아, 소주를 마시는 것이 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구나. 그래도 혼자의 흥으로는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했다. 겨우 반병인 나의 소주 학습 진도가 미안했다. 청년은 반병 남은 소주병 뚜껑을 막아 보관했다가 이튿날 내주었다. 하루는 남은 반병을 마셔야겠기에 가고, 하루는 반병을 남기려고 그 청년에게 갔다. 청년도 혼자이고 나도 ‘함께’가 아니라 ‘혼자’였다. 청년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왔다. 나의 소주 진도는 왜 이리 답답할까. 어느날 나는 반병도 아직 비우지 못했는데 이미 꽐라가 되어버린 동료 교사들이 몰려왔다. 이때 혼자인 나의 자존감은 왜 숨고 싶었을까.

마흔을 넘어도 나의 소주는 반병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흔둘 그 화려한 나이에 어느 인문학교에서 3학년부장을 맡았다. 담임교사가 열 분이다. 첫날 회식에서 나는 최소한 열한 잔을 마셨다. 일약 반병 주량보다 한 병을 더 마신 것이다. 괄목상대할만한 성장이다. 나의 소주 실력이 성장하는 것만큼 아이들의 성적도 향상되었다. 술이 점점 나의 영역을 확대해갔다. 이즈음 맥주에 소주를 말아 마시거나, 소주에 양주를 섞어 마셔도 끄떡없었다. 오히려 뒤끝이 깔끔해서 좋았다. 답답하고 씁쓸하고 먹먹했던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부장교사의 꽃이라는 교무부장을 맡았을 때, 전 직원 회식에 가면 여교사를 건너뛰더라도 최소한 60잔은 마셔야 했다. 줄잡아 소주 아홉 병을 탄산수 같은 청량감으로 마셔댄 것이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바람이 거침없이 드나드는 기분이었다. 세상 모두가 내 세상이다. 시계(視界)가 확 열렸다. 까짓것 소주가 별거냐. 세상이 뭐 대단한 거냐. 주선(酒仙)인지 주광(酒狂)인지 모르지만 비틀거리거나 소리 지르거나 거칠 것도 없었다. 발 딛는 곳이 다 내 영역이었다.

오십을 막 넘어섰는지, 그때 다시 시골학교로 갔는데 소주 학습은 전성시대를 맞았다. 사택에서 살면서 날마다 원 없이 소주 공부를 했다. 기어들어가든 업혀 들어가든 사택까지만 들어가면 된다는 안도감이 빈병 줄을 길게 세웠다. 언젠가 한번도 함께 마시지 않았던 선배와 붙었다. 맥주에 소주를 말아 마시기 내기를 했다. 선배가 나를 무시했다. 다 멋있는데 술을 못 마셔서 퇴짜란다. 그는 그렇게 나를 몰랐다. 다른 교사가 심판을 보면서 잔을 부딪치고 마시기를 거듭하여 맥주 컵으로 아홉 잔을 마셨다. 이미 소주가 몇 순배 돌아간 뒤여서 취기가 더했다. 소맥은 달고 고소하다. 남들은 지천명이라는데 천명 대신 술맛을 알게 된 것일까. 심판이 열 잔째를 말고 있는데 드디어 선배가 항복했다. 나는 이튿날도 어김없이 제 시간에 출근해서 사무실 청소를 했다. 반세기 소주 공부의 끄트머리는 뻐근함도 없고, 먹먹함도 답답함도 씁쓸함도 없었다. 그냥 달고 고소했다.

절정을 알면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오만했던 나는 오지게 된서리를 맞았다. 폐에 염증이 들어 자그마치 3주나 입원했다. 학습은 거기서 멈추었다. 소주 학습 반세기가 돌고 돌아 도로 한 잔이 되었다. 그러나 고희의 한 잔이 어찌 열아홉의 한 병에 머무르랴. 한잔 술을 잘라 마시는 지혜를 학습한 것이다. 잘라 머금은 한 모금이 한 잔이 된다. 세상도 세월도 사유도 한 모금에 다 담긴다.

술이 제자리로 환원하는 동안 사유는 나비물의 영역을 넘어서게 되었다. 고희의 시선은 한잔 술에 머물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놀이도 친구도 먹거리도 손바닥만하다. 씁쓸함도 먹먹함도 그냥 거기이다. 그러나 시선은 그냥 거기가 아니다. 그러면 거기는 어디인가. 그건 이미 주선(酒仙)인 송강(松江)이 한마디 시로 대답했다.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가. 기피를 모르거니 가인들 어찌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