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21. 6. 2. 14:08

연초공장 누나들

 

커피 맛이 특별한 문화다방에 갔다. 오늘도 오천 원짜리 한 장으로 두 잔을 샀다. 현관문 바로 앞에 앉아 체온을 체크하는 여성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넨다. 문화의 씨앗 하나를 심는 것이다.

문화다방은 연초제조창이었던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 건물 로비에 있다. 커피 맛이 특별하고 따뜻하다. 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바로 달려가면 8시 55분에 도착할 수 있다. 현관에서 체온을 체크하는 중년 여성을 만난다. 참 친절하다. 따끈한 커피 한잔이 하루를 행복하게 한다. 그분에게 커피를 건넨 날은 더 행복하다. 더구나 9시 이전에 결제를 하면 3000원에서 자그마치 500원이나 할인해 준다. 오천 원짜리 한 장이면 두 잔을 살 수 있다. 그분에게 한 잔을 슬쩍 건넨다. 돌아오는 미소가 따듯하다. 그분보다 내가 더 기분 좋다. 그분은 출입하는 분들에게 조금 더 친절할 것이다. 그분에게 행복을 대접받은 이들은 또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풀 것이다. 한 잔의 커피가 세상에 행복을 심는 씨앗이 된다.

문득 그분이 누나처럼 보인다. 이 건물이 연초제조창이었기에 여기 근무하는 모든 여성들이 누나로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냥 사촌누나쯤으로 생각된다. 나보다 열 살쯤 더 많은 사촌 누나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릴 때 연초제조창에 들어가서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담배냄새를 맡았다. 고모님은 젊은 나이에 홀몸이 되셨다. 고모부가 고위직 공무원이었는데 전쟁 때 납북되는 바람에 누나 밑으로 삼형제가 졸망졸망 남았다고 할머니께 들었다. 생계가 막연해졌을 그때 국가가 혜택을 준 것인지 누나가 입사시험에 합격한 것인지 연초공장에 들어갔다.

아버지나 삼촌은 물론이고 할머니의 얼굴에 구름이 걷힌 것 같았다. 어른들이 고모네 걱정을 덜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나에게서는 늘 담배냄새가 났다. 그리고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하얬다. 어쩌다 외갓집인 우리집에 오는 누나를 참 좋아했다. 철없는 나는 늘 예쁘게 웃는 누나에게서 배어나는 담배냄새까지도 좋아했다. 마음 아픈 일인데도 말이다. 젊은 시절에 고통스러웠던 누나의 하루하루는 우리 민족사의 비극이 남겨준 상처였다.

힘겨운 사촌누나의 삶을 나의 누나들은 오히려 부러워했었다. 날마다 출근할 직장이 있는 것이 부러웠고,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부러웠을 것이다. 아마도 다달이 꼬박꼬박 받는 월급이 가장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누나들은 사촌누나가 들려주는 직장 이야기도 참 신기했을 것이다. 나는 무슨 이야기인 줄도 모르면서 누나들 곁에 있는 것이 덩달아 즐거웠다.

사촌형들은 담배 냄새나는 사촌누나와 시내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누나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편안하게 학교에 다녔다. 누나는 출근하면서 형들 밥을 해주고 도시락을 챙기는 고생을 감수했다. 집안을 일으킬 남동생들 뒷바라지가 성스러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형들은 누나의 힘겨움을 덜어주려는 뜻인지 열심히 공부했다. 고모부의 유복자인 막내 형은 나보다 두 살 많았지만 중학교에 늦게 들어가서 나보다 한 학년 위였다. 어쩌다 고모님께 가면 그 형이 신기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반에서 1등을 해야 수업료를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 형에게 치열한 삶의 현실이었다.

큰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군인이 되고, 둘째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셋째형은 법대에 진학하여 법률가가 되었다. 형들이 취업을 하면서 형편이 좋아져 누나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누나는 그때만 해도 신붓감으로 인기가 높았던 연초제조창 직원이었기 때문에 착한 선생님을 신랑으로 만날 수 있었고, 후에 교장 사모님이 되었다. 형들은 누나가 기대한 대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사회의 기둥이 되었다. 누나의 희생은 참 좋은 씨앗이 되었다.

고모님 댁 형편이 나아진 것은 사촌누나가 진학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희생한 것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고 연초제조창은 담배인삼공사로 민영화되었다. 민영화과정에서 연초공장 직원들의 경제수준도 더 나아졌다는 소문이다. 직원들의 근무여건이 좋아지고 경제수준도 높아지면서 안덕벌 경기도 풍요로워졌다. 그리 보면 한국 경제 성장이나 안덕벌 경제 성장이나 제조창 누나들의 덕이 아닌가 한다. 연초제조창에 근무하던 얼굴 하얀 누나들의 희생이 이 거리, 이 도시, 이 나라 풍요의 씨앗이 된 것이다. 제조창 뿐 아니라 산업화시대에 누나들의 창백했던 얼굴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씨앗이다.

나는 한국의 누나들을 경배한다. 내가 책 두어 권을 손에 들고 폼 잡으며 대학으로 갈 때 서청주 공업단지로 연초공장으로 가던 누나들은 지금 모두 7,80대 노인이 되었다. 한국의 누나들은 그만큼 위대하다. 한국의 누나들이 심은 씨앗이 경제적 재산, 문화적 자산, 인문학적 자산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연초제조창에 심은 누나들의 씨앗은 이제 문화제조창이라는 꽃으로 피어났다. 권련을 만들던 공장이 문화를 만드는 둥지가 되었다. 권련을 말던 누나들이 여기서 문화를 창출한다. 여기에는 출판사도 있고 서점도 있고 카페도 있다. 디자인 하는 누나도 있고 커피를 내리는 누나도 있다. 청소하는 누나도 있고, 현관에서 체온을 재는 누나도 있다. 이 분들 모두가 연초공장 다니던 내 사촌누나만큼 소중한 분들이다. 문화를 창출하여 한국의 역사를 살찌우는 위대한 분들이다.

어려운 시대에도 남자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온 나는 누나들이 심은 씨앗으로 오늘도 풍요롭다. 그래서 한 잔의 따뜻한 커피로 오늘을 면한다. 그냥 작은 씨앗을 심은 것이다.

 

(2021.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