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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민의 <맹장> <오늘도 말이 없는 박 병장>/한국수필 2021년 4월호(314호)

느림보 이방주 2021. 3. 27. 16:45

<신인상 심사평>

 

김주민님의 <맹장> <오늘도 말이 없는 박 병장>

이방주

 

김주민님의 <맹장> <오늘도 말이 없는 박 병장>을 당선작으로 정한다. 두 작품은 인간 사랑으로 바탕으로 한 자신의 치유를 주제로 했기에 읽는 사람의 가슴이 훈훈해진다. <맹장>은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에 받은 사랑의 기억을 소환하여 보답하고자 하는 다짐을 드러냈다. 어린 개구쟁이 시절에 갑자기 온 맹장염에 대해 아버지나 어머니와 달리 맹장염으로 짚어내신 지혜로운 할머니의 시선을 사랑이 담긴 심안이라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큰 사랑은 결국 마음의 눈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른이 된 자신도 지혜의 시선을 가지려 노력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사랑의 심안이 부재하는 현대 사회를 과거의 인간적 사랑을 회복하여 치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도 말이 없는 박 병장>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을 화소로 삼았다. 군생활 때 통합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을 소재로 하여 훈련 중 사고로 부상을 입은 전우에 대한 연민의 정을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자기 치유를 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두 작품 모두 현장감 있는 묘사로 형상화하는 기법이 두드러진다. 맹장염이라 판단하고 병원으로 달려가기 직전의 아픔과 가족들의 긴장감이나, 작전 중 사고 소식을 듣고 부상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의 병원의 긴박한 모습을 눈에 보이듯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묘사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나 주변 분위기를 그저 보여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함축적으로 담아서 표현하여 더욱 박진감이 넘친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사랑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심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대면, 거리두기, 방역 같은 사람을 멀리하는 단어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 인간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반갑다. 아름다운 기억에 대하여 섬세하게 묘사하는 형상화 기법을 살려 훌륭한 작가가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

 

 

<수상소감>

 

어두운 숲길도 두렵지 않은 수필의 길

 

오래전부터 진실하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방향 없이 헤매는 나 자신을 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분의 선생님을 만나고 수필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의미 없이 지낸 삶은 철학이라 말할 수 없기에 수필이 될 수 없습니다. 사색하려는 철학적 삶을 살 때만이 수필을 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삶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치열하게 투쟁하며 하나씩 체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수필은 허구 아닌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을 잡았고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시련은 나 자신을 더 단련시킬 것입니다. 이제 어두운 숲길이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정표를 향해 한발 내디딜 때마다 조금 더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는 선생님과 문우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고 감상평을 해주는 아내와 묵묵히 자기 길을 가고 있는 아들과 딸이 있어 든든합니다. 응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수필이 있는 철학적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력>

충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충북대학교 회계학과 박사과정 수료

청주시 근무

충청북도 근무

감정평가사

㈜대한감정평가법인 충북지사 총무이사

전)청주시 공유재산심의위원회 위원

현)음성군 지방세심의위원회 위원

현)청주시 장애인체육회 감사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무심수필문학회 회원

 

주소 : 28799 청주시 서원구 분평로 18 분평주공아파트 713동 504호

전화 : 010-3431-9858

이메일 : 88jumin@hanmail.net

 

 

맹장

김주민

 

어릴 적 별명은 짱구다. 앞이마가 툭 튀어나와 있고 뼈마디가 굵고 거친 게 여간 개구쟁이스럽지 않아서다.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들을 혼내주려고 친구와 동네를 한 바퀴 순찰한다. 몇몇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떨지만 어림없다. 출항에 앞서 망아지들이 만든 딱딱한 빈대떡을 맛보고 누에를 구워 먹는 해찰을 떤다. 구리고 떫고 퀴퀴한 맛이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고 안방 천장이 지구본처럼 뱅뱅 돌아 어지럽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눈물을 머금어 소금 길을 만든다. 뒤란의 땡감을 맛본 것이 화근인지 맹꽁이처럼 먹은 것이 이유인지 아프다. 어머니는 가루로 된 소화약을 먹여주고 아버지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연의 바늘인 대추나무가시로 찌른다. 배 아픈 것보다 손발을 따는 것이 더 쓰라리다. 무심히 지나가던 어미 고양이 한 마리가 체한 게 분명하다는 듯 앙칼지게 울어댄다. 배 아플 때 손과 발을 따 괜찮아진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나아지지 않는다. 급기야 데굴데굴 구르고 발로 차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과 땀으로 베개가 흥건하다.

윤 보살님으로 불리는 할머니는 시골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다. 현명하고 인자하신 분이지만 엄한 분이시기도 하셨다. 비 오는 날 재래식 화장실에 가기 귀찮아 대청마루에서 마당을 향해 오줌을 내깔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마루에서 물대포를 쏘면 포물선을 그리다 끝내 이른 봄 고드름 녹듯 한두 방울 톡톡 떨어지게 된다. 향긋하게 지린 염화수소 냄새를 풍기며 긴 영역의 흔적을 남기게 되면 여지없이 꾸지람을 듣게 된다.

그날만큼은 엄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맹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배를 눌러보니 우측 배가 유독 아프다 하고 두발을 쭈욱 펴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이 맹장염이니 얼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말씀의 낱말들이 형광등에 부딪쳐 메아리로 돌아와 괘종시계를 아홉 번 때리고 있다. 꿈속의 귀신들과 사투를 버리고 있을 시간이다.

상황이 급박하다. 이웃 아저씨께 시내 병원에 가자는 도움을 요청했다. 안방, 건넌방은 대낮처럼 밝아있고 야간비행 중인 곤충들은 신이 나서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달님, 별님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유난떤다고 수근덕거리며 새침을 떤다. 솜털구름만이 낑낑대며 산등성이를 기어올라 달님을 가려 어두운 기운을 불러낸다. 괜찮아지겠지 라는 불안한 긍정으로 애꿎은 걸레통을 냅다 차 버린다.

두 어른이 나를 교대로 업고 심리적으로 천리나 되는 어두운 산길을 가야 한다. 면도칼로 베는 것인지 육철낫으로 찍는 것인지 쥐어짜는 듯한 창자의 용트림이 파도를 탄다. 성근 솔잎이 떨어져 시야를 가릴 때면 부글거림은 배가된다. 맹꽁이처럼 게걸스러웠던 것을 반성해 보았자 흘러간 개울이다. 따뜻한 등에 기대어 잠이 들어서였는지 어느새 병원에 다다랐다.

간호사들이 땟국물이 가득한 누런 붕대로 손을 묶어 놓는다. 검은 돌덩이 하나 더 얹는 것 같다. 가장 큰 병원이니 안심하라는 말이 희미하게 귓전에 울리는가 싶더니 이내 잠이 든다. 얼마가 지났는지 몰라도 사각진 거즈가 배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고요한 적막만이 갈 곳을 잃어 어두운 병실을 떠돌고 있다.

수술한 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프다. 꾀병 아니냐는 환청도 들린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변화가 없다. 링거의 물방울만이 혈관 속으로 오줌을 싸듯 톡톡 떨어진다. 복막염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어 재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원망스러웠다. 두 번의 수술 뒤 원망과 통증을 던져버리고 배꼽 우측에 커다란 훈장을 선물로 받고 퇴원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의 둔덕은 학교생활에 유리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헤아려준 선생님은 마음의 눈으로 쓰다듬어 주시고 매일 우유를 가방에 담아 오셨다. 그때부터 맹장의 빈 공간이 서서히 메워지기 시작했고 친구들과의 서걱거림도 사라졌다.

최근 그동안 쓸모없다던 맹장이 유산균을 저장하는 장기로 밝혀졌다고 한다. 우유가 유산균이고 맹장이라는 대체제였던 것이다. 이듬해 봄날 선생님은 가사로 퇴직하셔야 한다며 홀연히 떠나셨다. 조회가 끝났어도 교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는 바람에 떨고 있는 버드나무 곁에서 오랫동안 하늘만 바라보았다.

맹장염, 지금은 입원도 며칠 하지 않는 작은 병이다. 고 박완서 작가의 작품 속에 부친 얘기가 나온다. 작가 나이 3세 때 부친이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르는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생약과 한약을 처방하고, 할머니는 무당집에서 푸닥거리로 복통을 치료하셨다고 한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버지를 달구지에 싣고 개성에서 송도까지 갔으나 고름이 가득 차여 돌아가셨다고 한다. 시기를 놓쳐 맹장이 복막염으로 번진 것이다.

삶이란 현상과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같은 현상도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하기에 지지고 볶는 일이 다분하다. 발을 쉽게 뻗지 못하는 현상을 보고 맹장이라고 판단하신 할머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의 눈은 심안(心眼)일 것이다. 반면 기술만의 눈으로 보거나 맹목적으로 미신에 의존한다면 그런 눈은 육안(肉眼)일 것이다.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낙엽을 밟으며 애처롭게 울고 있다. 배고파 우는지 어미 보고파 우는지 육안으로는 알 수 없다. 살포시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내쉬어 느껴본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라 아내의 눈물 소리인 듯하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낼 모래가 시제 날이니 인사드려야겠다. 짱구에게 마음의 눈을 뜰 수 있게 해 달라고.

 

오늘도 말이 없는 박 병장

김주민

 

찬바람의 서늘한 기운이 강해지고 있다. 강한 바람도 온기를 머금어 언젠가는 조금씩 따뜻해질 것이다. 겨우내 억눌렸던 나무들도 새싹을 틔우고 봉오리를 하나둘 터뜨려 삶을 이어간다. 자연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잎이 지고 나고를 반복하며 성숙해진다. 추위와 따뜻함이 반복될 때면 국군통합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박 병장이 생각난다.

중환자실의 여섯 개 침대는 수술 환자 두 명을 제외하고 비어있다. 비어있는 것은 다른 주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삐쭉삐쭉 나와 있어 무질서하다. 최 일병에게 다그친다. ‘야 인마 침대 줄 하나 제대로 못 맞추냐?’ 괜스레 심술이다. 조용한 병실은 항상 조용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아우성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불안감 때문이다.

그때 응급실에서 긴급전화가 온다. 인근 육군 사단에서 훈련 중에 대형사고가 났으니 ‘중환자실’ 근무자들은 비상대기 하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주인 없던 산소호흡기, 한번도 작동한 적 없는 심장 박동기를 침대 옆에 배치한다. 간호장교는 볼펜 머리를 눌렀다 껐다를 반복한다. 위생병들은 전투모를 가다듬기도 하고 팔뚝의 소매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군의관은 간호장교를, 간호장교는 위생병을 찾아 준비 상황을 재차 점검한다. 몇 시간 뒤 압박붕대로 응급치료를 받은 환자들이 이동 침대에 실려 하나둘씩 고통의 파열음을 내며 쏜살같이 내달려 온다. 머릿속이 훤히 보이기도 하고 팔이 뒤로 돌아가기도 하여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이다. 말로만 듣던 6.25 참상이 이랬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과 팔에 묻은 피와 흙먼지를 닦아내고 혈압과 맥박을 잰다. 산소 호흡기를 입에 물리고 접착제를 이용해 가슴에 심전도계를 댄다.

간호장교들은 주사기를 이용해 포도당이 섞인 링거를 팔에 찔러 걸어 놓는다. 졸병인 위생병들은 처음 겪는 일이라 하릴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일부 환자들은 맥박이 서서히 잦아들고 게이지가 멈추는 극단적 상황까지 간다. 넘지 말아야 할 강을 넘은 것이다. 서서히 몸이 식어가며 굳어간다. 알코올로 온몸을 깨끗이 닦고 솜으로 귀, 코, 입 등을 정성껏 막아준다. 긴급한 상황이라 가족이 오지 않아 애도하는 이도 없다. 군의관과 간호장교들이 나누는 의학용어만이 간혹 들린다. 낱말의 파편들이 허공에서 주인을 향해 마지막 절규의 손짓을 하듯 떠돈다. 그렇게 여러 몸을 닦다 보면 후임 위생병들도 덤덤해지고 장의사처럼 차가운 몸을 차분하게 어루만지게 된다.

어떻게 하루가 지났을까. 삶에 고통과 슬픔이 언제나 따라다닌다고 하지만 허무하지 않은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지다니. 주인이 토해내는 신음소리에 따라 침대는 살아있다는 듯 위아래로 삐걱거리며 슬픈 연가(戀歌)를 연주한다. 미동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떨리며 거친 쇳소리를 내기도 한다. 침대에도 진통제를 달라고…. 그렇게 하얀 침대는 빨간 얼룩과 고통의 진액들로 물들어가고 있다. 몇 날 며칠이 지나고 주름과 얼룩이 하나둘 퇴색해져 새싹이 돋을 즈음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게 된다. 이제 박 병장 침대만 남았다.

박 병장은 말이 없다. 아니 말을 못한다.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날 사고 이후로 눈만 깜박인다. 말을 하려 입술을 움직이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급하게 면회 온 식구들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마음이 착잡하고 숙연해진다. 온갖 치료에도 차도가 보이질 않는다. 지친 의료진들이 희망의 불씨를 놓으려는 순간에도 부모님들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다 큰 아이의 손가락, 발가락, 코, 입, 귀 하나하나를 정성껏 뜨거운 눈물로 씻겨주고 어루만져준다. 박 병장의 여동생도 부모님과 함께 오는데 마음이 비단이다. 병원 식구들과 다른 환자를 더 배려한다. 자기들 때문에 미안하다고….

일부 병사들은 그런 그녀의 애절한 마음을 사랑한 이도 있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전파되는가보다. 통합병원에서는 병사간의 전우애가 이전보다 더 잔잔하게 흐르게 되었다. 늦은 저녁이면 어김없이 성가대의 부드러운 찬송가 소리가 환자들을 위로해 준다. 병실 저 멀리서부터 잔잔하고 고요하게 들린다. 힘든 일과 후에도 쉬지 않고 환자들을 위해 노래하고 위로해 주는 그들이다. 몇 달이 지났어도 박 병장은 누가 움직여 주기 전에는 절대 움직일 수 없다. ‘욕창’이라는 병이 생기지 않도록 자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욕창 방지 이외에 중환자실에서는 이제 더 치료할 요인이 없어 일반병실로 옮겨야 한다. 일반병실에서는 한두 명의 위생병이 수십 명의 환자를 돌보기에 박 병장의 부모님들은 병실 이전을 강하게 거부한다.

벚꽃의 화려한 흩날림과 개나리의 노오란 향기가 병동 주위에 퍼졌어도 병실 이동 문제로 중환자실은 오히려 고요와 침묵, 어색함으로 가득하다. 시간이 흘러 천둥번개가 치는 여름이 지나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동안 박 병장은 아무런 차도 없이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는 제대를 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직 살아있다면 50이 훨씬 넘었을 텐데. 20대 초반에 침대에 누워있었으니 30년을 말없이 하늘만 보고 누워 있는 셈이다.

추위를 피해 먼 곳으로 갔던 철새도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오고 파릇파릇한 새순의 화려한 축제도 시작될 것이다.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 그 시간을.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다. 그때 조금만 더 정성을 쏟아줄 걸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삶에서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본다. 박 병장이 그토록 열망했던 짧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