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17. 8. 20. 09:12
지렁이
지난 밤에 비가 내렸다. 새벽 산책을 나갔다. 보도가 촉촉하다. 이크 지렁이다. 밟을 뻔했다. 보도에 길게 몸을 늘이며 기어가는 굵은 지렁이를 밟으려던 오른쪽 발이 반사적으로 살생을 피했다. 징그럽다. 나뭇잎을 밟을 때는 모르는데 지렁이는 밟기도 전에 징그럽다. 그렇게 평등하지 못한 본능 때문에 살생을 면했다.
지렁이 밟는 것을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살생을 징그러워한다. 그렇게 태어났다. 오늘 새벽에는 새삼 하늘이 고맙다.
(2017.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