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17. 6. 15. 15:30

잠자는 복두산성

 

 

복두 산성은 들머리를 확실히 알 수 없어 마음에 담고 다녔다. 그런데 집안 일로 남이면 비룡리에 가서 일가 어른을 뵈었는데 마을 앞산이 꼭 복두를 쓴 것 같이 생겨서 혹시 복두산이 아닐까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바로 들머리까지 가르쳐 주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실크리버 골프장 가는 길로 들어서서 정문을 지나 능선 절개지 부근 공터에 차를 세웠다. 능선 절개지에서 서쪽 능선을 타면 복두산성, 성재산성이고 동쪽 능선을 타면 독안산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성재산, 복두산, 유모산, 독안산이 이어지는 능선이 골프장 가는 길을 내느라 잘려 훼손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산성까지 조금 가파르기는 했지만 경운기나 중장비가 드나들어 걷기 좋았다. 20여분 걸어가니 복두산성 안내 표석이 보였다. 이것은 인근 노고산성에 있는 안내문과 비슷하고 부강면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의 부용면장이 문안을 작성하고 역사학자가 감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내용에 복두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된 겹성이며 내성은 130m, 외성은 635m로 되어 있어 총 760m인데 주변에 이어진 능선의 토성까지 합치면 1000m가 된다고 하였다. 정확히 고증된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최근에 중장비가 들어온 흔적이 있고 산성도 많이 훼손되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아래에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로 성벽의 형태가 보였다. 내려가 보았다. 줄자를 꺼내 원형이 남은 성벽을 재 보았다. 성석은 가로 30~40cm, 세로 약 20cm 정도였다. 장방형의 돌을 깎아서 차곡차곡 올려놓는 바른 쌓기 방식으로 축성했다. 금이성 축성 방법과 비슷하고 화강암으로 된 석질도 비슷했다. 무너진 부분을 살펴보니 돌 사이에 쐐기돌을 박아 넣어 무너짐을 방지하였다. 장방형으로 일정하게 쌓은 부분도 있지만, 주변의 자연석을 대충 쌓아 올린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축성 시기가 다르거나 뒷날 보수한 흔적이 아닐까 한다.

성의 높이는 무너진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5~7m 정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북쪽 사면이 비교적 경사가 급한데 그 위에 성벽이 높아 아마도 북쪽에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데 편리했을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성벽이 흙에 묻혀있어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상당히 견고하게 쌓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다시 성벽 위에 나 있는 수렛길로 올라왔다. 성벽 바로 위에 내성의 석축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수렛길 때문에 거의 훼손되었다. 내성의 성벽은 아랫부분을 돌로 쌓고 그 위에 흙을 다져 올렸다. 토석혼축형 축성법을 연구하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수렛길에 중장비가 다니면서 훼손한 것이 더 안타깝다. 토축한 아랫부분에 마치 기초공사 하듯 쌓은 부분은 외성의 축성법과 비슷하다. 수렛길이 끝날 무렵에 성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분묘 한 기가 있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성벽을 보니 이 부분은 흙으로 쌓은 외성임이 분명하다.

성의 내부로 들어가는 어귀에 분묘가 있다. 허름하기는 하지만 꽤 넓게 자리를 잡았고 북향이다. 남이면 비룡리 쪽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런데 비석만 있고 상돌은 없어 살펴보니 상돌이 옆으로 비켜나 있다. 비석도 훼손된 흔적이 뚜렷하다. 전면에서 효자 열녀의 묘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성씨를 누가 지워버렸다. 이면에서 성씨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분묘 주변이 중장비에 의해서 파헤쳐졌다. 정상까지 10m쯤 되는데 이곳도 중장비가 파헤쳤다.

정상에 너른 공터에는 지휘소 같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곳 건물지에도 누군가 분묘를 만들어 다 차지해버렸다. 주변에 나무를 심어 조경까지 했다. 본인은 조경으로 생각하고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문화재를 훼손한 것이다. 성안에 우물터가 있었을 텐데 찾을 수가 없었다. 분묘를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남쪽 성벽도 토성이 분명하다, 아마도 기초 부분은 돌로 쌓고 내부와 상단부는 흙으로 쌓은 것 같다. 성 내부 중앙은 토축 보루처럼 보였다. 토축 보루 위에 후세 사람들이 분묘를 만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조상님을 보루를 지키는 영원한 성지기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졌지만 겨울에는 여기서 부강면 일대가 다 눈에 들어 올 것 같다.

내려오다가 중장비가 파헤친 부분을 살펴보니 기와조각 몇 개가 눈에 띤다. 백제시대나 통일 신라 이후에 건물이 있었을 것이다. 표지석에는 백제시대 토기편도 발견된다고 했다. 찾지는 못했다. 이 성은 백제 시대에 축성되어 후에도 계속 사용했다고 한다. 이 산 줄기에 있는 성재산성, 복두산성, 독안산성, 유모산성과 부강 소재지 건너의 노고산성, 애기바위성, 화봉산성이 서로 마주보면서 부강 소재지와 금강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북으로 은적산성이 2~3km, 팔봉산이 바로 얼마 되지 않는다. 서쪽으로 세종시 원수봉산성 합강리 주변의 산성들과 연결된다. 결국 운주산성에서 시작되는 연기지역의 산성들과 공주의 공산성이 연결되는 중간 위치가 아닌가 한다. 또 이곳에서 노고산성 줄기와 함께 금강에서 부강을 통하여 청주나 문의 보은으로 향하는 모든 인마의 움직임을 관찰 관리하였을 것이다.

성재산성 쪽은 군부대가 있어서인지 민간에서 쳐 놓은 것인지 철조망을 쳐 놓았다. 갈 수가 없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비룡리 쪽에 골프장이 보인다. 골프장이 한 골짜기를 다 차지하고 성채처럼 들어 앉아 있다. 저기 살던 농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 산에 묻혔던 분묘의 자손들은 조상의 산소를 다 어디로 모셨을까 궁금했다. 주변에서 문화재는 또 얼마나 잃어버렸을까. 급변하는 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복두산성은 아직도 백제의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위치 : 세종시 부강면 문곡리 823번지(복두산 281m)

규모 : 둘레 760m인데 최근에는 1000m가 넘는다는 보고도 있음

형식 : 토석혼축 테메식 산성

답사일 : 20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