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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관산성 전투의 종지부 백골산성白骨山城

느림보 이방주 2017. 6. 4. 15:00

관산성 전투의 종지부 백골산성白骨山城

 

 

백골산성은 관산성 전투의 종지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산성을 손에 넣은 부여창은 신라의 신주군(지금의 진천)에 머물러 있던 김무력장군의 공격으로 환산성에서 곤경에 처했다. 이때 성왕은 항산현성(지금의 금산 추부 마전리산성)에서 후방을 지원하고 있었다. 김무력은 성왕이 부여창을 지원하러 추부에서 고리산성으로 향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삼년산성에 있던 비장 도도를 시켜 현장에서 참수하게 했다. 부여창은 김무력과 도도의 전광석화 같은 공격으로 고리산성을 버리고 백골산성까지 쫓겨 여기서 전멸하다시피 했다. 역사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백골산성을 찾아간다. 마음이 정해지면 머뭇거리지 않고 출발하는 것이다. 지도를 들고 승용차로 피반령을 넘었다. 대전시 동구 신하동 진고개식당 옆에 차를 세웠다. 커다란 식당 간판 옆에 백골산성 입구라는 아주 작은 이정표가 보였다. 거리는 가깝다. 해발 340m이니까.

조금 올라가니 백골산 등산 안내도가 보인다. 백골산에서 신상동 주차장으로 내려오든지, 반대 방향으로 시도계를 지나 청주 절골로 내려오면 바로 대청호숫길 5-2코스의 일부이다. 절경이 욕심났지만 오늘은 백골산성으로 만족하자. 길은 아주 평탄하고 걷기 좋았다. 그늘인데다 흙길이고 대전시에서 정비를 잘해 놓았다. 등산객은 한 명도 없다. 너무 덥기 때문인가. 늘 혼자 가지만 산성에 혼자 가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곳인가. 부역으로 끌려와 죽고, 굶주림으로 죽고, 지키다 죽고, 싸우다 죽고. 게다가 모두 원혼이 아닌가. , 소름이 돋는다. 생각하지 말자.

땀에 온몸이 젖을 때쯤 이정표에 백골산성이 500m라 되어 있다. 이제부터 성벽의 윤곽이 드러나야 하는데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잡목 속에 돌무더기가 보였다. 성이라기보다 그냥 돌더미이다. 나무를 헤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석을 헤집어 보았다. 성석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이다. 축성 방법을 알 수 있는 부분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다. 이끼 낀 돌들은 크기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상당히 크다. 회남의 호점산성과 같이 납작한 점판암이 아니라 커다란 돌덩이다. 둘레가 400m정도였다고 하는데 이 많은 돌을 어디서 다 옮겨왔을까.

정상에 오르니 절경이다. 여기부터 북으로 회남 문의로 갈라지는 물길이 확연히 보인다. 그것은 여기서 회남을 거쳐 보은으로 향하는 길도 관측되고, 문의를 거쳐 청주로 향하는 도로도 관측이 된다는 말이다. 서쪽으로는 계족산성이 코앞이다. 바로 꽃님이반도를 건너 마산동산성을 밟고, 견두산성을 건너뛰면 계족산성에 바로 내려앉을 수 있을 것 같다. 동으로 고리산성이 바로 거기이다. 기슭에 있는 집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남으로 식장산이 보인다. 고리산성과 식장산 사이에 관산성이 거기이다. 시야가 이렇게 넓으니 금강 유역의 육로와 수로를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커다란 참나무 아래 납작한 돌을 놓고 앉아서 여기서 죽었다는 29600명의 백제인을 만나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나는 노트를 펴놓고 그들이 나타나 당시의 삶의 애환을 이야기해줄 때를 기다렸다. 주변에 거대한 참나무는 백제인의 피를 길어 올려 살찌우고, 백제인의 숨결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흙도 공기도 피와 살이고 그들의 날숨이다. 사실은 모두 백제의 원혼이다. 이제는 저렇게 물에 다 묻혀 버릴 땅을 지키고 빼앗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아까운 목숨을 버린 것이다. 한켠에 큰꽃으아리가 하얗게 피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한 그들의 아름다운 영혼이다. 혼자서 한 시간은 앉아 있었다. 글 한 편을 잡아냈다. 바람이 분다. 등골이 서늘하다.

내려오는 길이 씁쓸하다. 1500년 전설 같은 이야기를 두고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나는 공연히 생각이 많아 지팡이 두 개로 짚으며 비탈길을 내려왔다. 회남을 되짚어 돌아왔다. 배가 고프고 졸리다.

 

 

위치 : 대전 동구 신하동 산13 (해발 340m 백골산 정상)

시대 : 백제 산성(대전시 기념물 제22)

규모 : 지정면적 4,343둘레 400m

형태 : 테메식 석축산성

답사일 : 201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