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청양 계봉산 계봉사 오층석탑

느림보 이방주 2017. 4. 29. 23:30

청양 계봉산 계봉사 오층석탑



명 칭 : 계봉사오층석탑 (鷄鳳寺五層石塔)

종 목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7(1984.05.17 )

소 재 지 : 충남 청양군 목면 본의리 675번지

시 대 : 고려시대

답사일 : 2017429

개요 :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충남 청양군 목면 본의리에 있는 계봉사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5층 석탑이다.

계봉사는 백제 성왕 때 지었다고도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헌종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옛이름을 따서 작은 규모로 새로이 짓고 정원을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5층 석탑과 물을 받는 돌구유만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석탑(石塔)은 각 층 파손된 곳이 많아 유감이나 대체로 그 보존이 양호하다. 기단(基壇), 탑신(塔身), 상륜(相輪)의 수치 균형이 잘 맞아 수려하고 탑체(塔體)의 체감율()이 순서를 잘 지켜 미려하며 종횡(縱橫)의 선율(旋律) 또한 잘 조화되어 조금도 어색한 점이 없이 우려(優麗)한 석탑(石塔)이다.

이중기단(二重基壇)으로 구성하고 우주(隅柱) 표시가 된 옥신석(屋身石)과 일직선의 처마와 전각(轉角)에 이르러 앙형(仰形)을 보이는 선율(旋律)로 어울리는 옥개석(屋蓋石)과 복발(覆鉢)과 앙화(仰花)의 구조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양식계(石塔樣式係)를 계승한 것이다.

기단(基壇)의 하대갑석(下臺甲石)과 상대갑석(上臺甲石)의 강한 구배(勾配)를 표시하고 옥개석(屋蓋石)받침이 4층급으로 계속되다가 5층 옥개석받침에 이르러 3층급으로 감축되는 경향이다. 이는 후대석탑의 구조 양식의 특징으로 나타난 것으로 곧 고려시대의 석탑이라 하겠다.

-문화재청-


▣ 계봉사 :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백제 성왕 때 창건했다고 하는 설과 신라 문성왕 때 보조 체징(普照 體澄)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407(조선 태종 7) 나라에서 천태종의 자복사찰(資福寺刹)로 삼았다그러나 헌종 때 불탔으며, 1920년 무렵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로는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유물로는 계봉고탑(鷄鳳古塔)’이라 불리는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7)이 있는데, 고려 때의 작품이다. 



두릉윤성 답사를 마치고 계봉사 오층석탑을 보려고 내비에 계봉사를 입력했다. 멀지 않다. 고개 하나를 넘으니 갑자기 계봉사 안내 이정표가 있어서 급히 좌회전했다. 사찰 입구에 커다란 연못이 있다. 연못은 손질을 하거나 잘  가꾼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수련이 수면을 거의 덮고 있었다. 7월쯤이면 여기 연꽃이 피어날 것이다. 다듬지 않은 주차장에는 풀이 무성하다. 그러나 넓어서 좋다. 그 때 개가 짖었다. 사람은 없다. 개만 나와서 짖는다.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가는 중간에 탑이 우뚝 서있다.  설명 안내판에는 '청양계봉사 오층석탑'이라고 되어 있었다. 거기서 사찰의 연원과 석탑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탑은 옥개가 몇 군데 깨어지고 주변을 다듬지 않아 을시년스럽다. 탑은 고려시대 작품이라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기단에 계봉고탑이라고 탑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고탑이라고 한 것으로 봐서 탑을 처음 세울 때 이름을 붙인 것 같지는 않다. 알아보니  사찰에서 1954년 시주를 받아 탑을 보수하면서 그들의 공덕을 기리고자 기단부의 일부를 다듬어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던 시절의 일이지만 이는 명백한 문화재 훼손이다. 요즘 같으면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일이다.

석탑의 가치에 비해 절은 상당히 쇠락해 있다. 지붕이 함석인 것도 그렇지만 절집 주변이 전혀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백제시대 창건한 고찰이 어찌 이 지경이 되었을까? 마음이 아프다.  이 절이 조선시대 한때 화재를 만나 불타버린 뒤에 최근 들어 다시 절집을 짓고 복원했다고 한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탑만 혼자서 이 절터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절이 불탄 이유가 무엇일까? 불교에 대한 탄압일까 전쟁일까? 헌종 때 불탔다고 하는데 당시는 불교를 탄압하던 시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천주교를 탄압하던 시대였다. 법당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아 탑 주변만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한 보살이 내려와서 내 주위를 돌아보고 들어간다. 이 사찰의 뒷산에 가보면 아직도 주추가 남아 있고 연화문이 있는 기와편이 발견된다고 하니 상당히 규모가 큰 사찰이었나 보다. 지금은 대한불교태고종 종단에 속해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탑이 있는 곳에는 백화원百花園 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아마도 꽃동산이라는 의미인가 보다. 백화원에는 그 이름에 맞게 꽃이 많이 피어 있다. 보리수나무꽃과 골담초나무꽃이 피었다. 골담초나무꽃이 특히 예뻐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릴 때 삼촌댁 뒤안에 이 꽃이 피었다. 이 꽃은 그냥 따서 먹기도 했었다. 지금 보니 꽃이 참 예쁘다. 그 옆에 나무미륵존불南無彌勒尊佛이란 비석도 있었다. 아무튼 특이한 절집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돌렸다.


계봉사 오층석탑

계봉사 전경


백화원

나무미륵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