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공원 가는 길
연꽃 공원 가는 길
모롱이만 돌면 연꽃공원이다. 팍팍한 허벅지를 달래어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모롱이를 돌자마자 건너야할 나무다리는 나지막한 오르막길이다. 가속을 이용해서 힘차게 밟으니 쉼터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이 30km가 다른 사람들에겐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뿌듯하다. 연꽃 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세종시에서 조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둔치에 만든 연꽃공원은 아담하고 예쁘다. 연꽃이 만발했다. 드문드문 연실蓮實도 비쭉비쭉 올라왔다.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꼭뒤가 부끄럽다.
중학교 입학할 때 다른 친구들은 필수품인 자전거를 샀다. 나는 아이들이 자전거 배우는 걸 멍하니 바라만 보아야 했다. 등굣길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피해줘야 했다. 때를 놓쳤기에 집안 형편이 나아졌을 때는 자전거가 쓸모가 없었다. 자전거를 탈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미 고수가 된 친구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배우기도 싫었고 배우는 걸 보이기도 창피했다.
몇 해 전 교직에 있을 때였다. 여고 2학년을 담임했는데 아이들이 소풍 때 무심천 자전거도로 하이킹을 가기로 정했다. 이것은 내겐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허락하지 않았다. 자전거는 대여하면 되고 자전거도로는 초보자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데도 말이다. 한 아이가 ‘선생님 혹시 자전거 못 타시는 거 아네요?’ 라며 나의 치부를 건드렸다.
바로 자전거를 샀다. 아들의 코란도 승용차에 싣고 모교인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아들이 일러주는 대로 오른발을 페달에 올려놓고 왼발로 한번 땅바닥을 차고 나서 계속 밟으니까 몇 번 기우뚱대다가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니 밟으면 나아가는 게 자전거였다. 이삼십 분이면 이루는 것을 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마음 불편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옹색한 자존심을 내려놓을 용기를 내지 못한 대가로 오늘까지 치룬 불편은 너무나 컸다.
무심천 자전거 도로에 진출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차도도 지나야 하고, 내리막길 오르막길도 있고, 다리도 건너야 한다. 그런 장해물이 내게는 삶의 어려움으로 생각되었다. 하루는 신호에 맞추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연습을 하고, 또 다른 날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연습을 했다. 새벽마다 가까운 주중리 들판에 농사꾼이나 된 듯 농로를 헤집고 다녔다. 무릎에는 개구쟁이 딱지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이런 때늦은 투쟁은 옹졸한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용기도, 넘어지면 바로 일어서야 하는 투지도 내게 요구했다.
무심천 자전거도로에 나가는 첫날 바로 조천연꽃공원까지 갈 수는 없었다. 근력이나 지구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두세 번 다녀온 다음에 드디어 연꽃공원을 목표로 삼았다. 왕복 60km도 안 되는 길이 그렇게 멀리 느껴졌고 그렇게 힘겨울 수가 없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오르막길 내리막길에서도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여유도 생겼다. 인제는 조천연꽃공원은 내게도 일상이 되었다.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강생인 글벗들에게 부여 궁남지에서 여름학기 마지막 합평회를 갖자고 했다. 궁남지 너른 연밭에 진흙을 헤치고 나와 곱게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면서 수필문학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의미한 일상을 의미 있는 언어로 승화시키는 수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처음 글을 쓰는 이들은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만큼이나 자신을 내놓는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결핍이라 생각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움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글벗들도 나처럼 연꽃 만발한 연꽃공원을 갈망하고 있을까? 대중에게 수필문학을 전하고자 하는 내 소망을 조금이라도 이해할까? 사실 연꽃이 만발하는 연꽃공원은 궁남지만이 아니다. 수필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그분들은 연꽃공원에서 수필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생활의 모티프를 얻을 것이고, 나는 대중에게 수필의 세계로 다리를 놓아주는 힘을 얻을 것이다. 아무리 험하더라도 가야하는 길이다.
이제 나의 자전거가 미호천과 조천이 만나 금강이 이루어지는 연꽃공원에 도달했으니 수필창작교실도 그분들의 소망에 맞는 연꽃공원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궁남지도 그 하나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수필문학이라는 연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혹 봉오리로 맺혀 있더라도 걱정할 건 없다. 홍련도 피어 있을 테고 백련도 필 것이다. 아니 소담스런 황련도 있을 것이다. 활짝 핀 연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듯이 가시연도 부레옥잠도 나름의 멋을 낼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연꽃공원에는 수필문학을 꿈꾸는 대중이 지금보다 더 많은 꽃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마침 이름도 궁남지이니 수만 평에 만발한 각양각색의 연꽃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경연經筵을 벌였으면 좋겠다.
(2015.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