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절만 하시지요
- 느림보 아저씨, 왜 어깨가 축 쳐져 있어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 에잇 이 버마재비 놈아,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시빗거리냐? 넌 만날 만나기만 하면 시비더라.
- 그것 보세요. 느림보 아저씨 제발 일절만 하시지요?
- 이놈아, 일절만 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 아저씨 그냥 무슨 시빗거리냐고 물어보면 될 것을, 만나기만 하면 시비냐고 덧붙이냐 그 말씀이지요. 제가 언제 만날 시비였나요? 그러니 이절까지 간 게 아니냐는 말씀이지요.
- 아니 '만날 만나기만 하면'이란 말이 뭐가 그리 안 좋은 말이냐?
- 이것 보세요. 무슨 시빗거리가 있느냐? 여기까지는 일절, 넌 만날 만나기만 하면 시비라고 한 건 저에 대한 인신공격이잖아요? 그건 이절이라고 하는 거예요.
- 그럼 네가 만나기만 하면 내 흠집을 건드렸지 그러지 않았단 말이냐?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 느림보 아저씨, 그건 충고예요. 충언이라고 하는 거지 흠집을 건드려 마음에 상처를 준 건 아니란 말입니다. 느림보 아저씨는 늘 결점을 말하고 나서 인신공격을 했잖아요. 그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절이란 말이지요. 듣는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는…….
-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네가 지금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인신공격이 아니냐?
- 그럼 느림보 선생님, 숙제 안 해온 아이들을 꾸중할 때 이러잖아요. 무슨 일로 숙제를 못했지? 무슨 사정이 있었어? 요렇게 일절만 하면 될 것을, 왜 숙제를 안 해 왔어? 그러니까 만날 꼴찌나 하지. 이렇게 이절까지 간단 말이지요. 꼴찌라는 건 그 아이에겐 크나 큰 상처인데 거기에 소금까지 뿌려 준 게 아닙니까? 얼마나 아프겠어요. 마음에 흉터도 남고요.
- 버마재비야, 아무리 세모대가리라도 생각을 좀 해 봐라. 그럼 그렇게 공부 안하는 놈이 꼴찌를 벗어나겠냐? 한 번 야단치려면 단단하게 혼을 내 줘야지.
- 교단 밥을 사십 년이나 먹은 느림보 선생님, 왜 이러십니까? 교육이 혼내 주는 겁니까? 말로만 사랑으로 감화시켜야 한다면서 사십 년을 살아오셨나요? 감추고 싶은 정말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상대에겐 상처가 된다는 걸 왜 모르시나요. 그것이 바로 인신공격이고 인신공격은 상처만 줄 뿐 감화는 주지 못한다는 걸 모르시는군요.
- 사랑과 감화? 웃기는 말이다. 종아리가 따끔따끔해야 가르침을 제대로 받는 거야 이 버마재비 오줌싸개 사마귀야.
- 느림보 선생님, 그럼 차라리 회초리로 종아리라도 치시지 그러세요. 회초리로 남은 상처는 나으면 그만이지만, 말의 회초리에 맞은 상처는 마음에 남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모르시나요?
- 에이, 이 오줌싸개야, 난 이제 선생이 아니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 그래서 내가 느림보 아저씨라고 부르잖아요. 느림보 아저씨, 오늘 아침은 왜 닭똥 씹은 얼굴로 나오셨나요?
- 그럴 일이 있다. 이놈아.
- 뭐 부인한테 싫은 소리라도 들었나요? 부인께서 이절까지 가던가요?
- 버마재비야, 네 말을 듣고 보니 그게 이절인가 보다.
- 무슨 말씀이세요? 인신공격이라도 당하셨어요?
- 아니 그냥 된장찌개가 좀 짜니 다음부터는 조금 싱거웠으면 좋겠다고 하면 될 걸 왜 뒤에다 이렇게 짜게 먹다가 병들어 죽으라는 말이냐고 했는지 몰라.
- 그래요 그게 바로 이절까지 간 거예요. 일절만 하시라니까요.
- 버마재비야 네 말이 정녕 옳다. 그 옷은 색깔이 오늘 분위기에 안 맞으니 다른 옷을 입는 게 좋겠다고 하면 될 걸, 당신은 머리가 나빠서 항상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한다는 말까지 덧붙여 갖고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몰라.
- 느림보 아저씨, 정말 머리 나쁜 건 아저씨네요. '머리 나쁘다'는 말보다 '항상'이란 말이 더 치명적이란 걸 모르시나요?
- 그건 또 무슨 말이냐?
- ‘항상’이란 말은 지금 실수만 나무라는 게 아니라, 과거까지 들먹거리는 거잖아요.
- 버마재비야, 넌 그 조그만 세모대가리에서 어쩜 그런 지혜가 나오느냐?
- 아저씨 내게 버마재비라고만 불러 주세요. 오줌싸개, 사마귀 이런 말을 싫어하는 거 모르세요? 그건 제 생애의 치부를 두고 붙인 이름이잖아요. 또 세모대가리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못난 내 얼굴을 두고 붙인 이름이잖아요. 그렇게 부를 때마다 상처가 된단 말입니다.
- 그럼 너는 범의 아재비만 되고 싶은 게로구나.
- 그럼 아저씨는 키다리아저씨, 뻐드렁니, 팔자걸음, 고집쟁이, 소갈머리 없는 사람, 뭐 이런 말을 들으면 좋겠어요? 그건 인신공격이에요.
- 떽! 이 오줌싸개 사마귀 세모대가리야.
.- 느림보 아저씨, 언젠가 부인이 무거운 걸 들고 오면서 바라만 보고 있는 아저씨한테 '무거워요 좀 받아 줘요.' 하면 될 것을 '쳐다보지만 말고 좀 받아 줘요. 인정머리라고는 약에 쓸래도 없어.'라고 해서 기분이 푹 꺼져 버렸었잖아요.
- 그건 인정머리 운운한 말 때문이지.
- 그게 바로 이절이에요. 아저씨도 이절까지 가면 기분 젬병이잖아요. 일절만 말하기로 유명한 부인께서도 가끔 실수를 하늘 걸 보면 우린 항상 조심해야 되지 않겠어요? 일절만 하시지요?
- 그래, 일절만 하자. 이절까지 가지 말자. 충고만 하자. 절대 평가해서 비난하지 말자. 비난은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버마재비야, 고맙다. 너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아니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는 도반이다. 영원한 동반자여! 나의 도반이여!
(2014.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