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14. 1. 16. 08:04

2014. 1. 16. 목요일

 

할머니랑 놀았어요. --280일째

 

<규연이의 일기>

 

오늘은 꼭 누가 올 것만 같았어요. 제일 반가운 사람은 이모예요. 이모가 오면 나를 많이 이뻐하기도 하지만 정민 누나가 함께 오거든요. 나는 나랑 비슷한 정민 누나랑 노는게 좋아요. 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말은 못해도 서로 맘이 통하거든요. 평소에 내가 궁금했던 것을 누나는 아주 시원하게 가르쳐 주고 함께 재미있어 해 주기도 하고요. 그래서 반가워요. 엄마 친구들이 오면 어떤 때는 아기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는데 별로 친하지 않아서 그냥 놀아주는 척만 해요. 엄마 친구들이 나더러 "이쁘다"하면서 안아주기도 하는데 그 때마다 그냥 그러려니 해요. 내가 원래 이쁘기도 하니까 그러겠지 하지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면 정말로 나를 이뻐해 주는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갖고 싶은지 모르나 봐요. 자꾸 안아 주려고만 하고요. 전에는 할아버지가 안아주는게 좋았는데 이제는 그냥 기어다니든지 보행기를 타고 내 맘대로 돌아다니든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거든요. 아빠 안경을 만져 보고 싶은데 다른건 다 허락해도 아빠가 그것만은 안주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 안경은 한 번 만져 볼 수 있겠지 했는데 할아버지도 다 주어도 안경만은 안주네요. 왜 안경은 안 줄까

 

아침에 엄마가 전화를 받는데 오후에 할머니가 온다네요. 한잠 자고 일어났는데 정말 할머니가 왔어요. 할머니는 할머니 친구가 산 준 거라며 내 가방을 가져 오셨어요. 그걸 등에 메어 보게 하는데 나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또 할머니가 황둔 찐빵을 가져 왔는데 그걸 한번 만져 보고 싶은데 못 만지게 하네요. 할머니가 차갑다고 만지지 말래요. 내가 눈도 만진 사람인데 그걸 못 만질까? 간신히 한번 만져 봤는데 차갑기는 차가우네요. 냉동인가 봐요.

 

엄마는 엄마 학교인 청주여고에 육아 휴직을 1년 연장하러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았어요. 이번에는 할아버지 안경을 꼭 한번 만져 보려고 마음 먹었어요. 할아버지 셔츠에 있는 지퍼를 만지는 척 하다가 얼른 안경을 잡았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안경을 다시 빼앗았어요. 다른 애들 같았으면 거짓으로라도 울음을 터뜨렸을 텐데 나는 웬만해선 울지 않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딸기도 먹었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딸기를 내게 안주는 거예요. 엄마는 내가 먹고 싶어하면 딸기를 주는데 할머니는 왜 안줄까? 아마 내가 아직 먹지 못하는 줄 아나 봐요. 하도 먹고 싶어 하니까 아주 조그맣게 떼어서 으깨가지고 주네요. 그래도 그걸 맛나게 받아 먹었는데 다시는 안주네요. 아 딸기 먹고 싶다.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가 어디 갔지? 그 때 엄마가 돌아 왔어요. 엄마는 빵을 사가지고 왔는데 내게 우유를 한통 타 주고 치즈도 주고 빵도 먹여 주었어요. 내가 빵을 먹으니 할아버지는 '빵도 먹네' 하면 놀라는 거예요. 그럼 빵을 못먹을까봐. 내가 딸기를 쳐다보니 엄마가 크고 예쁘게 생긴 딸기를 작은 포크로 떼어서 먹여 주었어요. 그 새콤 달콤한 맛이 얼마나 좋은지 딸기 하나를 다 먹었어요. 할머니가 보란듯이.

 

잘 시간이 되어서 막 졸린데 할머니 할아버지랑 놀고 싶어 잠을 참으려니 막 짜증이 나네요. 엄마가 갑자기 텔레비전을 켜 주었어요. 여간해 보여주지 않는 텔레비전을 왜 켤까? 거기에 정신이 빠져 있는데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 버리셨네요. 아마 내가 울까봐 몰래 가셨나 봐요. 어른들은 왜 그런지 몰라. 나는 언제인지 모르게 엄마 다리를 베고 잠에 빠져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