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13. 12. 29. 22:36

2013. 12. 29.

 

할머니 생신이라 신났어요. --262일째

 

<규연이의 일기>

 

오늘은 아침부터 바빴어요. 엄마가 어디를 가려는지 제 옷중에 예쁜 옷을 골랐어요. 그리고는 자꾸 응가를 빨랑하라고 재촉했어요. 나는 원래 누가 집에 오든지 어디를 가려든지 하면 응가가 안나오거든요. 그런 날은 배가 부르고 몸이 무거워요. 그런데도 응가가 안나오네요. 그래서 어찌어찌 점심 때가 다 되었는데 아빠랑 엄마랑 생전 안가본 길을 가는 거예요.

어떤 커다란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갔어요. 집이 깨끗하고 예쁜 누나들이 인사하며 반가워 했어요. 아빠가 안고 방으로 들어 갔는데 거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는거예요.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기억이 잘 안나는 누나도 있었어요.

처음에 낯이 설었지만 할머니는 자주 보았기 때문에 안겼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바로 빼앗아가네요. 그 때 보니까 고모였어요. 나를 이뻐해 주는 고모----- 나는 곧 마음이 편해져서 방긋방긋 웃으며 놀았어요.

 

누나들이 자꾸 무슨 음식을 내오는데 나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아빠가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어요. 그런데 서른 여섯개네요. 할머니 생신이라고 엄마가 말했는데 할머니가 서른 여섯 살인가? 아빠의 소망이겠지요. 그만큼 오래 오래 사시라는 소망, 어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도 손뼉을 쳤어요. 내년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요.

 

나는 음식 냄새 때문에 상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참았어요. 할아버지는 엄마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나를 안아 주었어요. 엄마는 내가 불쌍한지 우유를 주었는데 순식간에 한 병을 다 먹었지요. 어른들 얘기를 들으니 여기가 삿뽀르 일식이라네요. 여러가지 회, 초밥, 튀김, 같은 것들이 아주 고급스러웠어요. 나는 언제 저런 음식을 마음 놓고 먹어보나.

 

점심을 다 먹고 헤어지나 했는데 엄마가 자꾸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를 집으로 가자고 하네요. 

"야 신난다. 오후에는 즐겁게 마음 놓고 놀수 있겠구나."하면서 나는 눈치만 보았어요. 사실 엄마랑 단 둘이 있으면 너무 심심해요. 그래서 문화센터에 가는 날이나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이 좋아요. 아빠랑 엄마랑 외출을 하는 날은 더 좋고요. 이모랑 정민이 누나랑 오는 날은 신나는 날이지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는 날은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지만 나를 재미있게 해 줄줄은 몰라요.

 

할머니랑 고모는 할아버지 차를 타고 나랑 엄마는 아빠가 운전하는 엄마 차를 타고 집으로 왔어요. 집에 와서 어른들은 엄마가 내린 커피를 마셨어요. 할아버지는 엄마가 내린 우너두 커피를 아주 좋아하지요. "맛있다. 맛있다."하면서요.

 

나는 여러가지 장난감을 자랑하듯이 가지고 놀았어요. 고모가 미국에 다녀 왔다는데 내 옷을 어려벌, 엄마옷, 아빠옷을 사왔어요. 엄마가 모자를 씌워 줬는데 어른들은 예쁘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벗고 싶었어요. 밖에 나갈 때나 쓰는 거지 어른들 보기 좋으라고 쓰는 건 아니잖아요.

 

저녁을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갈 때 또 섭섭해서 울었어요. 아빠가 밖으로 나가서 아빠도 가는 지 알고 더 크게 울었는데 아빠가 곧 들어 와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울음을 그쳤어요.

 

하루종일 응가를 못해서 배가 거북하고 괴로운데 고모가 있어서 할 수가 없네요. 그런데 아빠는 자꾸 '응가를 언제 할래 규연아'하고 다그치니 낸들 어찌하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간 다음 엄마가 바지를 벗겨 주었는데 '때는 이 때다.'하고 마구 힘을 주었더니 응가가 막 나왔어요. 그런데 거실 바닥에 여기 저기 마구 쏟아지네요. 아빠 엄마는 난리가 났어요. 나는 바지도 벗었겠다 마구 밟고 돌아다녔지요. 어른들은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나는 내 똥을 밟아대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요. '귀여운 내 응가' 엄마가 나를 붙잡고 아빠가 바닥을 거의 닦았을 때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더니 기다란 응가가 쭉 빠져 나왔어요. 아빠 엄마는 '아이고 냄새'하면서도 재미 있다는 듯이 마구 웃어댔어요. 전에 모유만 먹을 때는 냄새가 안났는데 요즘 맛난 것을 엄마가 만들어 주고부터 냄새가 고약하네요. 그래도 나는 그게 귀엽고 좋아서 마구 밟아대면 기분이 좋아요.

 

속이 후련하네요. 아주 시원해요. 거기다가 따뜻한 물에서 놀면서 목욕하고 우유 한통을 먹고 나니 기분 좋게 잠이 오네요. 

재미있는 하루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