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무작정 떠난 여행 -2. 철원 노동당사에서

느림보 이방주 2013. 8. 4. 17:40

2013. 7. 30.

 

 

노동당사는 총탄을 맞아

 

도피안사에서 차를 북으로 돌렸다. 구철원 시가지를 찾아간다. 시가지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시가지였던 자리는 모두 농지로 변해 있고 허물어진 노동당사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 노동당사는 사진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앙상한 뼈대가 되어 창을 통하여 하늘이 보인다. 처음 지을 당시 얼마나 단단하게 지었는지 전쟁 후 수많은 세월을 풍우에 시달리면서도 남은 골격이 뚜렷하다.

 

건물 뒤로는 야산을 등에 지고 앞으로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들판은 당시에는 시가지였을 것이다. 들판을 건너 나즈막한 산은 잡목이 울창하다. 왼쪽으로는 신철원으로 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어디론지 북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당사 바로 북쪽에서 초소가 있고 드나드는 차를 검문하는 것 같다. 거기부터 바로 민간인 통제 구역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더 갈 수 없는 땅, 전쟁 전만 해도 북의 영역이었던 곳이다. 하늘도 역사를 아는지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극의 역사 현장이다. 주차장이 넓고 마당도 넓다. 마당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역사 안보 학습을 떠나왔나 보다. 마당에서 비를 맞으며 간단히 듣는 이야기로 역사를 알까? 여기가 어디이고 이것이 무엇이고 이곳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없다.

 

아내와 함께 나무 계단을 밟고 뜰로 올라갔다. 주변에 정원을 잘 조성해 놓았다. 비정한 건물에 약간의 따뜻한 인정을 얹어 주는 느낌이다. 뜰에서 다시 건물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을 바라 보았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거리로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자전거도 우마차도 자동차도 지나간다. 강아지도 쫄레쫄레 사람들을 따라 다닌다. 싸전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다. 아마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냈을 것이다.

 

건물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얼마나 단단하게 지어졌는지 벽만 남은 건물이 이렇게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었을까. 벽에는 여기 저기 탄알 자국이 남아 있다. 이 당사를 점령하기 위해서 피아간의 전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의 자국이다. 여기에 총을 겨누는 사람들은 다만 적을 겨눈다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이 안에 사람이 있고, 그가 우리 동포이고, 내 형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탄알 자국을 하나 하나 손으로 만져 보았다. 손가락을 넣어 보기도 했다. 전쟁은 영화로밖에 경험하지 못한 내 머리가 바보 같이 하얗다.

 

이념은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누게 한다. 이념은 부모의 가슴에 총을 겨누도록 명령한다. 그러나 저기 저 앞에서 여기를 표적으로 총을 겨누던 사람이나 여기 이 건물에서 저기 저쪽으로 총을 겨누던 그 사람에게 무슨 이념이 있었겠는가. 그냥 다만 명령에 의해서 자신이 처한 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누가 죽는지 누구 가슴에서 피가 솟을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건물 뒤뜰로 돌아가 보았다. 한적하다. 뒤안의 꽃이 피었다. 이 건물에서 일하던 어느 처녀 총각이 수줍은 대화를 나누던 오솔길이 있다. 총소리에 뒷산으로 도망가던 등성이가 있다. 아니면 등성이에서 여기를 공격했을 지도 모른다. 무너진 창문으로 내부가 들여다 보인다. 어떤 음모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아내가 부른다. 그래 여기를 떠나자. 눈물은 여기서 끝내자. 눈물의 역사도 여기서 끝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당에서 보이는 북쪽의 언덕을 다시 돌아 보았다. 하늘이 차가워 보인다. 서쪽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 온다. 탑차 한대가 검문 초소를 지나 북쪽 언덕 아래 서쪽으로 난 길로 스르르 사라진다. 비가 마구 쏟아진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총알이 되어 온몸을 마구 박힌다. 바삐 걸어 차에 올랐다. 목이 마르다.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전면에서 본 철원노동당사

노동당사의 뒤뜰

북으로 가는 길- 그러나 더 갈 수 없다

노동당사 앞에 있는 지표기준 빗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