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괴산 백두대간 대야산

느림보 이방주 2012. 11. 4. 14:56

2012년 11월 3일 토요일,

 

대야산(930m)

벌바위 마을 주차장(10:00)-용추계곡-월영대-피아골-정상(12:20)-점심(13:10)-밀재-월영대- 주차장(15:10) 

 

날씨 좋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춥다고 그렇게 떠들더니 춥지도 않다. 며칠 전부터 대야산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정말 몇 해만인가? 한 10년 전 쯤에는 대야산이 좋아서 계절마다 두번 정도는 갔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산행길은 삼송리 농바위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농바위 마을 느티나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어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거의 1시간을 걸으면 밀재에 도착했었다. 가는 동안에는 솔향이 좋고 철마다 가지가지 들꽃이 피었다. 쉼터도 있어 얼마든지 쉴 수 있다. 때로는 중간에 중대봉으로 올라가 한 20m쯤 줄을 타기도 했었다.

 

백두대간 대야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정상을 뒤돌아 보니

 

오늘은 벌바위 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작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 났다. 용추폭포를 지나면서 갑자기 드라마 <태조 왕건>에 궁예로 출연했던 배우 김영철의 연기를 생각해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궁예가 이곳에서 죽은 줄로 안다. 심지어 김영철이 이곳에서 실제로 죽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은 그 박진감에 있다. 모든 예술이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그 현실이란 것은 바탕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동의 메시지가 전달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문학이 대중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동을 주기 위한 요건은 박진감이다. 그럴듯해야 하는 것이다. 현장감이다. 궁예가 만약에 이런 멋진 곳에서 부하의 손에 죽었다면 그는 정치 지도자를 넘어서 행운아이다.

 

산은 좋아하는 사람이 다니는 곳이다. 아내가 테니스를 미치게 좋아하지만 내가 함께 좋아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신체적 조건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운동에 대한 혐오감도 아니다. 다만 나는 그것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꾸 산에 가지고 한다면 그건 고문이다. 내게 테니스를 왜 안 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문학을 하자고 반문하고 싶다. 좋아야 하는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남을 생각하면 안된다. 나는 나이고 남은 남이다. 계곡에서 물을 즐기며 노는 이들이 있다. 왜 산에 가지않고 계곡에 머물까? 하는 의문만큼 바보스러운 것은 없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바위 사이에 자란 소나무의 멋스러움을 바라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자연은 이렇게 멋있다. 아름답다. 나도 자연의 일부이다. 내가 내품는 숨을 소나무가 마신다. 그 대신 소나무의 날숨을 나는 들이쉬고 생명을 유지하고 신체를 깨끗이 한다. 내가 피아골에 오줌을 갈기면 나무가 받아 먹는다. 나무가 가물 때 그걸 내뱉으면 계수가 된다. 우리는 계수를 먹고 산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와 모든걸 주고받으며 순환한다.

 

용추폭포로 올라가는 계곡의 자연

 

용추폭포- 생김새가 민망해서 사진을 옆에서 찍었다.

 

피아골 갈림길에서 망설임없이 피아골로 접어 들었다. 이 길은 밀재로 가는 길보다 험해서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다. 몇 해 전 눈이 푹 쌓인 날 이곳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려는 철부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눈이 쌓여 바윗돌은 보이지 않았지만 부인들까지 대동하고 간 철부지 산행이었다. 내가 자일을 가지고 갔기에 큰 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정상 바로 밑에서 올라가지 못하고 되돌아 오기를 정말 잘한 일이었다. 두 명 이상이 등산할 때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뚜렷이 정해놓지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라도 지도자를 정해서 그를 따라야 한다. 물론 등산에 조금이라도 다경험자가 지도자를 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대형 사고를 각오해야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등산에서 천천히 걷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은 최근에 깨달았다. 사고의 위험성도 덜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무릎도 덜 아프고, 결국 다른 사람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피아골로 가는 사람은 없었다. 길이 더 험해질 무렵 한 부부 등산객을 만났는데 이 길이 밀재로 올라가는 길인 걸로 착각하고 걷고 있었다. 내가 앞에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남자는 자신의 등산 실력을 과시하는 성격이었다. 산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모습이다. 자신은 전문 등산가로 자랑하지만 등산을 많이 한 사람은 결국 산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어떤 산에서이건 전문 산악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풍은 이미 끝났다. 그러나 아직 낙엽이 지지 않아서 그 화려했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마음 속에 그날을 생각하며 걸으니 단풍을 보는 듯하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존재는 우리 마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감각적 체험은 그냥 감각으로 남을 뿐이다. 그의 존재는 내 마음 속에서 재구성 되는 것이다. 김춘수의 시 중에서 <꽃>이라는 시가 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대상이 되는 존재의 인식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정서를 배제하고 인식에 중심을 둔 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시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여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가 더 유명해졌다. 시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그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아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인식의 주체가 나를 보아주기 나름이다. '그것은 오해야'하고 소리를 질러 본들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메마른 단풍이라도 나는 화려한 모습으로 본다. 바위 위에서 무리지어 물들어간 단풍의 조화가 아름답지 않은가?

 

물들이기를 끝내고 시들어가는 메마른 단풍잎들

 

안산에서 왔다는 손님은 자꾸 정상이 어디냐고 묻는다. 솔직히 어떤 바위가 정상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 기억나지 않는 것을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묻고 또 묻는다. 그 조급함이 나까지 조급하게 만든다. 내가 줄을 잡고 바위를 오르고 있는데 조급한 부부는 아래에서 그 줄을 잡고 올라온다. 등산에 기본을 모른다. 무인지경 피아골에서 만난 전문 등산객은 영 손발이 안맞는다. 앞지르자. 앞질러 가자. 군데군데 눈이 있다.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소나무가 멋있다. 정상에는 사람들이 있다. 등산객이 많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밝다.

 

바로 정상이다. 정상은 아주 따뜻하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정상석 뒤에 서서 장엄한 백두대간의 용틀임을 바라보았다. 감격스럽다. 930m  봉우리에 이르러서도 눈물이 나게 감격할 만큼 대야산은 명산이다. 속리산으로부터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모습이 다 보인다. 멀리 월악영봉도 가물가물 보인다. 속리산에서 뻗어내리는 한남금북정맥도 서쪽 어디쯤 보인다. 하늘이 맑은 덕이다. 하늘은 깨끗하다. 주변에 내가 올라갔던 산들을 꼽아 보았다. 속리산(천왕봉 문장대 상학봉, 묘봉), 구병산. 조항산, 백악산, 금단산, 가령산, 낙영산, 조봉산, 도명산 바로 앞에 장성봉, 막장봉, 칠보산,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이만봉, 백화산, 조령산, 신선암봉, 신선봉, 남군자산, 군자산-------------. 이 산들이 다 보인다. 아 백두대간 대야산이 나를 용납한 것이다.  나는 산의 나무 한 그루, 돌 하나 모든 부분들에게 감사했다.

 

점심을 먹었다. 나는 귤 다섯 개, 방울토마토, 빵 세 개, 고구마 2 개를 가져 갔다. 피아골에서 만난 손님이 점심을 가져오지 않아 고구마 한 개와 빵 한 개를 나누어 주었다. 그밖에 청주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가 김밥을 한 줄 나누어 주어 그 분들도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분들에게 커피 한 잔을 신세졌다. 흡족하지는 않았지만 점심은 충분히 되었다. 과일은 모두 넘치게 가져 와서 내놓지 않았다. 아내가 싸준 따뜻한 물이 좋았다. 바람 불고 싸늘할 것 같지만 산에는 훈훈함이 있다. 이런 인정이 있어 산은 따뜻하다.

 

중대봉

밀재로 내려가는 등마루와 백두대간의 용틀임

 

내려오는 길은 처음 계획대로 밀재를 경유하기로 했다. 등산로가 많이 변경되어 있어 당황했다. 옛날에는 칼바위로 이루어진 등마루를 걸었는데 지금은 바위 아래로 우회로가 나 있다.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산이 많이 훼손되는 것 같았다. 밀재로 가기 전에 용추계곡으로 바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 길로 내려간다. 나도 따라 내려왔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빠른 지름길도 아니었다. 공연히 산에 길만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후회했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월영대 갈림길까지 내려와서 하늘을 보았다. 아직도 파랗다. 파란 하늘을 향하여 뻗어올라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기운차다. 계곡에는 아직도 물소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는 사람, 이제 손을 잡고 올라오는 연인들,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늘과 나무들

 

이들은 오늘 서천에 간 모양이다. 신성리 갈대밭에는 아직 갈대꽃이 좋으리라. 전화 통화를 했다. 함께 여행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주차장에 오니 아침에 세워둔 차가 나를 기다린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에 땀을 씻고 머리를 다시 빗고 땀을 말린 다음 남은 과일을 먹었다. 피곤하지 않다. 무릎도 온전하다. 땀도 적절히 흘렸다.  기분 좋다. 아주 좋다. 여기서 청주까지는 가는 길이 멀지만 주변이 다 절경이다. 운전만 조심하면 된다.

 

(2012.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