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옥천 등주봉(둔주봉)

느림보 이방주 2012. 5. 22. 06:08

옥천군 둔주봉

 

1. 2012년 5월 2일 11시 40분-3시 50분

2.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등주봉(登舟峰, 383m)

3. 안남면 사무소-안남초등학교-점촌고개-둔주봉 정자(일명 한반도지형 조망정자)-둔주봉(383)-고성-독락정- 안남면 사무소 주차장

 

       둔주봉 주변 지도

 

화학산성에서 흡족한 답사를 하지 못한 것을 달래기 위해 오랫동안 벼르던 둔주봉 등산을 하기로 했다. 둔주봉은 대청호 둘레길 6구간에으로 지정받을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내비게이션에  안남면 사무소를 입력하고 달리니 바로 면사무소 앞 너른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벌써 버스 두세대 정도의 등산객들이 둘레길을 따라 걷고 있었고 나처럼 온자 나서는 이들도 있다. 주변 느티나무 아래에는 마을 사람인지 등산객인지 모를 사람들이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다.

 

지도에서 안내하는 대로 안남초등학교 담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둔주봉 등산로 안내판이 나온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다리를 팍팍하게 했다. 주변 밭은 모두 황토이고 밭둑에는 옥천의 명물인 옻나무가 흔하다. 옥천사람들이 부지런한지 농지가 모두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둔주봉으로 집작되는 산봉우리가 오뚝하다. 이 마을은 안남초등학교가 있고 들이 기름져 보였다. 강을 끼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고 돌아옴의 멋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초임지로 이곳에 왔다면 뭔가 재미있는 사건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화학산성 아래 밭둑에 세워늫은 그랜저

                    안남초등학교

                  정자 옆에도 옻나무

                  깨끗하게 정리된 경작지

 

시멘트 포장도로는 점촌고개 쪽으로 넘어가고 둔주봉 정자로 오르는 오솔길이 나왔다. 사람들이 여기까지 차를 타고 와서 주변 도로에 주차하고 정자로 올라갔는지 길가에 차들이 즐비하다. 이미 산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왁자하다. 처음 오르막길이 다소 숨가쁘게 했으나 힘든길은 아니었다. 더구나 산이 모두 황토라 붉은색이 힘을 솟아나게 하는 것 같았다. 경사가 급하지 않고 길이 좋아서 걷는데 기분이 좋다. 그간에 났던 땀이 다 스며드는 기분이다. 이 즈음에 산악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한 패거리 몰려 자전거를 타고 올라 간다. 부럽다. 그 건강과 도전정신과 패기, 그리고 젊음이 부러웠다.

 

둔주봉 정자는 그리 멀지 않았다. 시계가 탁 트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오래 머물 수도 없고 정자 안은 제일 먼저 올라온 팀인지 아주 상을 펴고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곳은 혼자서 몇 시간이고 차지하고 앉아 있으라는 곳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들을 원망할 정신적인 여유는 없다. 한번도지형은 과연 한반도 지형이었다. 이 풍광 때문에 안남에 사람이 모여든다. 섭섭한 것은 옥천에 수많은 산성 (약 47개라고 한다)은 그 역사성으로 봐도 의미있는 여행이 될 텐데 진입로도 안애판도 이정표도 없다. 옥천에서 왜 이정표나 안내판조차도 만들어 놓지 않는지 모른다. 전쟁의 중심지였던 고장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까?

 

산야는 볼수록 아름답다. 녹음이 아름답고 물이 아름답다. 거기 서있는 사람이 아름답고 젊은이들의 울퉁불퉁한 근육이 아름답다. 정자에서 조금 쉬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시 내려가는데 나는 둔주봉 정상으로 향했다.

 

                    둔주봉으로 향하는 길에 자전거 타는 아가씨의 멋진 모습

                  전망좋은 정자에서 보이는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자전거 타던 아가씨가 찍어준 사진

 

둔주봉 정상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부부가 함께 온 두어 팀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세워놓고 정상 기념 사진 촬영을 하려고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포기했다. 나도 점심을 먹어야 한다. 혼자 산에 다니면서 가장 난처한 것은 점심을 먹는 것이다. 그래도 먹어야 한다.  준비해 온 빵을 배낭에서 꺼내 놓았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녹음이 아름답다. 정상을 반환점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이곳에서 피실로 내려가는 길, 고성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정자 부근에서 독락정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다. 피실로 내려가면 약 두 시간 정도를 더 걸으면 되는데 강변을 걸을 수 있어 풍광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 한반도 지형 끄트머리인 고성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이 좋다.한동안 내리막길 경사가 급하더니 아주 완만하다. 길이완만하다는 것은 그만큼 멀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나무와 우거진 활엽수림 사이로 언뜻언뜻 백사장과 강변이 보인다. 나무향과 새소리가 세상을 아주 잊어버리게 한다.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걷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소나무는 곧은 것이 없다. 그만큼 자유롭게 햇볕을 충분히 받으며 자랐다는 증거이다. 이쪽 길로 내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호젓하다. 그 고요함이 지루해질 무렵 갑자기 경사면이 급해지더니 바로 산줄기 끝이다. 누군가 살던 인가가 있던 터인지 대나무숲이 보였다. 대나무 숲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오니 바로 강가이다. 수렛길이다. 수렛길에서 바라보이는 산줄기는 하늘과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둔주봉 정상에는 등주봉이란 정상석이 있었다.

                  자연 그대로 아름다운 소나무

 

나는 저녁해가 서산에 기울어진 강가를 걷기 시작했다. 강물은 저녁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다이아몬드로 모래사장을 만들어 놓으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산과 강과 수렛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핸드폰으로 촬영하여 서울에 있는 딸에게 보냈다. 찌든 서울에서 눈으로라도 이 맑은 공기 맛을 보게 하고 싶었다. 쉬는 날이라 백화점에 가 있다고 한다. 오래비 결혼식에 입을 옷을 사는 중이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딸인데 아무거나 입어도 다 예쁠 것이다. 아카시 그늘에서 쉬다가 일어나 낚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걸었다. 비교적 먼 거리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굽이를 돌 때마다 보이는 곳이 절경이다. 

                   산과 강 그리고 수렛길

                  산그림이 담긴 강

 

안남면 소재지가 가까운 곳에 독락정이 있다. 독락정에서는 굽아돌아가는 물줄기를 다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다락에 올라 앉아 바라보면 멀리서 물이 들어오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고 돌아 나가는 물은 곁눈질을 쳐야 보일 것 같았다. 뒤로는 둔주봉이 있고 앞으로는 마치 정자로 치고 들어올 것 같은 강물이 있다. 만수가 되면 이곳은 호수가 되리라.

 

<독락정>

독락정은 조선 선조 40년(1607) 절충 장군 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이 세운 정자이다.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선비들이 모여 지내던 정자의 구실을 하다가, 후대에 와서는 유생들의 학문 연구 장소로 이용되었다. 영조 48년(1772)에 고쳐 지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건물 규모는 앞면 2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정면에는 당시 군수였던 심후의 ‘독락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마루에는 송근수의 율시기문을 비롯하여 10여점의 기문액자가 걸려 있다.

                   독락정

 

독락정을 돌아 연주리로 들어가는 길은 아스팔트 포장 도로이다. 발이 팍팍하다. 길에서 바라보이는 들이 싱그럽다. 멀리까지 보이는 들이 모두 보리밭이다. 연두색으로 막 익어가는 보리밭에서 보리 이삭이 꿈틀대는 것 같다.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세워 놓고 정자나무 아래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저녁 노을에 비친 보리 밭을 촬영할 모양이다. 나도 아주 작은 카메라로 몇 장 찍었지만 쓸만한 사진이 없다.

사실 보리는 그 밥이 그렇게 감동할 맛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추억밖에 없다. 보리 베는 일도 또한 지겨운 추억 중에 하나다. 그러나 보리가 익어가는 냄새는 우리를 들뜨게 했다. 지겨웠던 봄햇살 속의 배고픔에서 해방시켜 주는 냄새였다. 보리밭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이르렀다.

보리밭과 사진 예술가들의 카메라

 

차는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뜨겁다. 문을 열고 먼지를 턴 다음 회인 피반령을 넘어 돌아왔다. 땀이 온몸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