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일기 48 - 야리는 것이 아니예요
2011년 2월 15일
람자의 눈빛은 야리는 게 아니예요.
그것은 존경과 사랑의 눈빛이예요.
종업식 하는 날인데 람자가 아침 일찍 연구실로 찾아왔다. 아주 자신있게 종이 가방을 하나 내민다. 여학생들은 선생에게 선물을 가져오면서도 쭈뼛쭈뼛하게 마련이다. 다른 친구가 볼까봐, 선생이 어찌 생각할까 이런 것들이 걱정스럽고 자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람자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친구가 봐도 괜찮고 어떤 선생님이 봐도 좋고 어떤 선물이라도 愚子가 반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보였다.
"선생님, 이거요 엄마 아빠가 일년간 많이 감사했다고 작지만 가져다 드리랬어요."
"그래? 네 놈이 사 내놓으라고 뗑깡이라도 부렸나?"
"아니예요. 그냥 집에 갔는데 엄마가 이미 사다 놓으셨던데요?"
"그래?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라."
뭔가 묵직했다. 제과점 빵은 아닌 듯했다. 그러면 술일까? 화장품일까? 그러나 람자 앞에서 뜯어보지 않았다. 뭐든 마음의 선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학부모든 아이들이든 愚子에게 선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도 愚子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 알 것이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매우 명쾌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수업 시간에 책상 위에 하나 가득 머리를 풀어 헤치고 자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愚子의 수업에 자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짝꿍까지 야단 맞는다. 친구가 자는데 깨워주지 않고 저 혼자 좋은 데로 가겠다는 비인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깨워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친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생명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듯이 아이들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죽비로 어깨를 툭 쳤다. "차작" 소리가 경쾌하다.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쳤다. 일어난다. 그런데 이 녀석이 눈을 치뜨고 나를 쳐다 본다. 작살을 내버릴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나 이른 학기 초이다.
"아가 깨워주면 감사해야지 나를 야리냐?"
아이들 용어로 한 번 물어 보았다.
"야녜요. 야리는 것 아녜요."
아, 그럴 수도 있다. 이 녀석은 미안해서 바라보는데 내가 째려보는 것으로 오해한 것일 수 있다. 아이들은 째려보지 않는데 선생이 째려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눈이 꼭 강감찬 장군의 날카로운 눈처럼 생겼다. 그냥 봐도 위를 쳐다 보는 눈이다.
"람자야, 선생님을 존경해야 공부가 잘 된다. 존경하는 눈으로 나를 다시 바라 보아라."
그런데 이 녀석이 한 술 더 떠서 아주 노려본다.
"그게 존경하는 눈빛이냐? 다시 해 봐."
다시 바라본다. 눈 빛이 옅어졌다. 바보 같다. 흐리멍덩하다.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도 그 눈빛은 아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상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눈에 사랑이 괴기 마련이다. 처음 대하는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해 손해 보는 경우도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아가 람자야, 틈나는 대로 거울 보며 연습해라. 예쁘고 순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라. 마음 속에 상대에 대한 사랑을 가득 품고 상대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라. 너의 진심이 너의 마음의 창으로 내비치도록 말이야. 네겐 공부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다."
성적을 오르지 않고 공부는 해야겠고 예뻐해 주는 선생도 없으니 람자는 매사가 부정이었을 것이다. 愚子는 교실에 갈 때마다 람자 어깨를 쳐 주었다. 교사의 의도적인 행동이 사랑을 부를 수 있다. 아가들에 대한 의식적인 사랑이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장난도 하고 농담도 하고 공부에 대해서도 상의하고, 집에서 공부해 보도록 허락도 해보고 ----. 내 하찮은 고민을 털어 놓으며 상의도 해보고---. 일단 마음이 통해야 한다. 마음의 담을 허물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람자의 눈빛은 여고생 눈빛으로 변했다. 람자는 본래 착한 아이었다. 이웃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주체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세상을 밝게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눈빛은 달라진다. 청순한 여고생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하루가 행복하다. 그 행복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되돌아 온다.
람자는 학급 일에 적극적이다. 학교 행사에 학급 단위로 참가해야 할 경우 행동으로 옮기는 친구이다. 체육대회, 축제, 수능날 선배 응원 등 빠지는 곳이 없다. 방황하는 친구를 학교로 불러오는 일까지 해냈다. 이웃과 모두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다. 아가들은 받은 사랑이 씨가 되어 더 큰 사랑을 잉태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큰애기들을 끊임없이 사랑해야 한다.
람자는 성적도 많이 올랐다. 3월에 비해 11월 모의고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 3학년에서 가속이 붙으면 더 오를 것이다. 사랑받은 아이들은 알아서 공부를 한다. 미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주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주변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알게 된것이다. 곧 존재감의 회복이다.
언젠가부터 愚子옆에 오면 팔짱을 낀다. 상담할 때도 제 손을 愚子의 팔에 걸고 복도에서 만나도 쫓아와 일단 팔부터 건다. 때로 손을 잡는다. 때로 연구실에 찾아와 의자에 앉아있는 내 어깨를 감싸 안는다. 안마를 한다. 愚子가 먼저 제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면 더 좋아한다. 다 큰 아가를 가슴으로 안아줘도 된다. 愚子가 학교를 떠난다면 이 녀석은 혼자 숨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도 이 녀석이 많이 보고 싶을 것이다.
람자의 선물은 남성용 화장품이었다. 향이 가득하다. 람자의 눈빛에서 나오는 행복한 향기 같았다. 愚子는 이 학교를 떠나게 되겠지만, 람자가 모든 선생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믿음이 사위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