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꽃밭 일기

꽃밭일기 42 -오늘은 나 내일은 너

느림보 이방주 2010. 12. 28. 20:14

2010년 12월 24일

 

 

오늘은 나, 내일은 너

 

2010년 12월 24일 

 

몸시 춥다. 방학하는 날이라 아가들이 모두 들떠 있다. 겨우 열흘밖에 안되는 방학이지만 말이다. 이 아가들에게 그게 어딘가? 하늘은 겨울을 잊었는지 시리도록 찬란하다. 몇 장 떠 있는 구름이 더 뽀얗게 보인다.

1교시 수업을 가다가 김선욱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났다. 목례를 보내는 커다란 체구가 평소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선생님, 신보섭 선생님께서 방금 전 아홉시에 운명하셨답니다."

"아 그래요?"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가 본다는 것이 이제 영 늦었구나.

 

지난해 12월 함께 상당산성에 오르던 일이 생각난다. 거의 열 살이나 아래인 그가 힘겨워하는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했다. 전임교에서 3부장을 했다고 들었다. 그 전에도 계속 고 3담임을 했다 들었다. 그때 나도 그랬었으니까. 삼십대에 조항산을 오르면서 그렇게 힘겨웠던 일을 생각하면 그 분이 힘겨워 하는 것은 그냥 단순한 일이다. 열심히 운동하면 바로 회복될 수 있다.

慍과 愚子가 한담을 나누며 올라가는 뒤에 힘겹게 따라 올랐다. 너무 힘겨워 보여서 정자를 하나 만나 잠시 쉬었다.

"형님들 이렇게 가파른 길을 쉬지도 않고, 계속 얘기를 나누면서 걸을 수 있는 건 무슨 비결입니까?"

"인제 운동을 조금씩 해요. 고3 담임, 그거 내 몸 삭히는 거야. 살살해요. 선생님 건강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냥 또 걸었다. 며칠 후 그 분은 폐암 말기로 밝혀졌다. 

그 분이 아이들에게 어떤 분인가는 다 안다. 한 마디로 마음이 제자리에 있는 그런 분이다. 그래서 애태우다 암이 된 것이다.

 

나는 아가들을 일어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아가들은 스승이 하는 대로 그냥 일어선다.

"신보섭 선생님께서 방금 전에 운명하셨답니다.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선생님을 아는 사람들은 선생님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겠어요. 자 다같이 묵념"

아가들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1학년 때 담임이었던 아가들이 다섯 명 쯤 되었다.

 

愚子도 40대 중반까지 한 10년 쯤 3학년 진학지도를 했다. 그래도 피곤한 줄은 몰랐다. 마지막으로 3부장을 했을 때, 10월쯤 '아,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이 이상해졌다. 비틀거리고 졸리고 뒷골이 무겁고 미간이 밍밍하고----. 그래도 단 한 번 뿐이었기에 나는 건재한다.

 

그 당시 청주에서 내 또래의 고 3 담임 한 명이 학교에서 쓰러졌다. 2008년 가까운 어느 학교에서 40대 고3 담임인 백선생님이란 분이 11시 퇴근해서 집에서 쓰러져 바로 세상의 강은 건넜다. 그때 그 분의 딸이 우리 학교에 있었다. 딸만 애처롭게 남았다. 그 때도 나는 내가 죽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아주 쉽게 말한다.

"병신 제 몸을 돌보지 않고 그렇게 미련하게 죽을 때까지 애들을 가르친단 말여."

"병신 혼자서 나라 지켜?'

"잘난 체 하기는"

"저 아니면 아가들이 대학 못 가?"

고 3 담임 안해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관리자가 되면 미련하게 사람을 부린다. 다른 학교에서 진학지도 실적이 있던 선생이 전근해 오면 고3을 또 맡긴다. 능력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런 관리자들이 사람을 잡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실적을 쌓고자 하는 것이다.

 

나도 3부장을 하고 시골에 가서 고3 담임을 또 했다. 그 때 나는 꾀를 부렸다. 살아야겠기에 ---- 그후로는 보직을 계속 맡았기에 젊은 나이에도 고3 담임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생각해 보면 내가 죽은 것이다. 나 대신 죽은 것이다.

 

저녁에 빈소에 갔다. 아가들이 많이 왔다. 모두 교복을 단정하게 입었다. 기특하다. 하긴 고인이 교복을 참 좋아했다. 아가들이 그걸 알았을 것이다. 아가들이 또 울었다. 신선생은 당신이 서 있을 제자리에 서 있었기에 아가들 가슴에 자신을 심어 놓았나 보다.

남은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친다. 덕분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서로 반갑다.

 

 

12월 26일

 

아침에 눈발이 날렸다.

영안실에 가 보았다. 발인제를 지내고 있었다. 참석해서 재배를 했다. 가덕면에 있는 성요셉공원으로 갔다. 기도를 마치고 영결미사를 드리고 그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내려갔다. 산 중턱에 성모 마리아의 하얀 옷자락이 세상을 품고 있었다.

 

하관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는 푸른 하늘인데도 눈발이 몇 송이가 햇살에 반짝인다.

모롱이를 돌자 커다란 입간판이 보인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그렇다. 삶과 죽음의 세계는 다른게 아니다. 거기가 거기이다. 바로 저기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저기이다. 바로 저기야.

 

모시고 갔던 두 분을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