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일기 40 - 비료 주기
2010년 12월 13일
비료주기
- 아버지, 꽃밭에 비료를 더 주어야겠는데요.
-그만 둬라. 너무 걸면 꽃은 안 피고 대궁만 실하다 만다. 저기 여원이네 꽃밭 봐라. 시들시들 하잖냐?
- 여원네 꽃밭요? 비료만 잔뜩 주고 가꾸질 않아서 그래요. 게다가 거긴 꽃들이 못돼먹어서 비료를 안 빨아 먹어요. 그 애들은 비료가 왜 좋은지를 몰라요. 그래 그래요. 어버지! 저 아랫마을 총복이네 꽃밭 좀 봐요. 실하잖아요? 꽃도 거의 우리 꽃밭만큼 피었어요.
-그래도 우리 꽃들만은 못햐. 두고 봐라 우리 꽃들이 꽃대는 야들야들해도 꽃은 실할테니까.
-아버지, 꽃대까지 실해지면 꽃도 실해지지 웬 말씀을 그리 하신대요? 언젠가는 총복이네 꽃밭이 우리 꽃들을 앞지를 것 같아 걱정이에요.
-호호호 그래도 네 놈이 잘 가꾸어서 괜찮다. 네가 피곤할까봐 그렇지. 너무 애쓰지 말아라.
(이놈! 비료 장사한테 돈 먹었냐? 안 된다는데 왜 자꾸 보채냐? 보채기를. 맘은 딴 데 가 있으면서.)
-아버지, 왜 그렇게 자식 진심을 모르신대요? 아버지는 왜 꽃밭 가꾸는 자식의 진심을 모르시나요?
(혹시 아버지가 맘이 딴 데 있는건 아닐까? 저 웃음 소리 좀 봐.)
-아냐 네가 열심히 가꾸어서 다 잘 될 거야. 호홍 호홍호호 홍홍홍---. 비료를 많이 주면 꽃들이 그 비료를 다 받아 먹지 못한다는 걸 왜 몰라. 금비는 안주는게 좋아 퇴비만 주면 돼. 금비는 꽃들에게 해로워.
(웃기는 놈, 네 놈 속셈을 내 모를 줄 아냐? 네 놈이 비료값에서 얼마나 삥땅을 칠려고 하는지 내 모를 줄 아냐?)
-아버지, 아버지는 왜 모든 걸 아버지 맘대로 정하신대요? 퇴비를 제대로 주고 금비를 적절하게 섞어 주면 효과가 빠른 걸 왜 모르신대요?
(아버지 진심이 뭐여? 도대체 꽃을 아능겨? 뭘 모르능겨?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아들아, 아버지에게도 그만한 권한은 있는거란다. 호홍 호홍호호 홍홍홍---.
-아버지, 우리 꽃밭에는 꽃들이 총명하고 착해서 주면 주는 대로 받아 먹고 색깔 고운 꽃을 피운다는 걸 왜 모르시나요? 다른 꽃밭에는 꽃밭지기들이 비료 주기가 싫어서 아버지가 사정사정 한다는데 우리 아버지는 저 모양이니
(아! 꽃들이 불쌍하다. 빨강색 백일홍에는 빨강 비료를, 자주색 과꽃에는 자주 비료를, 하양색 봉숭아꽃에는 하양 비료를 주면 얼마나 좋을까? 대궁도 실하고 이파리도 무성하고 꽃은 제 색깔로 아름답게 피어날 텐데)
-아버지, 머슴을 하나 새로 둬야겠는데요.
-그래 적당한 아이가 있느냐?
-예, 저 것대산 너머에 괜찮은 친구가 있어요. 총복이란 놈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잘못하면 뺏길 것 같아요. 어쩔까요?
-그래 너 같이 똑똑한 아이가 얼마나 잘 골랐겠냐? 너희들이 생각해서 데려 와라.
(자식, 제 말만 잘 듣는 놈을 데려오려고 술수를 쓰는군. 나도 내 사람이 있다 이놈아.)
-아버지, 너무 쉽게 허락하시네요
(웬일이야. 이거 내가 아버지한테 또 속는 건 아닌가?)
-어머님, 애비 말을 들으면 아버님이 꽃밭에 비료를 못 주게 한대요.
-아가, 네 남편은 왜 아버지 말씀을 어기려고 한다냐?
-어머님, 제 생각에도 우리 꽃밭은 비료를 주면 주는 대로 꽃이 예쁘게 필 것만 같은데요. 퇴비는 퇴비대로 금비는 금비대로---
-호호홍 그러니? 그만한 판단은 네 아버님도 하신단다. 호호홍 호호홍---
(이년이 어디 시에미한테 말대꾸여. 부모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어머님,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여야 하는데요.
-이유식? 뭘 먹이려고?
-흰 쌀에 잣을 갈아 넣고 전복도 좀 넣으려고요. 쇠고기도 좀 갈아 넣으면 더 좋고.
-네 남편 키울 때는 미음만 먹여도 잘만 자랐다.
-어머님 그러니까 만날 비실비실 하지요. 세월 바뀌는 걸 왜 모르세요.
-그래도 어미 젖이 최고니라. 네가 정성으로 젖을 먹이면 아기는 잘 자라게 마련이다.
(네년이 미용이다 뭐다 하면서 젖을 안물리고 무슨 개소리여?)
-어머님, 모유도 먹이지만 그것만으로 모자라요. 그리고 제가 뭐 먹은게 있어야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요. 찬밥에 된장국만 먹으니 젖이 나오나요?
-며늘아가 네 남편 키울 때, 나는 보리밥도 제대로 못먹었다. 너는 건강하고 성의가 있어서 그만하면 된다. 그리고 넌 요즘에 먹을 만큼 먹지 않냐? 쌀밥에 미역국에---. 호홍 호홍호호 홍홍홍---. (이년! 먹을 생각만 하냐?)
-어머님, 刻舟求劍이란 말 들어 보셨어요? 口蜜腹劍이란 말은 또 들어 보셨어요?
(뭘 알겠어? 무식하긴--- 쌀밥에 미역국? 여기가 거긴 줄 아시나요? 그게 다인 줄 아세요? 며느리 먹는 걸 그렇게 아까워 하시면서 손자 잘 크기를 바라나요?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으면서, 입으로만 달콤하게 호홍 호호홍, 어쩌면 내외가 웃음 소리까지 한결 같은지. 한심한 늙은이들)
-아버님 어머님
세월이 바뀌었답니다. 손자가 귀하면 며느리 먼저 귀해할 줄 아세요. 예쁜 꽃을 보려면 아들 말도 좀 들으세요. 집안이 성하려면 이웃을 돌아보고 연구를 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제발 마음을 꽃밭에 두세요. 제발 마음을 손자에게 두세요. 잿밥에 두지 마시고요. 보신에 두지 마시고요. 윗밭으로 갈 생각을 마시고요. 꽃밭이, 거기 피는 꽃이 재산이란 걸 왜 모르시나요?
꽃밭에 마음을 두셨으면 꽃밭지기를 잘 위해 주시고, 손자에게 마음을 두셨으면 며느리를 잘 위해 주시면 만사가 형통인걸 왜 모르십니까?
-아버님 어머님
제발 입에서 나오는 말만으로 달콤하게 바르지 말고 가슴에서 나오는 따스한 말로 감동하게 해 보세요. 아버님 어머님 입에서 뱅뱅 돌다가 나온 말은 너무 달아요. 그런데 그건 꿀도 아닌가 봐요. 금세 신물이 나요. 유치해요. 그래서 닭살이 돋아요.
-아버님 어머님
여원이네 총복이네, 그리고 이웃 마을 꽃밭들이, 꽃밭지기들이 어찌 농사를 짓고 어찌 손자를 키우는지 한 번 돌아보세요. 이러다 아들 며느리가 모두 서울로 보따릴 싸면 어찌하실 거예요.
이러다가 정말---
이러다가 정말----
제발 제발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