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꽃밭 일기

꽃밭일기 39 -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

느림보 이방주 2010. 12. 2. 19:10

2010년 12월 2

 

사랑받기 위하여

 

황매산 철쭉

 

쉬는 시간이다. 시험 문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영주가 인자와 함께 왔다. 인자는 교정기를 끼워 어색한 치아를 드러내며 부끄러운 웃음이 얼굴에 흘러내렸다. 인자가 용건이 있는데 영주는 그냥 함께 와 준 것 같았다. 웃고는 있지만 인자 얼굴이 창백하다.

"무슨 일?"

나는 빨리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는 표정으로 인자 얼굴을 바라보았다.

쭈뼛쭈뼛 말을 하지 못한다.

"영주야 네가 대신 말해 줄래?"

그랬더니 인자가 앞으로 튀어 나온다.

"선생님 저 오늘 야자(야간 자율학습) 빼주세요."

"왜? 무슨 일 있어?"

"어, 그게--- 저기, 너무 아파요. 죽을 지경이에요."

"엉 왜 그렇게 아프니?"

아닌 게 아니라 점점 창백해지는 것 같다.

"어디가 아픈데"

"생리통이에요."

"뭐 생리통인데 뭘 그렇게 엄살여. 그냥 공부하다가 8교시에 정말 아프면 그 때 얘기 햐."

"아니에요. 정말 참을 수 없이 아파요."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은 한 번도 내게 생리통을 호소한 적이 없다. 부끄럼이 많은 아이들은 그냥 참지만 요즘 아이들이 그 아픔을 그냥 참는 일은 거의 없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실 부끄러울 것도 없다. 오히려 없는 것이 얼마나 거북한 일인가? 왜 갑자기 그렇게 아플까. 생리통을 겪어보지 않는 내가 알 턱이 없다. 안경을 끼기 전에 안경을 쓰시던 생전의 아버지를 보면서 앞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과연 어떨까? 그 느낌은 어떻길래 안경을 쓸까? 안경을 끼면 또 어떻게 보일까?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걸 잘 안다. 신문을 받으면 안경을 먼저 찾고, 먼 데를 바라보려 해도 안경을 먼저 찾는다. 그렇다고 내가 생리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대상포진 같을 것이다. 그렇게 송곳으로 찌르거나 예리한 칼로 긋거나 톱날로 긁어대는 것처럼 아플까?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영주가 대신 말해 줬다.

"선생님, 얘는 처음이라서 보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뭐? 처음? 초경이란 말야?"

"예"

둘이서 함께 대답한다. 나는 놀랐다. 이런 일도 있나?

이런, 이런, 이런 경사가 있나? 이 녀석 그간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불안하고 견딜 수 없었을까? 나는 일 년이나 지나는데 그걸 몰랐다니. 인자야 미안하다.

"오, 그래 이런 경사가 있나? 인자야 축하해. 축하한다. 정말 축하한다. 이 녀석 그간 얼마나 맘고생을 했니?"

인자는 예상 못한 나의 호들갑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래 인자야 뭘로 축하할까?"

책상 위에 어제 기숙사에서 간식으로 받아온 호박떡이 한 덩이 있다. 이거라도 주자.

"인자야 축하해. 이거라도 받아라. 그래 보내 줄게. 집에 가서 파티를 해 달라고 해라."

나는 내 딸이라도 되는 듯이 덥석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열여덟이나 되었어도 당황할 만큼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교실로 보냈다. 인자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넣었다.

"인자 엄마, 인자가 초경이라네요. 일찍 보낼 테니 오늘 축하 잔치라도 열어 주세요."

바로 답이 왔다. 간단하다.

"선생님, 늘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다 때가 되면 다 있어야 할 것은 있고, 들어가야 할 곳은 들어가고, 솟아오를 곳은 솟아오르고, 동글동글해져야 할 곳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괴롭다고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말하지 못하고 혼자 얼마나 속을 끓일 것인가?

오늘따라 내 딸아이 초경을 축하해 주지 못한 것이 아프게 후회된다. 제때제때 다 하더라도 가족이 다 함께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나는 그런 것을 챙길 줄 몰랐을 것이다. 세상일을 다 혼자 맡아 하는 것처럼 공연히 바쁜 척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럴게 아니다. 나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다가 자동차 키를 가지고 일어섰다.

동네 제과점에 갔다. 예쁘고 소담한 케이크를 하나 샀다. 생일 파티가 아니라 가느다란 초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초경을 축하할 만한 커다란 초가 없을까? 마침 붉고 큼직한 초가 눈에 띠였다. 초를 하나 더 샀다. 돌아오는 길이 가볍다.

다섯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실장을 불렀다. 둘이 시나리오를 짰다. 실장의 아이디어대로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

인자를 앞에 나오게 했다. 뜻밖의 잔치에 인자는 쑥스러워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축하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은 모양이다. 케이크는 분위기에 어울리게 예쁘다. 붉고 굵직한 초를 가운데 쿡 박아 세웠다. 실장이 불을 켰다. 촛불을 켜고 일단 형광등을 껐다. 어둠이 깔린 교정, 불 꺼진 방, 촛불 하나가 인자만큼 예쁘다.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실장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을 선창하는데 아이들이 무시하고 생일 축하의 노래를 부른다.

"초경 축하합니다. 초경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인자의 초경 축하합니다."

이상한지 저희들끼리 웃어댄다. 그렇게 노래가 끝났다. 나는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 이라는 성가가 의미 있을 것 같아 아이들에게 주문했다. 좋다. 착한 아이들은 인자만 예뻐한다고 한 사람도 토라지는 일 없이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주어서 고마웠다. 그런데 인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가들은 저마다 제가 마치 어른인 양 한 마디씩 한다.

"인자야,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 "

"어른이 쉬운 줄 아니?"

"용돈 타야 거기에 들어가는 것도 장난 아니다. 너"

"스트레스 받으면 더 아파."

그래 맞아. 어른이 된다는 것, 뭔가 남다른 것을 한다는 것, 남만큼 살아간다는 것,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어딘가 아파야 된다. 여성은 성스러운 것이야. 성스러운 사람이 되려면 그렇게 아파야 하는 거야. 맞아. 우리는 고통 속에서 한 뼘씩 성장하는 거지.

나는 케익을 조금씩 떼어서 서른아홉 꽃송이들에게 돌렸다. 그리스도가 대중에게 떡을 나누어 주듯--- 나는 어마어마하게 그런 과만한 생각을 했다. 농담처럼 아직 초경을 겪지 않은 사람은 케익을 받지 말라고 했다. 초콜릿을 집어가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처럼 귀엽다. 모두 즐거워한다. 꽃송이다. 이런 때 이 방은 그냥 하나의 꽃밭이다.

불을 밝혔던 붉고 굵직한 초는 인자에게 주었다. 버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초는 세상을 밝히고 부정을 불태워 정화시킨다. 인자가 살아가는 동안 흐트러지는 마음을 태워 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남성을 만나 결혼하더라도 사랑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 서른 아홉 꽃송이들과 함께 밝힌 초가 그런 영험을 발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가들아 이제 인자도 또래로 대해 줘라.

인자야 너도 이제 친구들을 언니처럼 어려워하지 마라. 너도 언니가 되었다. 너도 어른이다.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얼마나 무거운 과제를 해결한 거니? 오늘은 너의 힘겨운 탄생의 날이다. 얼마나 머리가 개운하니?

큰애기들이 꽃으로 피어나는 꽃밭에는 웃음꽃도 그칠 줄을 모른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튿날 인자 엄마가 맛좋은 빵을 보내 왔다. 감사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왔다.

"인자의 그런 일까지 챙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초도 감사합니다. 보관해야겠다고 하면서 아이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 하나를 공유하는 것 같더군요."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 감동한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생각 없이 벌인 일인데, 별 힘 들이지 않은 일이 의미만 지나치게 커졌다.

때로 나도 내가 저지른 일에 감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