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일기 35 - 무심천 無心이
꽃밭일기 35 - 무심천에서
2010년 10월 8일
이 이야기는 정말 쓰기 싫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옛 이야기가 되겠지.
10월 초면 어느 학교든 중간고사를 보게 된다. 우리 아가들은 7일까지 중간고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학사 일정에 중간고사가 끝나면 바로 가을 소풍이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게 착오라면 나의 착오였다. 갑자기 학년부장께서 소풍 계획을 내라고 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가들에게 물었다. 시험에 지친 아가들도 별다른 계획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그냥 아가들이 원하는 대로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으로 정해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왕 멀리 가지 못할 바에야 가까운 데서 하루 시험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것도 좋을 듯해서이다. 롤러스케이트를 탈 줄 아는 사람을 손을 들라 하니 3분의 2쯤 되었다. 과연 신세대다 싶었는데 그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없는 사람은 빌리면 된다고 했다. 그래 잘 된 일이야. 그러면 하루 쯤 거기서 실컷 웃는거야 나는 스탠드에 앉아서 아가들의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꽃밭 일기에 올리는 거야.
7일날 수졸재에서 달빛 같은 낭만에 취하여 늦게 돌아와 늦잠이 들었다. 시간에 맞추어 무심천에 나가보았다. 아이들은 없다. 10시가 되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롤러스케이트를 메고 온 아이들은 한 명도 없다. 빌려주는 곳도 없다. 아 나는 완전히 속은 것이다. 한두 명씩 모여든 아이들은 저마다 시내로 스며들 기세로 꾸미고 가꾸고 다듬었다. 피가 솟구쳤다. 반장 부반장이 밉다.
혜자를 불러 물어 보았다.
"예 오늘 친구 생일이라 얼른 마치고 시내 가서 점심 먹고 노래방에 가기로 했어요."
"그래 미리부터 그럴 계획이었어?"
"예 엄마한테 용돈도 받아 왔는걸요."
가슴이 쿵 내려 앉았다. 하나하나 도착하는 아이들이 가관이다. 형형색색이다. 아무도 준비해온 사람이 없다.
설자를 불러 물어 보았다.
"누가 롤러를 타요. 오늘 같이 좋은 날, 이런 좋은 기회에-"
날 완전히 바보 취급한다.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참을 수가 없다. 트랙을 돌아 카메라를 들고 무심천 변을 걸었다. 꽃이 모든게 다 불로 보였다. 갈대고 억새고 하늘을 찌른다. 하늘이 징그럽게 파랗다. 운천교까지 걸었다. 내가 올 대가지 기다려라 해 놓고 출발했으니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다. 다시 돌아 왔다.
이 녀석들은 저희들끼리 앉아 지줄대다가 '왜 안 보내주나'만 기다리는 듯하다. 저들 담임을 소 닭 보듯한다. 늦게 오는 녀석들이 인사하는 법도 없다. 1반 아이들이 옆에서 단체로 주문해온 햄버거와 음료를 마시고 있다. 반장이 내 몫이라며 그걸 가져 왔다. 손이 떨린다. 도로 돌려 보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정말 나는 팥을 심고 콩을 거두려 한 것인가? 아이들은 반성도 없다. 뭘 잘못했는지 아주 당연한 표정이다. 이 순간 나는 결심했다. 롤러장에 모두 모여 놓고 유격대에서 하는 피티체조를 시켜서 여기서 한 발도 걸어가지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이 녀석들이 순진한 건가 아니면 음흉한 건가?
출석 확인겸 아이들을 스탠드에 불러 모았다. 사진을 찍었다. 순간 맘이 변했다. 그냥 보내버려----. 이건 순전히 카메라에 담겨 있는 무심천의 예쁜 가을 꽃들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가본 무심천에서 청주에 대한 새로운 애착이 일었다. 그러나 이튿날까지 아이들은 보기 싫었다.
차를 돌려 집으로 오려고 시직동 사거리 까지 왔다가 다시 유턴하여 그 자리에 가 보았다. 아이들 몇이 있다가 내 차를 보고 징검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 입고 구룡산에 갔다. 참나무 숲 사이로 학교가 보인다. 괘씸한 아이들 생각이 났다. 정말 밉다.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