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일기 34- 꽃밭지기들의 나들이 -守拙齋 방문-
2010년 10월 7일
守拙齋 방문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오늘 守拙齋 주인이 우리 꽃밭지기들을 모두 옥화대 守拙齋로 초청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인에게 감사하기 앞서 우선 마음부터 들떴다. 주인은 부담스럽고 신경이 쓰이겠지만 우리는 친정가는 어머니를 따라 외할머니를 뵈러 가는 것처럼 마음이 달뜬다.
두 시부터 언제 떠나나 기다리고 있는데 2시 10분쯤 해서 재영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조금 있다가 우리 먼저 출발해요.' 나는 양복을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 입었다. 냉장고에 보관해 놓은 김치를 꺼내 놓았다. 재영선생님은 뭘 그리 많이 준비했는지 가방이 몇 개이다. 어머님께서 고생을 하셨을 것이다. 재영 선생님은 그저 가져오는 살림꾼이다. 그냥 가면 주인이 알아서 할 텐데, 그리고 주인은 그걸 더 좋아할 텐데, 하긴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 한둘 쯤 있어야 조직은 빈틈없이 돌아간다.
내 차에 재영선생님을 모시고 2시 30분에 키를 꽂았다. 농수산물 큰시장에 가서 소주를 한 상자 샀다. 주인의 겨울 양식을 준비해 주는 것도 예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방서동을 빠져 나가자 세상은 온통 가을빛으로 우리를 맞는다. 논벼는 아직도 누릇누릇 추수를 기다리고, 길가에 코스모스, 백일홍, 칸나 같은 꽃들이 가을 볕을 받아 제빛깔을 더하고 있었다. 산은 더 푸르고 논에서 놀던 참새도 더 높이 날아 오른다. 모두 다 초대 받은 우리네 마음 같았다.
운암에서 좌회전하면서 내가 금관학교에 근무하던 70년대 어둠의 역사를 생각했다. 어느날은 월요일 아침에 운암에서 금관까지 걸어간 적도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옥화 모롱이를 돌아서기 전 작은 고개 아래에 龍沼가 있다. 여길 지나노라면 항상 제자이며 동화작가인 미애를 생각한다. 여길 배경으로 동화를 쓰기도 했다. 지금은 40대 중반의 여인이다.
옥화리 마을로 들어서면서 토박이 마을이 아닌 황토골로 우회전했다. 길가 사과밭에 사과가 붉게 익어간다. 재영선생님이 "아, 사과 예쁘다" 하고 감탄한다. "이쁘기만 한 건 아니랍니다"하고 말하고 싶었다. 저들을 하루라도 볕을 더 받게 하려고 농부들은 밤을 샌다. 과수원 바닥에 은박지를 깔고 발을 구른다. 볕을 기다리는데 어느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서리를 하얗게 쏟아 놓기도 한다. 그런 낭패가 우리 삶에는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守拙齋 주인은 부엌에서 호박을 썰고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 열 번을 만나도 반갑다. 나는 차에서 짐을 내려 정리하고 재영 선생님은 채소를 씻는다. 뭘 거들어야 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나는 공연히 잔디밭을 서성거리면서 안해도 되는 걱정을 했다. 잔디밭 구석에 아람 빠진 밤송이가 쌓여 있다. 이유없는 웃음이 '쿡'하고 나왔다. 화로에는 이미 숯불이 발갛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시간을 물어 삼겹살을 올려 놓으면 된다. 뚜껑 덮인 옹기에서 파랑색 연기가 솔솔 피어 오르고 있다. 열어보나마나 <守拙齋 옹기구이>가 익고 있을 것이다. 가까이 가 보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지는 않았다. 노릿한 냄새가 솔솔 묻어난다.
나는 탁자와 의자를 잔디밭으로 끌어 내었다. 우리가 앉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러다가 또 공연히 나무를 쓰다듬고, 잔디밭 가에 피어난 하얀 쑥부쟁이를 만져보기도 하고, 꽈리꽃 열매가 꼭두서니빛으로 익어가는 어여쁨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좌청룡 無覺이나 우백호 不慍이도 그대로 푸르다.
이윽고 이제 출발하는지 배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번지를 정확히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에 조급증이 나서 어디쯤 오는지 알보려고 운전하지 않는 지기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이쁜 막내지기에게 걸었다. 받는다. "지금 어디?" "아, 여기는 두산 삼거리이래요." 그러면 20 분이면 된다. 나는 철망을 찾아 숯불에 삼겹살을 올렸다. '연기를 낸다.'고 주인에거 한두 번 지청구를 들었다. 그래 나는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어. 돼지고기 김치찌개나 감자찌개 같은 찌개라면 나도 자신 있다. 그러나 삼겹살 굽는 일이라면 영 손방이다. 착한 고기는 좋은 냄새를 내며 익는다. 착한 고기는 그으름도 없이 못된 기름을 살살 흘리면서 노릇노릇 이쁘게 익어간다.
사과밭 모롱이를 돌아 배부장님의 회색빛 소렌토가 언뜻언뜻 비친다. 이어 또 한 대 회색 그랜저가 얼굴을 내민다. 동구밖까지 나가서 맞아야 시골 인심이다. 나는 삼겹살이 타거나 말거나 동구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차를 이끌고 들어왔다. 그동안 가꾼 우리의 꽃밭이 얼마인가. 가을이 익어가니 꽃밭보다 꽃밭지기들의 빛깔이 더 곱다. 나는 이때 나이를 잊어버린다. 공연히 어깨에서 힘이 빠져 흔들흔들 한다. 이유없이 다리가 술에 취한 듯 휘청거린다. 아이들은 없지만 11반 지기도 함께 와서 더 좋다.
우리는 모두 듣기만 해도 넘치게 좋은 열 셋이다. 열셋의 아름다운 가든 파티가 시작된다. 세팅은 이미 끝났다. 재영선생님 솜씨이다. 나는 서둘러 고기를 썰었다. 술은 가지가지 다 있다. 소주도 있고 산사춘도 있다. 주인이 준비한 와인으로 첫 건배를 했다. 주인장은 건배사도 수졸재 주인다웠다. "나마스테---" 영혼의 경배라는 뜻이다. 우리도 다 함께 외쳤다. 나마스테(Namaste)-----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배합니다. 겸손의 극치이다. 不慍(불온)이 다가와 빙그레 웃었다. 저 멀리 遠朋이 이미 달래강을 건너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러고 수없이 향이 오고간다. 소주의 톡 쏘는 향기, 산사춘 향기, 와인의 향기, 삼겹살 향기, 김치향, 된장, 마늘향이 상을 덮는다. 온 산야에서 엄습하는 자연의 향이 우리를 휩쓸어 갈 때쯤, 나는 온통 꽃밭지기들에게서 풍겨나는 情의 향기에 묻혀 헤어날 줄을 몰랐다.
이야기는 꽃을 피우고 우리는 저마다 가져오지도 않은 웃음을 한보따리씩 잔디밭에 풀어 놓을 때 사방은 어둠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마당 끝에 밝힌 등이 달빛처럼 고고하게 우리를 비친다. 달빛은 그림자가 더 아름답다. 전등이면서도 달빛 노릇을 해서 우리 얼굴에 향기로운 실루엣을 던져 주고 있었다. 11반지기는 말없이 사위어가는 숯불에 알밤을 구워 터트리고 있어 별로 우스울 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 이웃이 미안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아, 이때 나는 옹기로 가서 옹기구이를 한 꼬치 꺼내 왔다. 주인이 준비한 면장갑을 내게 던져 준다. 나더러 '손맛'을 보라는 낙점이다. 고기는 한 20분 정도 부족하게 익었어도 맛은 예전 그대로다. 좋은 음식은, 좋은 술과 좋은 사람과 좋은 이야기만 있으면 만들어지는 것이다. 누구에게 더 맛보이고 싶은 것은 아닌데 나는 고기를 썰어 자꾸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모두가 감탄이다.
이때 하늘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평상에 누워 옥수수를 입에 물고 바라보던 하늘에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떠가는 것이 있었다. 비행기였다. 시골뜨기 소년의 꿈은 비행기라는 그 불빛을 따라 밤새 떠나갔다. 어른이 된 오늘 그 불빛은 하늘 구석에서 반짝반짝 떠간다. 그러나 그날의 꿈은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수졸재가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주인이 끓인 된장국이 나왔다. 환상이다. 정신이 없다. 아이 낳고 누웠을 때 쉰살 암상한 시어머니도 미역국맛만 좋으면 눈물 섞어 감사를 드리게 된다. 그것이 우리네 인정이다. 선비가 끓인 된장국이 어떻게 이런 맛을 낼까? 씻어낼 기름도 없는 주인이지만 이 맛이라면 오늘은 모든 걸 다 탕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된장은 이렇게 모든 걸 다 씻어낸다. 좋은 건 더 빛나게 하고, 맛나는 건 더 맛나게 하고, 기름져 느끼한 건 담박하게 씻어 버린다.
나는 마당에 서성이고 부장님과 여왕벌을 비롯한 지기들이 뒷설겆이를 시작했다. 설겆이가 끝나고 주인에게 담배를 한 대 얻어 피웠다. 구수하다. 좋다. 행복하다. 하늘에 별이 참 많이도 떠오른다. 밤은 깊어가는가 보다. 나는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도 떴다'고 도종환의 시를 읊을 번했다. 여기 모인 꽃밭지기들도 누구하나 별이 마다할 사람이 없다. 아니 밤이 깊어갈수록 별은 점점 많아진다. 산골의 기온이 차다. 주인은 어디서 났는지 수없이 덧옷을 집어 내온다. 하나씩 걸쳤어도 덩치만 큰 내가 걸친만한 것은 없었다.
화로에 밤송이를 태우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왕벌이 절절한 사랑가를 불렀다. 여왕벌도 사랑을 하고 사는구나. 여왕벌은 그 많은 수펄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할까? 세상에 대한 사랑은 크고 작음 없이 같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의 사랑가에는 여왕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절절이 배어 나왔다. 나의 과거에도 그렇게 절절한 사랑이 있었을까? 가슴이 찡하다.
지난 일들이 별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다. 하늘에 별보다 더 먼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나 가림없이 나이를 잊어버린 내가 제일 많이 말을 했다.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보면 언제나 모두가 헛소리라는 걸 후회하면서도 또 헛소리를 한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사는 이야기들은 모두 향기로웠다. 나에게도 아마도 별이 있고, 달빛 같은 불빛이 있고, 수졸재 옹기구이가 있고 향기로운 꽃밭지기들이 있어 눌어 붙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밤송이에 불이 붙어 가시가 탈 때는 매화포를 터트렸을 때처럼 불빛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빛난다. 말없이 그 불빛을 계속 뒤척이면서 우리에게 황홀함을 선사하는 이도 있고, 계속 밤을 까서 입에 넣어주는 이도 있고, 헛소리에도 계속 추임새를 넣어주는 이도 있어 우리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내가 다시 산골학교 총각선생 시절의 우렁각시가 나타났던 향그러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쯤 누군가 자동차 미등을 켰다. 운명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우리는 다 새우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미련을 지우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미원을 빠져 나와 두산리 산모롱이를 돌면 바로 도시이다. 낮처럼 환한 도시의 전등불이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빛을 다 앗아가고 있었다. 밝아도 별이 뜬 것만큼 청량하지 못한 하늘이다. 그러나 하늘과 우리들의 가슴과 멀리 아주 멀리 있는 추억의 별을 잠시라도 만나게 해 준 것은 수졸재 주인의 덕이다.
잘 살자. 꽃밭처럼 아름답게 살자. 이 꽃밭을 잘 가꿀 수 있는 그날까지----.
나마스테-----
(사진은 4반지기 김명희 선생님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