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일기 32 -원자, 5일만의 부활
2010년 9월 9일
5일만의 부활
가을 꽃- 물봉선 (차가운 빗속에서도 꽃을 피우는데)
8월 30일 (月)
2학기를 맞아 미술학원, 음악 학원, 영수 학원에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학기 초를 맞아 우리 아가들을 잘 지도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을 드릴 겸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또 얼마나 진도가 나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대개 학원 원장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담임으로서 의레적인 인사일 뿐이다.
원자가 다닌다는 음악학원에 전화를 했다. 어떤 아가씨가 받는다. 원장을 바꾸라 했다. 학습 정도를 알아보려면 원장과 통화를 해야 하는 것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 학생 6월부터 안나옵니다." "아 그래요?" 부끄럽다. 정말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6월, 7월을 넘어 8월까지 건너 뛴 것이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그러면서 계속 학원 핑계를 대고 학교를 빠져나간 것이다. 다른데 갈 데는 없다. 집으로 갔겠지. 아이들이 다 학교에 있는데 다른데 가서 혼자 놀 수도 없다. 틀림없다. 밤 7시 30분, 교실에 들렀다. 원자가 없다. 아! 이 녀석이 어디 갔을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원자 엄마, 원자가 학교에 없어요." 답이 없다. 조금 있다가 문자가 왔다. "원자 집에 있네요." 8시 30분, 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29*-0*** 뜨르르륵 음악---- "여보세요" 아가 목소리다. 초등학생인가? "아가야 ! 원자 동생이야? 이름이 뭐야?" "경아예요" "언니는?" "집에 있어요." "바꾸어 줄 수 있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원자다. 왜 갔어? 말이 없다. 왜, 왜 갔을까? 말없는 것으로 보아 그냥 갔을 것이다. 나는 그냥 끊었다. 그래도 지금도 집에 있지 않은가? 나는 원자를 믿는다. 자꾸 예뻐지고 싶어한다고 생활까지 방탕할 리는 없다. 그런데 아무도 내게 그걸 일러준 아가들이 없다. 반장도 알았을 테고, 친한 아이들 - 안자, 람자- 설자까지도 알았을 텐데, 아무도 말해 준 사람이 없다. 불쌍한 것, 학교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학교는 학교를 싫어하는 아가들을, 학교를 힘들어 하는 아가들을 학교에 잡아 놓지 못해 안달을 할까? 어른들은 정말 왜 그럴까? 다 자기 삶인데---- 8월 31일 (火) 8시에 교실에 가 보았다. 8시 3분이면 원자가 꼬부랑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들어 온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 바로 손수건으로 콧등의 땀을 꼭꼭 눌러 닦는다. 다른 아가들보다 땀 닦는 모습이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땀 닦는 모습이 이십대 후반으로 성숙하다. 그런데 오늘은 원자가 보이지 않는다. '왜 자율학습 빼먹고 집에 갔냐'고 호통치고 싶었는데 愚子는 기가 죽었다. 8시 10분, 수업을 시작해도 안 온다. 오겠지. 그럴 리가 없어. 난 원자를 믿어. 축제 때도 얼마나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얼굴은 하얗게 변색이 되어 가지고 축제 마당마다 열심히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다. 도망은 커녕 밤 10시 끝날 때까지 열의를 보였는데--- 수업을 하는데 愚子가 읽는 詩가 입안에서 자갈 구르는 소리를 한다. 비어져 나간 詩의 조각들이 허공에 맴돈다. 9시에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안 된다. 집 전화로 걸었다. 아가가 받는다. "아가야, 언니는?" "학교 갔어요." "안 왔는데, 엄마는?" "회사 갔어요." "아빠는?" "아빠도 회사요" 아빠 엄마는 밤이나 낮이나 회사에서 사는데 이쁜 원자는 왜 학교를 버리고 집으로만 가려 할까? 12시 넘어 전화를 걸었다. 원자가 받는다. 집에 있었는데 동생이 집에 있는 줄을 몰랐다고 한다. 그럴 테지. 왜 안오는지 말이 없다. 이 머리 복실복실한 갈대 같은 어린 양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내면을 들여다 보면 착하기만한 원자가 왜 그럴까? 그건 미래를 볼 줄 모르는 까닭이다. 자신에게 어떤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것인가? 이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엄마에게서 그제서야 문자가 왔다. '집에 있네요.' '나도 알아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학교에 보내십시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엄마가 통화가 된다. 죄송해요. 정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왜요? 몰라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아! 미치겠다. "잘 달래서 보내세요. 학원 안 다닌 건 알고 계세요?" "예 6월부터 안 다녔어요." 다행이다. 이런, 엄마는 그런데도 내게 말이 없었다. 아, 정말 미치겠다. 이 엄마를 어쩌꺼나요. 원자가 딱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원자가 정말 딱하다. 이 아가가 방향을 확실히 정했다면 난 말리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도 없다. 절벽인지 마사길인지 풀섶인지 모르고 그냥 내닫는다. 나는 반드시 잡아 학교를 졸업시켜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방법은 없다. 9월 1일 (水) 불쌍한 원자는 오늘도 제 자리에 없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쩔 도리가 없단다. 말이 안통해요. 소통이 안된다? 그러면 그건 아이들이 잘못인가? 아이들은 원래 잘못을 저지르고 사는 건데. 그냥 넘어 갔다. 어쩔꺼나. 아이들에게 상의해 보았다. 아가들도 뾰족한 의견이 없다. 걱정만 할 뿐이다. 아예 걱정도 없는 아가들도 있겠지. 그러나 눈빛으로 봐서 대부분이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내일도 안오면 할 수 없다. 아침에 내가 가서 데리고 오는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9월 2일(木) 원자는 오늘도 당연히 오지 않는다. 집에도 엄마도 전화가 통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문자를 보냈다. 집 전화도 받지 않으니 불안하다. 동생인 아가도 개학을 한 모양이다. 감감하다. 답답한 음악만 울릴 뿐이다.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원자 엄마,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아파트 앞으로 가겠습니다. 학교갈 준비하고 내려 보내세요." 역시 답은 없다. 아마도 나를 말로만 그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원자를 학교에 다시 다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방법으로라도 나오게 할 것이라고 결심하고 있었다. 참 바보스러운 일이다. 왜 학교가 싫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괴롭히려 하고 있는가? 나는 원자가 학교에 안나오면 어디로 갈까에 대하여 여러 가지 길을 상상해 보았다. 정말 그애는 어디로 갈까? 대입 검정을 보아 대학에 갈까? 그럴 의지가 있을까? 그러나 고등학교도 싫은 아이가 대학은 좋을까? 맞아 대학은 좋을 수가 있지. 원자가 하고 싶은 일들은 대학에서는 모두 당연한 일이다. 그런걸 고등학교에서는 왜 안될까?맞아. 아무튼 나이 들어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철이 날 때까지라도 학교에 붙잡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는 우리 나라 교사들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제 일 도 아닌데, 제 자식도 아닌데 웃기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이성적인 사제관계가 아니다. 지금 그냥 두면 훗날 반드시 내가 후회할 것이다. 나는 집 주소를 메모지에 적어 가방에 넣었다. 내일은 데려 오리라. 9월 3일 (금) 다른 날보다 서둘렀다. 7시가 되기 전에 무쏘 배꼽에 키를 꽂았다. 부르릉---- 밟아댔다. "분평동 **아파트 *0*동 **4호" 찾기는 아주 쉽다. 마당에 차를 세웠다. 전화를 걸었다. 아가가 받는다. "아가? 경아야?" 나는 어느새 아가의 이름도 기억한다. 원자에게 전화를 걸면 왜인지 으레 아가가 받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나리오처럼 언니는 자고 아빠는 회사가시고 엄마도 회사 가셨다. 7시 23분인데 그 공식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 7시 30분에 출근하는 사람은 인문고 선생들밖에 없다. 회사는 아직 출근 시간이 아니다. "엄마는?" "회사 갔어요." "아빠는" "회사 가셨어요." "이렇게 일찍? 언니는?" "자요." "경아야. 착하지. 언니 깨워. 그리고 전화 바꾸어 줄래?" 소식이 없다. 고층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 밖으로 나갈려다 말았다. 담배 생각이 났다. 왜 내가 담배를 피워야 하나? 어쩐지 성스러운 이 일이 춘향이처럼 부끄럽다. 기생 춘향이가 제가 성참판 딸인 줄 알고 있었더니 남들이 다 월매 딸이라고 해서 부끄럽듯이 나는 나 혼자 성스러운데 남들이 볼 때는 다 병신 꼴값한다는게 아닐까 하는 부끄런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 느티나무가 바람에 우수수 떤다. 병신, 나살이나 처먹어 담임 맡더니 혼자 성인인체 하네. 네가 페스탈로찌냐? 이런 말로 들렸다. 누군가 깔깔깔 웃고 지나간다. 날 보고 웃는건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랴. 경비원이 가까이 와서 나를 본다. 나요? 나쁜 사람 아녜요. 정신 나간 사람도 아녜요. 할일 없는 사람도 아녜요. 조금 있으면 올라가기도 할 거예요. 딤배나 한 대 주슈 하려다 말았다. 또 전화를 했다. 아가가 받는다. 위에서 하느님처럼 다 내려다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바보처럼 차를 두번 후진했다 전진했다를 반복했다. 살아 꿈틀거림을 보여준 것이다. 저 위에서 회사에 갔다는 원자 엄마가 창문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면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라고 일러 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래도 가겠지. 제까짓게 안갈 리가 있나? 여덟시 10분이면 어김없이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가가 전화 옆에 있는지 바로 받는다. "아가 언니 바꿔 줘." 옆에서 어른들 말소리가 들린다. '쇄쇄쇄----'하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전화통에 태풍이 들었나? 전화는 정말 문명의 이기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경아가 불쌍하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가슴 졸일까? 참 못할 일이다. "아가, 경아야 미안, 언니 안내려 오면 내가 올라 갈께. 5분 기다려서 안내려오면 올라갈 테니 학교 갈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해 줘." 숨소리인지 숨죽인 말소리인지 쉬근쉬근 몇 마디가 들리더니 원자가 받는다. "내려 와." "예" 안 내려 온다. 숨막히는 순간이다. 나는 그럼 올라간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가가 또 받는다. "언니 준비해요." 아가에게 미안하다. 경아야 미안하다. 이름도 참 예쁘다. "언니 바꿔 줘." "내려 갈께요." 내려오는 동안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있단다. 이런--- 이런--- 정말 이런--- 가슴이 부글 부글 끓는다. "보내세요." 원자가 내려왔다. 교복을 안 입었다. 7시 58분이다. 나는 차를 학교쪽으로 돌려 움직이며 소리쳤다. "왜 교복 안 입었어. 올라가서 교복 입고 택시타고 학교 와라." "선생님, 저 학교 안가요. 죄송해요." "잔말 말고 택시 타고 와. 안오면 내일도 온다." 밟아댔다. 수업에는 늦지는 않았다. 길이 고맙다. 밀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의아하다. 이렇게 늦을 愚子가 아니라는 표정이다. 영리한 안자가 소리쳤다. "선생님, 원자네 갔다 오셨지요?" "그래, 우리 이쁜 안자가 선생님을 알아 주는구나." 콧잔등이 시큰하다. 안자의 마음이 안아주고 싶도록 예쁘다. 오후에 원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와 있다. 다시 걸었다. "원자가 할머니네 갔어요. 내일은 오지 마세요." 용건 간단하다. 아, 이제 어쩌지? 도움이 전혀 안되는 엄마다. 세상에--- 세상에--- "그 대신 할머니하고 말씀 좀 나누어 보세요." 밤에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목소리부터 고급스럽다. 마치 교직을 퇴직한지 한 5,6년 쯤 되는 분처럼 愚子 고충을 이해해 주신다. 원자 삼촌도 숙모도 교직에 있다고 한다. 자세한 건 기억이 안나지만 초등에 있다는 것 같다. 나는 설자를 불렀다. " 이쁜 설자야, 너희가 나의 대사가 되어 원자를 데려 와라. 해 줄래?" "할께요." "바쁘지 않아? 학원도 가야 되고. 모의고사도 얼마 안 남았고. 기말고사도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도 해야지요. 선생님 이렇게 걱정하시는데." "그래, 고맙다. 그래도 내가 갈 수는 없잖아? 그렇지? 오늘 엄마한테 이런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허락 받고 내일 여부를 말해 줘." "예, 그럴께요." "누구랑 갈래?" 안자와 람자가 가기로 했다. 극비이다. 그 대신 부모님께 그런 일을 한다고 허락을 받아 오라. 토요일 오후에 간다. 무슨 말을 해서 달래올 것인지 계획을 세워라. 아이들은 정말 착하다. 정말 함께 꽃밭을 이루고 있는 꽃송이다. 내 의도를 다 안다. 9월 4일 (토) 오전에 수업을 두 시간 했다. 오후에 거리축제가 있어 원흥이두꺼비 생태공원에 갔다. 시화전을 돌보기 위해서이다. 설자가 할머니와 전화를 해서 용암동으로 간다고 전화가 왔다. "그래 나의 이쁜 토끼들아, 잘하고 돌아오라." 나는 대사들을 100% 신뢰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할머니와 사전에 함께 계획한 일도 있고. 참 훌륭하신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자식들을 아주 잘 교육하셨을 것이다. 연세가 일흔이라고 했다. 손자에 대한 사랑을 알만한 나이이다. 저녁에 안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저예요. 원자가 월요일에 학교 나오기로 했어요. 선생님 너무 걱정마셔요." "아 그래 잘 했다." 좀 있다가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마 잘 될 거 같아요." 9월 6일 (월) 아침에 보니 원자는 안 왔다.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이고 선생님, 얼마나 힘드셔요. 선생님이 얼마나 힘드실까 눈에 선해요. 6시부터 치장을 하더니 지금서 버스타고 갔어요. 이제 안 되면 그냥 버려 두세요. 이제는 안되면 여기서 포기하세요. 다른 애기들에게 미안스러워서 더는 안되겠어요. 선생님 다른 애기들에게 써야할 신경을 쓸데없이 우리 원자에게 더 쓰시면 안돼요." 말씀이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이다. 교육감을 한 2,3년은 하신 분 같다. 원자는 보충수업 끝나자 들어 왔다. 연구실로 찾아 왔다. "선생님 저 왔어요." 나는 반가워서 안아줄 뻔했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면 안된다. 야단 안 치는 것만 해도 어디인데. 얼굴을 한 번 보았다. 얼굴이 뽀얗다. 아무말도 없다. 열적은 웃음만 있다. "원자야. 아무 말도 안 할테니. 학교 잘 다녀라.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나도 이제 끝이다." 이렇게 원자의 일주일간의 화려한 외출은 끝이 났다. 지금은 지각도 없다. 반드시 밤 열시가 되어야 간다. 훌륭하신 할머니, 기특한 설자, 안자, 람자 덕이다. 본래 착한 아가였으니까. 그리고 원자는 참 훌륭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할머니 이 녀석을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데리고 계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