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꽃밭 일기

꽃밭일기 26 -홀몸된 연자 신발 -

느림보 이방주 2010. 8. 24. 06:41

2010년 8월 23일

 

혼자가 된 속리산 으아리 

  

복도를 지나다가 신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구 것인지가 신발이 한짝밖에 없다. 누가 장난친 건가? 아니면 신발이 좋으니까 한짝씩 가져가려는 계획인가? 신발을 들고 바로 뒷문을 열고 소리 질렀다.

"이거 누구 신발인데 한 짝이지?"

"연자 신발이예요."

아 그렇지, 한 쪽 발에 깁스를 한 연자는 신발도 한쪽밖에 못 신는다.

 

연자는 표정이 늘 밝다. 작은 걸 얻어도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해 한다. 눈길만 한 번 주어도 웃음을 보낸다. 눈가와 입가에 웃음이 괴었다. 사랑받고 사는 사람의 본보기라는 생각이 든다. 예쁜 아가들은 쳐다보면 웃는다. 돌박이 아가들이나 서른 살 노처녀나 눈길이 마주치면 웃는 아가들은 행복을 먹고 산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깊은 곳으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아가들은 예쁘고, 예쁘게 키우려면 아가들을 행복하게 키워야 한다. 행복하게 키우는 방법은 아주 쉽다. 사랑이면 된다.

 

"선생님이 쓰레기 갖다 버리라 하셔서 저 발 다쳤어요. 아파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연자는 표정이 밝다. 원망이 아니라 어리광이다.

"그랬어? 왜, 어디서 그랬는데."

나는 속으로 안쓰럽고 걱정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었다. 살다보면 당연히 그런 때도 있다고 생각해야 아가들은 이 고통을 잘 넘길 수 있다.

"쓰레기 봉지 들고 계단 내려가다가 삐끗햇어요."

 

지난 18일 보충수업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다. 여름방학 보충학습도 지루하고 짜증나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짜증 나지 않는 방법은 아주 쉽다. 방학이라는 걸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학기중의 긴장을 그냥 계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쉽다. 내가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다. 지각 한 명만 나와도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생각없이 표정만 나온다면 그건 아이들을 향한 사기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방학에 체험학습 간다는 사전 통보없이 결석한 아가는 딱 두 명이고 딱 이틀이다. 사전 통보 없이 지각한 아가도 딱 두명이다.

 

연자는 그런 내 뜻에 잘 따라 준 기특한 아가이다. 7월 말 필립핀 세부를 다녀왔다. 엄마 아빠는 휴양지로 갔겠지만 기특한 연자는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세부의 관광자원 이용 실태, 관광객의 현황, 세부의 자연 환경 보존 상태 등 그럴듯하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평소에 독서 수준이 그의 보고서 수준을 말해 준다. 그런 연자가 발목을 다쳤다.

 

"어쩌지? 병원에 가볼까?"

"아빠가 오신다고 했어요."

"내가 데려다 줘야 하는데."

"그냥 아빠랑 갈께요."

"어디로 갈 건데"

"마디사랑 병원요."

"거긴 가면 마디를 너무 사랑해서 바로 수술하라 할 텐데. 무서워서 어쩔래? 우리 이쁜 연자"

"우리 아빠한테도 수술하라고 그랬대요. 그래서 막 겁먹고 있는 중이예요."

 

전화가 좋다. 아빠와 벌써 거기까지 얘길 나눈 것이다. 그 아빠의 자식 사랑도 알만하다. 나만큼 아이들을 장난으로 키운다. 아이들은 장난 때문에 행복하다. 무섭지 않다. 어른들을 신뢰한다. 다친 자식을 놓고 선생을 원망하면 아이는 불안해 하고 불행해진다.

 

이튿날 연자는 깁스를 하고 왔다. 인대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나는 연자의 깁스한 다리를 의자에 올려 놓고 사인펜으로 낙서를 했다.

"이쁜 연자 발목아 빨리 나아라."

아가들 몇 명이 따라서 했다. 깨끗한 거즈가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사랑으로 금방 새까매졌다. 친구들의 사랑을 먹은 연자의 다리는 금방 나을 것이다. 아픈 다리의 고통을 겪은 대가로 친구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행복을 얻은 것이다.

 

안전공제회에 신청할까 어쩔까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연자가 왔다.

"선생님 안전공제회 신청해 주세요."

"그러자."

연자의 발목은 안전하게 공제되어 깨끗하게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