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백두대간 하늘재에서 포암산

느림보 이방주 2009. 10. 11. 23:19

2009년 10월 11일

 

<산행 개요>

1. 산행지 : 하늘재 - 포암산(961.7)

2. 산행 코스 : 미륵사 주차장- 미륵사지-하늘재-포암산

3. 거리 : 약 5km

4. 시간 : 미륵사 주차장 출발(10:40)-포암산 정상(13:20)-미륵사 주차장 도착(15:30)  4시간 50분

5. 함께 간 사람 : 느림보와 그 아내

 

오늘은 포암산에 가기로 했다. 포암산은 만수봉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산이다. 만수봉에 오르면서 앞산을 바라보면 참으로 신비롭게 보인다. 숲이 우거지고 바위벽이 보이고 거기 폭포가 보이고 해서 한 번 올라가야지 하면서 기회가 없었다. 아내는 보은 대추 축제에 충청북도테니스대회에 가면서 일요일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테니스대회의 진행에 중요한 문제가 생겼는지 오지 않는다.

 

근처 산을 거의 올라 보았기 때문에 지리는 대충 짐작할 수 있지만 충북의 명산이라는 안내 책자에서 포암산을 복사했다.  8시 05분에 도시락을 챙겨 가지고 집을 나섰다. 남보다 일찍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이다. 봉명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하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은에서 일찍 나와서 지금 분평 사거리인데 함께 가자는 것이다. 체육대회 진행으로 피곤할 텐데 웬만하면 참는게 좋을 것 같지만 동무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아내를 태우고 집에서 9시 20분에 출발했다. 봉명사거리에서 좌회전해서 흥덕경찰서 앞을 지나 우회도로를 거쳐 증평, 괴산을 지나는 34번 국도에 접속했다. 증평에서 연풍까지 일부구간(칠성 부근)만 제외하고 4차선이 개통되어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연풍에서도 마을을 거치지 않고 바로 3번 국도에 연결된다. 3번국도를 타고 수안보 쪽으로 달리다가. 수안보 직전에 커다란 느티나무를 보고 우회전하면 지릅재를 넘어 송계 계곡으로 가는 길과 연결된다.

 

햇살은 더욱 짠들짠들하고 길가에 사과를 파는 아낙네의 웃음도 햇살처럼 곱다. 가을 옥수수도 나왔는지 길가 판매대에 올랐다. 지릅재 오르는 길 양 편에는 차 안에서도 손을 뻗으면 사과가 쥐어질 듯하다. 밖에 나오면 무르익는 가을을 만난다. 온통 가을빛이고 가을 냄새이다. 산은 이미 초록을 잃어가고 있다. 길가에 낙엽이 흩날린다. 찻집 램프의 향기에는 낮에도 램프에 불이 켜져 있다.

 

지릅재를 넘으니 가로수가 더 붉다. 햇살은 포장도로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부서진다. 미륵사지 너른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했다. 하늘재를 향하는 등산객들이 줄을 선다.

 

 포암산 주변 등산 지도

 미륵사지 주차장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주변의 아름다움

 

산행은 미륵사지에서 한 20m 쯤 올라가면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 포암산 산줄기를 타고 급경사를 올라 정상에서 하늘재로 내려와 계곡을 걷기로 했다. 미륵사지는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해 가고 있다. 조금 복원하는 기미이다. 그러나 복원하기보다는 주변에 새로운 사찰을 짓고 미륵사지는 현재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좁은 생각을 하였다. 계속해서 염불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모두 미륵사지에 들러 산으로 올라 간다.

 

미륵사지 옆에는 미륵대원지가 있다. 아마도 하늘재를 넘어 지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의 숙소였을 것이다. 또 지방 관리가 중앙에 올라갈 때 하늘재를 넘어와 여기서 쉬었을 것이다. 하늘재는 새재 보다 오히려 덜 험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터로는 상당히 넓고 규모가 컸던 모양이다. 주변에 마치 토성을 쌓은 듯한 언덕이 보이고 주추라고 하기에는 큰 돌이 널려 있다. 아마도 역과 원이 함께 있었던 모양이다.

 

 

<중원미륵리사지(中原彌勒里寺址) >

            사적 제317호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이 절터는 동쪽으로 하늘재, 서쪽으로 지릅재 사이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삼국시대이래 조선시대 이전까지 남북의 중요한 길목에 있어 불교 사찰의 역할 뿐 아니라 군사, 경제적으로도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97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미륵당(彌勒堂)」, 「미륵당초(彌勒堂草)」, 「원주(院主)」, 「명창3년 대원사 주지 승 원명(明昌三年 大院寺 住持 僧 元明)」이라 적힌 기와들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절이름은 미륵대원으로, 미륵 대원터는 본존불,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인 배치로서, 삼층석탑, 사각석등, 당간지주, 미완성 석불, 건물지, 돌거북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게 북쪽을 향해 절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고구려 땅을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추정된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석굴사원을 조성하고 불상을 세워, 동생인 덕성공주가 송계계곡으로 남향한 암벽에 새긴 마애불(덕주사 마애불)과 마주보게 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하늘재>

우리나라 최초로 개통된 고갯길로 높이 525m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경계에 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25m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삼국시대(156년) 때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하였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蒙塵)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네이버 백과 사전-

 

 < 미륵대원터>

중원 미륵사지(사적 제 317호)의 창건후에 지리적 여건과 역원제도의 정비로 동쪽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을 세우고 미륵대원 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미륵대원계립령동령야(彌勒大院鷄立嶺東嶺也) 라 한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이 원터는 계립령(지금의 하늘재)길과 연관되어 고려초기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조선시대에 조령(일명: 새재)에 관방시설이 완비되면서 이곳 원터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2차에 걸친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건물지는 ‘回자형’의 구조로 가운데에는 말을 묶어 둔 마방 시설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주변의 건물터는 나그네 숙소 및 관리인이 기거했던 건물터의 구조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은 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같이 이루어진 고려 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미륵사지

 미륵대원터

 

미륵대원터 부근에서 왼쪽으로 가는 작은 다리를 찾았으나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탐방로 아님 표지가 있고 50만원 벌금 고지도 있다. 길은 훤하게 나 있는데 충북의 일백 명산에 보면 여기가 전망이 그만이라고 해서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으나 할 수 없이 하늘재로 가는 길을 택했다.

 

하늘재까지 길은 아주 평탄하다. 걷기에는 오히려 새재 길보다 더 좋았다. 길의 변화도 있고 숲이 우거져 공기가 아주 맑고 깨끗하다. 길가에는 국화, 쑥부쟁이, 구절초 같은 여러가지 가을 꽃이 피어 보기좋다. 평탄한 길인데도 아내는 힘들어 보였다. 조금 걸음을 빨리 하면 바로 쳐지고 다른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면서 걸음을 최대한 천천히 했다. 사람들은 수목에서 흘러나오는 상쾌한 공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활엽수보다 소나무가 많았다. 소나무는 고갯길 양쪽으로 우거져 있고 길쪽으로 비스듬하게 하늘을 향하여 뻗어 있다. 햇빛을 향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나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소나무 아래 단풍이 아름답고 소나무를 타고 올라간 담쟁이가 단풍이 들어 장관이다. 낙엽송은 아직 푸름을 잃지 않고 조금도 굽힘이 없이 하늘을 향했다. 새재에 비해 물이 없어 섭섭했다. 그러나 조용한 오솔길이 참 좋다.

 

 포암산 가는 이정표

 하늘재로 가는 갈림길

 한적한 오솔길

 

경사는 완만하고 일부러 다듬어 놓은 것처럼 평탄한 길을 걸어 가노라니 어느덧 하늘재 정상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단체 등산객이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 몰랐는데 문경 쪽에는 2차선으로 포장이 완전히 되어 있어서 대형 버스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단체 등산객을 이곳에 풀어 놓고 다른 곳에서 받아 가는 종주 산행을 하는 것 같다. 사람들 한 무리가 3간문 쪽을 향해서 뱀이 꼬리를 감추듯 숲 속으로 사라졌다. 또 한무리는 우리가 가려고 하는 포암산 쪽으로 올라 간다. 포암산은 첫 머리부터 급한 경사로이고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오르막길이 1.3km밖에 안되지만 오르기는 만만찮을 것이라고 관리하는 분이 말해 주었다.

 

광장 옆에는 문경시장 이름으로 세운 계림령유허비라는 비가 있었다. 상당히 큰 돌에 오석을 박아 세로로 비문을 썼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고개를 계림령이라고 한 것도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계림으로 일컬어지던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가 여기가 아닌가 한다. 그러다면 어떻게 관음리와 미륵리가 생기게 된 것일까?

 

<계림령 유허비 내용>

 

 

게림령유허비 바로 위에는 백두대간 산장이 있다. 사람들이 거기에도 많이 모여 있다. 그렇다고 거기서 밤을 지낸 것 같지는 않았다. 가만히 보니까 예전에는 이 고개가 더 높았었는 모양이다. 한 20m 정도 절개지  위에 하늘재 알림 비석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고개가 백두 대간이라면 굳이 이렇게 절개해서 편리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아까운 산 줄기들이 사람들의 편리를 위하여 깎이고 파헤쳐진다. 이 고개를 문경 쪽으로 넘어가면 관음리라고 한다. 미륵은 미래불이라면 관음은 세상 중생의 아픔을 다 들여다보는 대자대비의 부처님이다. 문경의 관음을 지나 하늘재를 넘어 미래불의 품에 드는 것이니 하늘재라는 이름도 그냥 생긴 것은 아닌가 보다.

  

 계림령 유허비

 

하늘재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초입에는 포암산 정상까지 1.3km라고 되어 있었다. 한시간이 안 걸리겠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경사가 만만찮다. 초임부터 가파르다. 나무 계단이다. 아내는 스틱을 빼들고 나는 나무 등걸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번 땀을 흘리며 오르니 70년대에 만들어 놓은 것인지 참호와 교통호가 그대로 남아있다. 처음에는 배수로인가 했더니 70년대 예비군 초소처럼 시멘트 블럭으로 쌓아 올렸다. 평탄한 길을 조금 올라가니 돌길이었다. 또 너덜지대가 나왔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산성처럼 보였다. 이곳이 요새는 요새인 모양이다.가만히 살펴 보니 틀림없이 무너진 석성이다.

 

길은 끊임없이 오르막길이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올라온다. 누군가 졸졸흐르는 옹달샘에 대롱을 박고 하늘샘이라 이름을 붙였다. 참 고운 이름이라 생각했다. 하늘빛은 말없이 푸르다. 바위틈을 빠져 나가면서 활엽수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다. 그렇게 푸를 수가 있을까 하고 의심이 가리만치 푸르다.

 

 석성이 무너진 듯, 돌길이 한참이다. 

 하늘샘

 푸른 가을 하늘

 

땀을 닦으며 첫번째 전망대에 올랐다. 남쪽으로 주흘산, 부봉으로 이어지는 용틀임이 훤하게 보였다. 드디어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바위에 앉아 땀을 식혔다. 멀리 산줄기를 바라보고, 경상도 지방의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도 바라보았다. 구름이 몇 점 둥실 떠 있다. 동쪽으로 포암산의 이름이라고 증명하려는 듯 바위벽이 베를 널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손수 베를 짜셔서 마전을 할 때 동네 언덕에 널어 놓으면 꼭 저 바위와 같은 모양이었다. 포암산은 아마도 만수봉 쪽에서 지은 이름이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 주흘산 쯤에 올라가서 바라보며 지었거나 관음리 쯤에서 올려다 보면서 지었을 것이다. 베를 짜면서 '저렇게 큰 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흘산인가?

 소나무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산

 소나무에 낮아

 나도 거기 서서

 

능선 안부에 올랐다. 미륵리 안동네에서 올라오는 등마루가 뚜렷하게 보인다. 내려갈 때라도 그 길로 내려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크게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국립공원은 길을 많이 내는 것을 좋지 않다. 그러나 경관이 좋은 곳은 열어놓고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우리 나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산을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국이 산을 관리하는 것보다 더 잘 관리한다. 당국의 관리 소홀을 산사람이 걱정할 지경이다. 설명에 보면 이곳으로 내려 가다보면 계곡 건너의 박쥐봉 북바위산 용마봉이 그림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 그림을 오늘 보지 못한다. 조속히 열어 놓기를 바란다.

 

능선길을 천천히 걷다가 보니 또 한번 오르막길이다. 그리고 마지막 정상에 이르는 길은 한 20m 쯤 줄을 타야 했다. 오른쪽으로 발을 헛디디면 바로 널어놓은 베 바위에 걸리는 것이다. 바위도 베처럼 출렁거리면서 나를 받아 주면 얼마나 좋을까? 정상에 오르면서 바라보니 북바위산이나 박쥐봉 용마봉이 다 보인다. 그 골짜기들이 손으로 다듬어 놓은 듯이 아름답다. 멀리 북으로 월악의 영봉이 고개를 내민다. 만수봉, 덕주봉, 그리고 그 너머 영봉이 아련하다.

 

 출입금지

 박쥐봉 그너머

 월악산 쪽

 정상 직전의 이정표

 

상에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백두대간을 하는 사람들인지 만수봉쪽으로 내려갔다. 그쪽으로 내려가 만수 계곡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나 차가 이쪽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다들 숲에 들어 앉아 점심 식사를 한다. 우리도 점심 먹을 자리를 찾았다. 동쪽으로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너럭바위가 있다. 사람들이 막 일어나려고 한다. 소박한 우리 점심상을 차렸다. 주변 경관이 그만이다. 우리가 식사를 마쳐갈 즈음 또 한 패가 와서 서성인다. 진수성찬이다. 마치 차례상 같다. 소주를  한 잔 얻어 마셨다. 소박한 우리 배낭에는 답례할 것이 없었다. 대신 우리가 앉았던 너럭 바위를 내어 주었다.

 정상에서 누가 쌓았는지 돌탑이 있다.

 

내려오는 길은 무릎이 아팠다. 그러나 아주 조심조심 내려왔다. 무릎을 다치면 언젠가 힘이 있어도 산에 다니지 못한다. 스틱을 꺼내 펼치고 내리막길을 짚으면서 아주 조심했다.  내려오는 길의 단풍이 곱다. 하늘은 아직도 깨끗하다. 바위벽에서 자란 나무가 단풍이 일찍든다. 올라갈 때보다 더 자주 쉬었다. 아내는 매우 피곤해 했다. 그렇게 피곤한데 왜 따라왔지? 혹시 혼자가는 내가 미덥지 않았나? 뭐가 못미더울까? 다리? 무릎? 가슴? 근력? 이제는 괜찮은데----. 자신 있는데-------- 그렇다면?

 

 바위와 단풍

멀리 남으로 이어지는 준령들

 

하늘재에서 미륵사 주차장까지는 산책길이다. 등산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모두들 미륵사지를 들러 가는데 나는 그냥 내려왔다. 사과밭이 아름답다. 연풍에 들러 연풍 청정축산 조합 공판장에서 고기를 조금 사가지고 돌아왔다. 오는 길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