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고흐와 슬픔 - 임정숙
느림보 이방주
2009. 7. 23. 13:58
고흐와 슬픔 | ||||||||||||
에세이 뜨락 | ||||||||||||
| ||||||||||||
중부매일 jb@jbnews.com | ||||||||||||
| ||||||||||||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숱 없는 머리칼. 축 처진 가슴. 구부린 무릎 속에 고개를 묻는 여인. 고흐가 자기의 연인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나는 무언가로 몹시 우울했던 날 친구가 보내준 메일로 만났다. 마침 흐르던 슈베르트 곡 '아베마리아'는 시엔의 불행한 삶을 더 분명하게 하는 듯 장엄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가슴을 적셨다. 그림과 마주한 순간 나는 우연히도 조금 전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망연히 쪼그리고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질끈 눈을 감았다.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공허함을 아무에게도 내색하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흐의 불꽃 같은 격렬한 필치, 눈부신 색채는 순수한 사랑에의 갈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숙집 딸과 사촌 케이를 차례로 사랑했지만 그녀들의 단호한 거절에 깊은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다 알콜 중독의 거친 매춘부 시엔을 만나 행복했지만 양가 가족의 격렬한 반대와 궁핍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지쳐 방황하는 그녀의 슬픔을 외면했더라면 그 사랑 존재했을까.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 그녀의 아이들과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까. 고흐는 누구보다도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 같다. '슬픔'은 고흐의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살 직전까지도 '슬픔은 이후로도 끝나지 않을 거 같다'고 고흐가 말했듯이 슬픔은 그의 그림자일 수밖에 없었다. 화집을 뒤지면서 고흐를 마주하는 것이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나의 묵은 아픔과 가족과 또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이 쌓였던 먼지를 건드리는 것처럼 잠잠히 일어나 슬픔으로 떠돌았기 때문이다. 고흐의 나무 그림 중 스산한 분위기의 고목은, 몇 해를 아무 말 없이 꼼짝 않고 누워 계신 나의 친정아버지이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어젯밤 마신 술의 미처 가시지 않은 취기로 비틀대며 골목을 나서던 쓸쓸한 가장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젠 발톱마저 투박해 쉽게 잘라지지 않는 고목의 껍질뿐인 아버지를 어느 날 홀연히 누군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갈 것 같은 두려움. 그런 아버지를 흔들어 깨울 명징한 소리의 종 하나 없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떠나보낸 첫사랑 남자 친구가 그리워 찾아간 찻집. 결국 혼자 되어 돌아온 딸아이의 미니홈피에는 '많이 넘어지겠습니다'라고 수척해진 얼굴로 마음을 가다듬는 글이 올려져 있다. 한 남자의 사랑에, 쓰디쓴 이별의 아픔에 내 아이도 눈을 뜨기 시작한 걸까. 딸이 선택해 놓은 음악 속엔 장대비가 내린다. 그 빗속에 어미인 나도 엉거주춤 서성이고 있다. 어느 수업 시간에 '가장 슬펐던 일'을 글 제목으로 주었던 날이 있었다. 평소 나이에 비해 말과 행동이 조숙했던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의 사연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가, 엄마와 헤어지면서 이제부터 엄마라는 사람은 기억 속에서 지워라 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산다는 건 슬픔과 조금씩 타협하는 걸까. 생존을 위한 고달픈 역주, 사랑의 흔들림, 병들고 늙음, 느닷없는 사건들과 맞닥뜨리면서 악수하고, 떠나보내고, 그리워하고, 용서하고, 못 본 척 하고, 때론 포기도 하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흐는 결국 3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아들이 태어났을 때 파아란 하늘에 분홍꽃 핀 아몬드 나무를 그렸던 것처럼 기쁨의 순간은 늘 짧기만 했던 것일까. 오늘도 나는 슬픔을 껴안는다. 도망갈 수 없으므로 다시 더 힘주어 부둥켜안고 눈물을 삭인다. '슬픔'속의 여인 시엔처럼 웅크리고 앉아 차라리 슬픔 속에 피어날 그 무엇을 꿈꾸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