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안개 속에서 -이은희

느림보 이방주 2009. 7. 23. 13:54

안개 속에서

 

중부매일 jb@jbnews.com

 

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는개가 안개에 묻혀 소리 없이 내립니다. 그대여, 난 형체 없는 안개 속에 갇힌 양 움직일 수가 없어요. 게다가 흔들바람이 한 술 더 보태고 달아납니다. 어둑서니는 올려다볼수록 크다고 했던가요. 난 아무래도 겁을 잔뜩 먹었나 봐요. 발걸음을 어느 길로 떼어놓아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잖아요. 무엇보다 날 바라보는 동료의 속내를 읽을 수가 없어요. 되돌아가자는 것인지, 안개가 걷힐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자는 것인지.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순 없는 일입니다.

곤돌라 운행이 기상 문제로 뜸을 들이던 때를 떠올렸어요. 어렵게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까지 올랐으니 물러설 순 없는 일이잖아요. 순간 전쟁터에 나온 장군처럼 '나를 따르라!' 외치며 안개 속으로 한 걸음 성큼 나섭니다. 자욱한 안개가 내 앞을 가린다 해도 난 그걸 헤치고 갈 심산이지요. 향적봉에서 굽이굽이 멋진 능선들을 보여줄 순 없지만, 수려한 풍경을 말과 손짓으로 그리렵니다.

안개 속으로 시나브로 한 발 한 발 다가섭니다. 두려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터울거립니다. 그대여, 체면치레로 허세를 부렸지만 십여 명의 동료를 어찌 책임질까 걱정이에요. 무슨 배짱으로 큰소릴 쳤는지 나도 모를 일입니다. 처음엔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듯 했으나, 숲으로 서서히 들어갈수록 그리 막막한 것만은 아니었답니다. 안개 덮인 숲은 품 안에 있던 구상나무, 신갈나무, 노린재나무, 물푸레나무들과 들꽃이며 말라 죽은 고사목까지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보여줍니다. 걷는 발밑에는 비바람에 갓 피어난 어린잎과 잔가지가 바닥에 흩어져 뒹굴고, 피고 지다 만 연분홍 진달래꽃잎이 무수히 떨어져 안타까웠어요.

지난해 조카들이 손가락으로 후비며 깔깔거렸던 고사목 앞에 멈춰 서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습니다. '여기 좀 봐. 돼지 형상의 나무줄기야. 이 구멍, 꼭 돼지 코 닮았지?' 말이 채 끝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닮았다'며 손으로 쓰다듬었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만졌던지 나무껍질이 반질거렸습니다. 나무 앞에서 둘씩, 서넛씩 사진을 찍고 탄성을 쏟아냈지요. 잠깐이지만 두려움에서 벗어난 듯 동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 다행이었답니다.

   
▲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눈을 뜰 수 없도록 비바람이 거세어집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라고 동료를 다독입니다. 이러구러 향적봉에 오르나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입니다. 그러나 안개 저편엔 분명히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능선들이 자리하지요. 이 맘 때쯤 나무들은 농도가 다른 연둣빛으로 갈아입고 있을 거라고, 텅 빈 공중에다 대고 몸짓과 흥분된 어조로 대신합니다.
그대여, 정상까진 아직 먼데 안개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요.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빠르게 옮깁니다. 1,600미터가 넘는 고지라 언제 어떻게 기후가 변할지 모를 일이니까요. 사납게 숲 속을 휘몰아치는 '윙윙'거리는 소리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우의 버석대는 소리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떠나 올 때 당부를 했는데,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선 동료가 몇몇 있어 걱정입니다. 그나마 일회용 우의라도 입어 추위를 조금이나마 면할 수 있었답니다.

걷다가 바위틈에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비바람의 탓인가요. 줄기 반쪽엔 잔가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위태롭게 서 있는 양 보였어요. 나는 그 모습에서 돌아가시기 전 목발을 짚고 휘청거리던 친정어머니가 떠올랐답니다. 그래서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습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주목입니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은 겨우 백 년을 살까 말까 하지 않던가요.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에도 빠듯한 나날입니다. 그러니 불행을 꿈꿀 순 없잖아요. 문득 아이들이 내 뜻대로 하지 않는다고, 동료가 해놓은 일이 매끄럽지 않다고 찜부럭 내던 일이 떠오릅니다. 가장의 실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지인은 '사네, 못 사네'하며 연일 다툼이지요. 어버이날, 자신의 뜻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몹쓸 인간도 있지요. 당장 눈앞에 현실이 어렵다고 생각 없이 일으킨 결과입니다. 산을 오르기 전 잠시나마 날씨를 불평하며 포기하려고 했던 거나, 사소한 일에 짜증을 부리던 일들이 내심 부끄러웠답니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눈을 뜰 수 없도록 비바람이 거세어집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정상이라고 동료를 다독입니다. 이러구러 향적봉에 오르나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입니다. 그러나 안개 저편엔 분명히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능선들이 자리하지요. 이 맘 때쯤 나무들은 농도가 다른 연둣빛으로 갈아입고 있을 거라고, 텅 빈 공중에다 대고 몸짓과 흥분된 어조로 대신합니다.

그대여, 지금 내 곁에선 '우리가 해냈다.'라는 동료의 자부심 어린 환호성이 터져 산을 울립니다. 그 모습은 하얀 벽을 향해 지르는 메아리 같아요. 아니 세상을 향하여 보내는 도전장처럼도 보입니다. 누구는 이번 산행을 무모한 도전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어요. 애초에 안개가 두려워 좌절했다면, 정상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나 봅니다. 마음에 품은 자그마한 희망은 두려움을 줄이고 이면의 것을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삶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지요. 그걸 몰랐습니다. 비바람에 잔가지를 키울 수 없는 나무처럼, 어려움이 닥쳐도 마음을 굳세게 먹고 희망을 버리지 말 일입니다. 그래요, 난 지금 희뿌연 안개를 헤치고 그대 곁으로 씩씩하게 돌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