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에세이의 뜨락
<에세이 뜨락> 어느 조선족 여인 -박순철
느림보 이방주
2009. 5. 29. 08:06
어느 조선족 여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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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어느 날 출근하니 직원들이 그때까지 점심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도영 씨가 사라졌대!" "그러니까 외국인들은 믿을 수가 없어. 도영 씨가 배달은 맡아서 했는데 그 식당 이제 큰일이네" 오후에 출근해서 일 거들어주는 친척 가게가 있다. 도영 씨는 그 가게에 점심을 가져다주는 조선족 여인으로 마흔이 조금 안 된 것 같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체구지만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붙임성 있어 보였다. 2인분 식사기준 한 쟁반의 무게는 대략 7~8kg 정도 되는 것 같다. 어느 때는 네 개씩 포개서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을 보면 가여운 생각마저 들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여인이었다면 미모에 신경 쓸 나이지만 정작 자신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녀에게 아름다운 몸매는 한낱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오직 빨리 돈을 벌어서 고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단란하게 사는 꿈밖에 없는, 착실한 사람으로 보였다.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이나 중국 사람 대부분 노동을 하는 실정이다. 70년대 우리나라 간호사도 서독 광산에 파견되어 외화를 벌어들인 적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총탄이 쏟아지는 월남에서 대한의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맞바꾼 달러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게 했고, 국가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흘린 땀은 아마 강물을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한국에 나와 있는 그들도 국가를 위해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간다.
한국에 나와 있는 조선족 수가 40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길 들었다. 충주시 인구보다 많은 숫자다. 모두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 부모 형제, 처자식과 같이 잘 살아보자고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의 조국을 찾아왔지만, 누가 그들에게 쉬운 일자리를 주겠는가. 반갑게 맞아주는 친인척들이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눈이 매양 애처롭고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국인이라 하여 임금을 적게 주려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니 생각했던 것만큼 돈 벌기가 쉽지 않음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버는 돈을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본국으로 송금하는 착실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어느 조선족 남자는 5년 동안 노동을 했어도 비행기 요금이 없어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타향 객지 보다 더한 이국 만 리, 그것도 사랑하는 처자식을 멀리 두고 떠나온 마음이 오죽 허전하겠는가. 그러니 술을 가까이하게 되고 술을 먹고 나면 영웅심이 발동하고, 노래방으로, 술집으로……. 그들이 받는 월급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보다 적게 주지도 않는다. 전문직종이 아닌 단순 노동이다 보니 임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제일 무서운 게 외로움이란 말이 있다. 저녁에 텅 빈 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고향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 나온 조선족 여자가 있다면 서로 외로움을 달래고, 고향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 가까워지게 되고, 그다음은 생활비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살림을 차리고……. 그래서일까? 부부가 같이 나오면 돈을 버는데 남자나 여자 혼자 나오면 불행해 진다는 속설이 내려온단다. 도영 씨의 빈자리가 너무 컸을까? 식당은 영업을 계속했지만 삐걱거리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점심때가 한참 지나서 가져 오는가 하면 반찬을 한두 가지 적게 가지고 오기도 했다. 도영 씨가 돌아온 것은 한 달가량 지나서였다.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이제는 점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니 반갑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중국에 갔다 왔어요. 간 김에 여러 가지 정리할 것도 있고 어른들 찾아다니며 인사도 하고 오느라고 좀 늦었어요." 착한 도영 씨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귀담아들은 내가 잘못이었다. 세상에는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비단 도영 씨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조선족 근로자들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근로자 모두 꼭 금의환향하기를 바람 해본다. |